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문화를 생각하며
1편: 시락국을 기리며

류 현옥

나이가 들수록 날씨를 탄다고 불편하다고 하시던 선배는, “한 평생이 이렇게 끝나는 가보다.” 라는 말로 한탄을 했다. 젊었을 때는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았다며. 온몸이 불편하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 뒤척거리는 날은 바깥을 나가보지 않고도 그날의 날씨를 예상한다는 분이었다.

고향의 하늘도 회색으로 우중충하고 바람이 일며 구름을 모아 비가 왔다 갔다 하는 날이 있지만 독일 날씨와는 달랐다. 고국의 날씨는 심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고국의 날씨는 그렇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런 날이면 뜨끈한 해장국에 보리밥을 말아 한 사발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결국 선배는 귀향길을 택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에게도 날씨병이 생겼다. 선배의 말대로 이런 날은 몸을 풀어주는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고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적이다. 중단했던 소설책을 들고 누우면 오히려 날씨 핑계로 소설이 끝날 때까지 침대에서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락국 = [표준어] 시래기국

귀국하기 전 선배가 얼마동안 변덕이 심한 독일 날씨와 노년기를 된장국으로 이겨나가던 때가 있었다. “야야, 된장 시락국 끓인다. 보리밥도 촉촉하게 했다. 와서 한 사발 먹고 가거라.” 하던 전화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얼마 전부터 소식이 끊겼다. 고국의 하늘도 옛날 같지 않고 속을 편하게 해주던 배추 시락국도 옛날 같지 않다고 몇 번 자필 편지를 보내 왔다. 다시 독일에 가고 싶다는 말까지 썼다. 선배는 나의 집에서 자전거로 25분 거리에 살았다. 멸치다시 국물에 풀어 넣은 된장이 끓어나며 풍기는 구수한 고향의 냄새, 시락국 향기가 열린 창문으로 흘러나와 골목에 들어서는 나를 맞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정차할 곳을 찾을 때면 선배는 어느새 알고 여린 창문으로 내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건물 4층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을 타고 흘러내리는 된장냄새가 층계마다 웅크리고 앉았다 나를 반겼다. 백년을 넘은 문화재 기념물로 보호를 받는 벽돌집에 된장냄새가 젖어 나의 옛 고향집으로 변한다.

고향이 눈앞에 서언하다. 검은 큰 밥솥 옆에 작은 국솥이 나란히 자리한 부엌이 눈에 보인다. 새벽에 일어나서 두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는 된장과 멸치 젓국을 넣어 물렁물렁한 배추 시래기를 주물어서 멸치다시 국물에 넣어서 끓였다. 그 맛은 오직 내 기억 속에 남아 혓바닥과 머릿속 뿐 아니라 온 몸속에 숨어 있다 되살아나온다. 된장과 시래기 국, 단어만 들어도 입속의 침샘이 작동되었다. 어머니의 시락국은 어디서고 먹을 수가 없는 일미였다. 선배는 새 배추를 사다가 멸치 다시에 된장을 풀어 넣어 끓였다. 싱싱한 생 배추를 썰어 넣었는데 시래기처럼 감칠맛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염치없이 훌훌 불어가며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속으로는 어머니의 시락 국을 생각했다. 기다리던 선배님이 물었다.

“맛이 어때?”

“정말 맛있네요. 속이 확 풀립니다.”

어머니 손맛이 같이한 시락국을 계속 생각하며 하얀 거짓말을 했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서 시락 국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여동생이 했던 말은 나를 실망시켰다.

“언니는 질리지도 않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던 시락국이 먹고 싶다고?”

“몇 년을 못 먹은 음식인데 질리기는?”

동생은 나를 한참 보더니,

“엄마처럼 그렇게 맛있게 끓일 수가 없어… 언니는 대신 맛있는 독일음식 많이 안 먹나?”

“맛있는 독일 음식?!”

나는 그렇게 말해놓고 눈을 감고 생각해 봤다. 독일에서 산 햇수가 더 많은 데도 먹고 싶은 독일 음식이 안 떠오른다. 나는 된장국에 비길 독일 음식이 없다고 말했다. 여동생은 그제야 나를 이해하는 듯 했다. 동생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된장 시락국은 몸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마음을 풀어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풀어주는 어머니의 된장국을 먹을 수 없는 삶을 반백년 살았다. 반세기 전에 독일 땅에 첫발을 디뎠고 그때는 ‘뭐, 냄새나는 된장국을 먹어야 하나? ’ 하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 식품학을 전공한 노인 학자와 한자리에 앉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인의 정기는 김치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김치는 정말 기발한 채소 저장법입니다.” 김치를 스스로 담아먹는 그에게 시래기 국과 독일의 날씨와 메랑꼴리에 대해서 물었다. 된장 시래기 국의 효과에 대해서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에 의하면 어린 날 먹고 자란 음식과 우리 몸에서 생산되는 효소가 관계를 지우고 있단다. 매일 아침밥을 말아 퍼 먹던 시래기 국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속에서 분비되던 효소는 신진대사 뿐 아니라 심신을 가볍게 해주었다. 이 음식을 섭취에 필요했던 효소의 차단은 어릴 때부터 키워온 신진대사의 기능 이 저하되지만 다시 섭취하는 순간에 기능이 재생된다는 것이다. 된장 냄새 하나만으로도 미각을 자극시키고 활력소가 된단다 .

생리 화학적으로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단다. 그것은 어린 날 즐겨 불렀던 고향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는 것과 같은 거란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겸손한 설명 때문에 더 감동을 느꼈다.

“이런 설명은 바람직한 것이 못됩니다. 이론적으로 알게 되면 감상적인 능력이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기억속의 된장향기를 추구하며 귀향하신 그 선배님에게는 이런 설명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2020년 3월 27일, 116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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