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간호사 엔젤 모국방문 여행기 (2)

– 2019년 10월 22일부터 – 10월 28일까지

(10월 22일 ~ 25일 : 이전글 참조)

1026, 토요일

경주 보문에서 아침이 밝아왔다

어제의 피로를 뒤로 하고 고유의 전통음식이라는 특이한 죽을 먹은 후, 버스가 구미로 향해 달린다. 차창너머로 보이는 농촌의 풍경이 많이도 달라진 느낌이다.

노랗게 익어가는 벼 사이로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인다. 농촌도 이제는 경제적인 문제도 그러하겠고 농사기술도 발달되어 농부들의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진 것 같다.

우리 일행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 참석을 하고 일정에 준비된 경상북도 이철우 도지사님 그리고 대구광역시 권영진 시장님과 좌담회를 가지며 파독광부간호사들의 반세기 역사의 이모저모를 서로 주고받으며 2020년 2월에 행하여지는 뒤셀도르프한인회가 주관하여 한인팀이 참가하는 독일 Rosenmontag 카니발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대한민국을 홍보할 수 있고, 경상북도를 보다 효과적으로 홍보 할 의견들을 나누었다.

두 분 지도자님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좋은 방향으로 검토 해 보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이 좌담회를 마련해 주신 대구시위원님들, 도의회위원님들, 구미시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또한 늘 모국방문 시에 파독광부간호사들을 챙겨주시는 경북인트넷 최헌영 대표님과 배영식 카메라사장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지사님과의 오찬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또다시 버스로 먼 길을 달린다.

선비문화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안동 와룡면 오천리에 자리한 ‘군자마을’로 향했다

굳이 안동 군자마을을 방문하는 이유는 훌륭하신 김준환 원장님과의 수년간의 좋은 인연도 그러하지만 우리 고유의 특이한 전통 마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달리던 버스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고 기사님이 얘기하신다. 안동으로 이동 중에 몇 번이나 버스 고장으로 손을 보아야 해서 시간소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동댐을 지나고 굽이굽이 안동호를 따라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과 단풍들의 풍광을 즐기면서 드디어 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 ‘군자마을’이 보였다.

막상 군자마을에 입구에 들어서니 그 모습들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옥들의 아름다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예스러움에 우리 파독간호사들의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버스가 도착하고 군자마을을 대표하시는 김준환 원장님 그리고 관계자 몇 분들의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첫 인사에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신 훌륭하신 파독간호사님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라고 김준환 원장님이 말씀하시어 우리들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김원장님의 안내로 군자마을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며 특별히 파독간호사들을 위해서 “배추전과 군고구마”를 준비하셨다한다. 이는 옛날 우리들의 고유 맛을 다시금 맛보게 하신다고 준비하셨다고 한다. 가슴이 찡하게 너무나 감사하다. 파독간호사들의 업적을 잊지 않으시고 그 노고에 찬사를 보내주시고, 몇 번에 걸쳐 잊지 않으신다고 하시는 말씀에 우리 모두는 큰 감동을 느꼈다.

군자마을은 1974년 안동댐 조성으로 인한 수몰 피해로 인해 원형 그대로 옮겨진 것이라 하는데, 조선초기부터 광산김씨 예안파가 20여대에 걸쳐 600여년 동안 거주한 외내에 있었던 건축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과 그 밖의 고가들을 옮겨왔다고 한다.

군자마을이란 과거 외내에서 당대의 도학군자가 여럿 배출되자, 당시 안동 부사였던 한강 정구(1543-1620) 선생이 이 마을에는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해서 군자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한다

오천유적지라고도 불리는 것은 마을을 흐르는 시내에 있는 돌을 멀리서 보면 검은 빛을 보인다고 해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아름다운 한옥과 컨텐츠 발명가이시고, 각 대학 젊은이들에게 강의, 특히 농촌 발전에 크게 기여하시는 김원장의 사무실에는 따뜻한 온기가 도는 군불로 피워진 옛 모습 그대로를 볼 수가 있었고 여러 학문의 책들이 즐비하였다.

