정원교의 중인환시 (66)

페트라(Petra)

영국인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로 유명한 고고학자이며 군인이다. 그가 요르단의 바위성벽의 도시인 페트라(Petra)를 처음보고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페트라>라는 말은 요르단 <나바테아> 종족의 말로 <바위>라는 뜻이며, 나바테아족의 수도로 극동지역과의 실크로드 교역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음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세상에서 잊혔던 도시다.

1800년에 들어서도 페트라의 존재가 전설이었을 것이라는 소문 하에 아주 먼 기억들로만 얘기할 정도여서 종족 간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마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도시가 있을 수 없을 것으로 본 가장 큰 이유가 넓은 사막에 도시 하나를 살릴만한 오아시스가 있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아 페트라가 실재 존재했던 도시가 아닐 것으로 믿은 것이다.

유럽인으로는 스위스의 부어카트(Johann Ludwig Burkhard)가 처음으로 요르단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따라 가며 역사에서 잊힌 페트라를 찾아보려고 했다.

1812년 8월 22일. 부어카트는 요르단의 고대우물을 연구하면서 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따라 찾아다니다가 폐허가 된 페트라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스위스로 돌아오자마자 여행기를 쓰면서 전설속의 페트라를 알리기에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여행도중에 얻은 풍토병으로 33세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0세기 초엽에 들어가서야 고고학자들의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페트라가 사막의 오아시스를 공급하는 시설을 잘 갖추고 있었음을 발견하고 전설속의 도시가 아니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음료수 공급이 한 군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로 나뉘어서 도시로 공급되었으며 바위를 깎아 물길을 만들어 도시로 끌어 들인 것이 정교할 정도다.

일반적으로 모든 건축물은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짓지만 페트라는 거꾸로 위에서부터 아래와 내려오면서 지은 건물이다.

당연히 허공에다 그렇게 지으면서 내려 올 수 없는 것으로 암벽을 깎으면서 내려지은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붕과 기둥이 높이를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고서는 나중에는 지하로 더 파고들어 가야 한다거나 공중에 떠 있는 건축물이 되기 십상인데 당시의 건축기술로 정확하게 계산해서 지울 수 있었다는 것에 모든 건설계에서 놀라고 있다.

페트라는 나바테인들의 보물창고로 이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해서 필자가 들어가서 구석구석을 살펴보려 했다만 입구가 통제되고 있어서 들어 갈 수 없었지만 혹시 알겠는가? 실크로드 때에 주고받던 금전이라도 떨어져 있었을지.

페트라에는 로마 원형극장이 있으며 무덤에는 그동안 보기드문 정교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협곡을 벗어난 끝 부근에 800개의 계단위에 건축된 수도원 <알데이르>를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나바테아 주민들이 성지로 만들었을 것이며 홀의 천장높이가 40m를 훌쩍 넘는 큰 공간이다.

이곳에서 필자의 아내는 유대인 가이드와 성가를 같이 불러 일행에게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는데 잘 불렀다기보다는 골고루 울려 퍼지는 음향이 상당히 좋았던 기억이다.

페트라는 붉은 사암 즉 모래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굳어진 돌로 이루어진 도시다.

원형극장에만 유일하게 대리석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로마가 이곳을 지배할 당시 이태리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추측하면서도 운반을 어떻게 해왔을까 하는 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어떻게 지어졌을까” 하는 것처럼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페트라는 198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7년에는 유네스코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불리고 있다.

2019년 12월 20일, 1151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