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음악의 도시, 라이프치히

유한나 (재독시인, 수필가)

새해가 열리면서 라이프치히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독일을 잠시 방문한 남편의 대학 동창 부부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마인츠에서 자동차로 약 네 시간 동안 달려서 옛 동독 도시에 도착하였다. 라이프치히는 내 오래된 상식으로 상업 도시이며 프랑크푸르트에 맞먹는 국제 도서전이 열리는 도시였다. 이틀에 걸친 짧은 여행 후, 라이프치히는 전설적인 음악가 바흐, 멘델스존, 슈만과 클라라, 바그너 그리고 철학가 니체와 대문호 괴테가 파우스트를 썼던 곳으로 내 마음에 음악과 예술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먼저 이 도시의 가장 오래된 교회이면서 독일 통일의 불씨를 지펴준 성 니콜라이 교회를 방문하였다. 1989년 독일이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기까지 시민들이 평화 운동을 펼치고 매주 월요일, 통일을 위한 평화 기도회가 열렸던 교회이다. 교회 안쪽에 있는 전시실에는 이 평화 운동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설명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교회를 나와서 몇 발자국 더 가면 1212년 건립된 성 토마스 교회가 있다. 1750년에 삶을 마감하기까지 27년 동안 이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이며 오르가니스트, 음악감독이었던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동상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의 가문은 200여 년 동안 50여 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유럽 최대의 음악가 가문이다.

교회 안에 들어서니, 웅장하고 장엄한 오르간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성 토마스 교회는 1539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설교를 하였고, 종신 서원을 한 교회이며, 바그너 (Richard Wagner 1813-1883)가 생후 3개월 때 세례를 받았고 모차르트와 바흐가 오르간을 연주했다고 한다. 독일의 위대한 인물들의 숨결이 스며든 역사적인 교회를 방문한 감회가 깊었다.

다음날 오전 10시경 멘델스존 하우스를 방문하였다.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이 임종하기까지 그의 여생을 보낸 집을 기념관으로 만든 곳이다. 인상적이었던 곳은 직접 지휘봉을 들고 멘델스존의 곡을 지휘해 볼 수 있도록 만든 음악 체험장이었다.

보면대에 놓인 스크린 위에 그의 악보가 나오고 지휘봉을 흔들면 센서가 지휘봉을 드는 속도와 방향 등을 인식하여, 앞에 긴 기둥처럼 서 있는 12개 스피커들의 소리 강약, 연주속도가 조절되고 방의 조명이 환상적인 색채로 붉고 푸르게 바뀌면서 그의 곡이 연주되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꿈이었다고 가끔 말하곤 하던 남편이 지휘봉을 들고 그럴듯하게 포즈를 취하며 멘델스존 곡을 지휘하였다. 멘델스존을 `19세기의 모차르트´라고 일컬은 슈만의 말이 액자 안에 쓰여 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유럽인 멘델스존´이라는 제목 아래 프랑스, 스위스, 영국 등을 여행하며 연주한 유럽 연주 여행 날짜와 그림이 새겨진 원형 접시들을 벽에 걸어 전시해놓은 방도 인상적이었다. `화가로서의 멘델스존´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전시된 방도 있었는데 화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빼어난 그림들이었다. 1843년,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은 오늘날까지 세계 곳곳에서 결혼식에 연주되고 있으니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수백 년이 지나도 그는 우리 가운데 그의 음악으로 살아있다.

무엇보다 바흐의 음악을 세상에 널리 알렸고, 특히 바흐의 사망 후에 그의 <마태수난곡> 악보를 멘델스존이 복원하여 그의 지휘로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하였다고 한다. 그는 1908년, 바흐의 동상까지 만들게 하여 성 토마스 교회 옆에 세웠다.

멘델스존 하우스를 나와서 맞은편에 새 건물로 세워진 게반트하우스 (Gewandhaus)에 들어가 그의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게반트하우스는 멘델스존이 12년 동안 지휘자로 활동하였던 세계 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이며 세계 3대 오케스트라에 꼽힌다. 멘델스존의 음악은 유대인의 음악이라는 이유로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한동안 연주되지 못하였으나 유대인 출신인 세계적인 지휘자 Kurt Masur (1927-2015)가 멘델스존의 작품을 세계 곳곳에 다니며 공연하면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게반트하우스에서 찻길만 건너면 라이프치히 대학 건물이 보인다. 구 동독 시대에 칼 막스 대학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 대학은 1409년에 세워진 독일에서 두 번째 오래된 대학으로 괴테, 슈만, 바그너, 니체 등이 공부한 곳이다. 통독 이후에 새로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하였다. 대학 건물에 들어서면 바로 바그너와 괴테의 흉상이 보인다.

독일 전통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는 슈만 클라라 하우스에 들어갔다. 입구에 슈만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과 클라라 (Clara Wieck Schumann 1819-1896)부부 사진과 함께 그들이 1840년부터 결혼 첫 4년 동안 살았던 곳이라고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지난해 9월 13일, 클라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현대식으로 단장한 기념관이었다.

슈만과 클라라가 작곡하고 연주한 곡들을 들을 수 있는 방에 들어서니, 사방 벽면에 봄꽃들과 나비, 정원과 나무 영상이 움직이며 노래가 흘러나왔다. 슈만은 이 집에서 그의 첫 심포니 <봄>을 작곡하였다. 조형물로 만들어진 클라라의 손을 쓰다듬었더니, 물방울 흐르는 소리처럼 영롱한 클라라의 피아노곡이 흐르면서 150-200년 전의 피아니스트와 우리를 단번에 연결시켜주는 듯하였다.

바흐, 멘델스존, 슈만, 클라라와 같은 독일이 낳은 위대한 음악가들이 살았던 집과 기념관을 돌아보고 바흐의 무덤이 안치된 성 토마스 교회, 독일 통일을 위해 평화의 기도회가 열렸던 성 니콜라이 교회, 괴테가 다녔던 라이프치히 대학과 그의 동상, 그의 대작 <파우스트>를 집필하였던 도시를 보고 돌아온 이틀은48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었다. 18세기, 19세기 위대한 인물들을 역사 속으로 들어가 만나는, 수백 년에 걸친 역사 여행이었다.

멘델스존은 38세, 슈만은 46세의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그들의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의 영혼까지 파고드는 음악과 예술의 향기를 뿜고 있다. 멘델스존은 신경계 병과 과로, 피아니스트였던 누이 화니 (Fanny)의 죽음을 겪고 자신도 그 충격으로 6개월 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클라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하는 슬픔을 겪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정신병과 자녀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바흐는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잃고 그 이듬해에는 아버지를 잃었다. 결혼 후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음악이 인정을 받지 못하던 당시에는 가난하게 살면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였다.

이들은 그러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의 고통과 어려운 환경을 헤쳐나가며 그들의 슬픔과 아픔, 기쁨과 사랑을 음악과 예술 작품에 녹여내는 삶을 살았다. 이들이 숨 쉬며 살았고 고통 가운데 아름다운 음악, 문학 작품을 빚어내었던 이 독일에서, 수백 년이 지나도 아름다운 예술의 향기를 뿜어내는 이들의 묵직한 삶을 배우려는 마음으로 새해 첫 달을 출발하였다.

사진: 라이프치히의 Mendelssohn Haus

2020년 1월 31일, 115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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