너무나 짦은 군자마을 방문에 많이들 아쉬워했다. 버스고장으로 시간을 많이 소비한 탓도 있었고 저녁 방문의 길은 또한 먼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버스에 오르며 다음 행선지 백제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서천군로 향하는데 약속된 시간에는 도착하지 못함을 군자마을 떠나면서 알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급해 온다.

3시간 반을 달리고 달려서도 3시간정도 늦게 어둑할 무렵이 되어 서천군에 도착한 우리 파독간호사들을 특별히 초대해주신 서천군발전협의회 김창규회장님, 김진원 KBS 국장님, 이재규 사장님 등 그 관계자분들이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만찬의 시간에서는 파독간호사들의 지나온 업적을 되새기기도 했으며 서천군의 특이한 문화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신다

갯벌로 인한 여러 해산물의 특산품과 모시로 유명한 서천에는 모시 박물관도 있고 이곳에서 모시천으로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셨고, 한산 문헌서원도 방문해서 옛 조선의 교육의 현장, 즉 한산 문헌서원도 방문하면 좋을 것 이라며 여러 고유적이고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 서천에도 있다고 김회장님께서 말씀해 주신다.

의미있고 깊은 감동의 만찬시간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며 이번 모국방문의 하루 하루가 너무나 값진 체험, 경험, 감동이였다고 되새기면서 내일의 여정을 위해 피곤을 풀어본다. (박소향 글)

1027, 일요일

싸늘한 가을 아침공기를 마시고 찾아간 24시간 영업 김치콩나물국밥으로 속이 시원하고 따뜻한 식사는 우리에겐 안성맞춤형이었다.

서천군 문화공보부 문화해설사 나영옥선생의 안내로 우리는 문헌서원 방문했다. 문헌서원은 조선시대에 성리학연구와 교육목적으로 세운 사학이라고 한다. 향교가 국립이라면 서원은 사랍교육의 장이며 선현에게 제사를 봄, 가을만 지내는 사당이라고 한다.

문헌서원은 가정 이곡 (1298-1351) 아들 목은 이색(1328-1396), 고려말 조선초기 학자들이며 성리학연구가인,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말 충신들이 세웠다한다.

서천군은 일년에 문화행사를 3번 하고 무료로 운영하는 노인 공부방, 점심대접 등의 행사가 있다고 한다.

효정사는 1575년 세웠으며 1592-97 임진왜란 때 불에타고, 1610년 불탄 자리에 오성과 한은대감이 다시 문헌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고종의 아버지인 대원군이 900여개의 전국 서원을 철폐하고 47개만 남겼으며 1996년 다시 증축, 현재 사당에는 8대가 모셔졌다고 한다. 서천에는 이하복 가옥도 유명한 문화재로서 이는 학교를 세워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상징이며, 19세기 전통 농가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서천군에는 30만평의 국립생태원과 10만평의 국가산업단지가 있다.

국립생테원은 한반도의 생태계를 비롯하여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 계5대 기후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한 눈에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고품격 생태연구, 보관, 교육, 전시장이라고 한다.

이곳의 동물들은 병들고, 몰래 들여오다 발각된 동물들이라 하는데, 시 돌려보내지 못하고 다 병을 낫게 해서 잘 보호하고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보탬이 된다고 한다.

바닷가 솔밭 산책의 신선한 공기의 내음은 가슴을 활짝 펴게 했고 밀물, 썰물이 보이는 하얀 백사장 걷기도 해봤다. 장항의 Sky Walk는 높이 15m, 길이 250 m에 바닷물 위로 놓인 다리로, 이 다리를 걸으며 솔 내음도 맡으며 갈대밭을 돌아 나왔다. 서해바다에 넘어가는 해가 붉게 타오르는 듯 사그라진다. 서천의 특산물로는 김, 한산 세모시와 박대라는 생선이 유명하다.

서천군수님이 초대해주신 저녁만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들이 차려진 상이 부스러질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서천군에는 자연 그대로 때 묻지 않은 힐링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맑은 공기를 쐬며 몇 보의 산보를 뒤로 하고 내일의 또 다른 한국의 멋을 봐야하는 설레임에 밤을 보낸다. 서천군수님 이하 관계자 모든 분들께 그리고 서천군발전협의회 김창규회장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윤행자 글)

1028() – 마지막 날

6박 7일 동안 박소향 회장의 철두철미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몰랐던 한삼 모시를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는 제작 과정과 경주 엑스포 서천 갯벌 등, 가는 곳마다 그곳에 계시는 여러분들의 따뜻한 환영과, 진수성찬 등 잊을 수 없는 날 들이었다.

오늘은 여행 일정 마지막 날로 아침에 맛있는 해장국으로 시작하여 대전 국군간호사관학교를 방문 할 계획이다.

나는 벌써부터 설레임이 앞선다. 옛날 간호대학 졸업 할 무렵 육군 간호장교로 와 달라고 할 때, 외국에 나갈 생각에 그때는 안 중에도 없을 때 였으니…, 지금은 Uniform만 보아도 멋지고 자랑스러워 보여 진다.

대전국군사관학교(Forces Nursing Academy, 권명옥 육군 준장 학교장)는 대한민국 육, 해, 공군 간호장교 양성을 위해 1951년 설립된 대학교이다.

권명옥 육군 준장 학교장은 환영축사에서 경제 발전과 한국의 위상을 올리고자 꾸준히 헌신해 온 선배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임을 전했다. 이어 김춘수 중령의 자세한 브리핑이 있었다.

재간협 박소향 회장은 이곳에 오게 된 것이 감개무량 하다며 우리는 50년이라는 세월을 국위선양하며 살았지만 늘 그리운 고국과 발전하고 있는 모국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등의 궁금증과 같은 직업인으로 어떤 목적과 현재 후배들의 생활과 배우는 내용 등이 알고 싶어 방문하게 되었다며 아울러 저희를 초청해 주심에 대단히 감사하다는 인사가 있었다.

이곳 국군사관학교는 군사교육, 인성교육 등 재난간호교육과정, 외상간호학과정 운영, 전투, 여성건강관리 교육 등 간호 훈련 Simulation, 학술교류, 협력 활성화 등 옛날 우리가 배울 때와는 달리 모든 것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기계화는 물론 현대화 되어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남자는 1:47 여자는 1:64 라는 경쟁력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국군사관학교 구내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 한 후, 마침 1965년 독일에 간호사로 오셨던 고(故) 원영희님의 장남 이유경님을 모시고 6.25 참전 용사 활약하신 것에 대한 화랑 무공훈장 수여식이 있었다. 우리는 축하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였다.

선배들의 간호교육 경험담을 들으려는 생도들의 학구열은 매우 뜨거웠으며, 토론도 진지하였다. 자랑스러운 후배들에게 모국을 위하여 자부심을 갖고 화이팅을 해 주고 싶다.

아쉬운 시간을 뒤로 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대전 Terra Beo을 방문 하였다. 앞이 탁 틔어진 대청호와 잘 가꾸어진 정원에 앉으면 시인들이 시를 읊기에는 너무나 적합하여 살고 싶은 욕망까지 불어 넣는 곳이었다.

이곳에 오니 파독 간호사 50주년 행사에 도움을 주셨던 이종서 대표, 박은희 이사, 정소정 교수, 강정규 의원님이 우리를 대접하려고 커피와 케이크 등을 마련해 놓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지난 파독 50주년 때 많은 도움을 주신이 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박소향 회장은 준비한 감사장을 이종서 대표, 박은희 이사와 정소정 교수에게 전달하였다.

가는 곳마다 훈훈한 모국애를 느끼며 그 풍토에 맞추어 여러가지 선물도 늘 함께 하였다. 마지막 날에는 그곳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3.5kg의 구운 소금을 받았다. 구운 소금이라는 말도 못 들어 본 나는, 독일에 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무게 때문에 갖고 올 수가 없어서 유감이었다.

이번 파독 간호사 모국 방문은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동안 박소향 회장의 짜임새 있는 계획으로 서로 배우고 체험 하면서 더욱더 많은 것을 알게 되어 기뻤으며 박소향 회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엔젤 여행사 팀들께도 시간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끝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를 기쁘게 해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문정균 글)

2019년 12월 20일, 1151호 20-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