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을 살펴보다(1)

세상과 소통하는 신체

1914년 한 전시회에 마르셀 뒤상이라는 작가가 남성용 소변기를 출품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그러나 이 변기는 60년 뒤 조르주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 개막작품으로 출품됨으로써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 그 만큼 20세기 미술은 지난 세기와 달리 급속한 변화를 보였다.

현대미술은 일반적으로 1910년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해 소개된 큐비즘부터 오늘날까지의 미술을 일컬으나 좁은 의미일 경우 1960년대에부터 싹튼 팝 아트․신사실주의․옵 아트․키네틱 아트․미니멀아트․컬러필드 페인팅․플럭서스가 대두됐고 해프닝이 선보였다. 또 개념미술․반(反)형태․랜드아트․보디아트․지지체(支持體) 등도 나왔다. 산업제품과 영속성이 없는 천연재료들, 심지어 예술가자신의 육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소재를 이용하는 다양한 미술형식들이 속속 출현했다. 황당하고 도발적이고 난해한 기법도 생겼고 작가들은 일반대중을 끌기 위해 대중의 본능에 호소하거나 대중의 소외감을 유발하는 어려운 방법으로 자유스런 표현의 방법론을 즐겼다.

문화세상에서는 20세기 후반의 이러한 다양한 현대미술 가운데 신체예술을 살펴보며 신체예술 및 사진, 조각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길버트와 조지(Gilbert Proesch & George Passmore)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전개에서 󰡐예술가의 신체󰡑는 그 중심축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후반, 예술가의 실존을 주장하기 위해 회화적 매개로 사용되었던 잭슨 폴록 식의 예술가의 신체는 1960년대 들어 일상을 신체를 통해 예술로 제시하면서 현대미술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구 현대미술에서 예술가의 신체의 표상은 반복적 행동으로 삶을 흉내 내며 일상을 예술 현상으로 제시했던 1960년대 플럭서스와 해프닝에서 시작, 1970년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등을 거치면서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신체라는 물적 기반을 인식의 절대적 가교로 상정한 신체 현상학에 대한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의 관심은 예술의 영역에서 신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다.

90년대 이후 오늘날의 신체미술은 1970년대의 신체미술이 ‘바디아트’를 단순히 개념미술의 맥락에서 신체를 도구화한 것과는 다르게, 신체에 대한 전혀 다른 개념에 입각해 있다.

즉, 인간의 우월감을 확신케 해준 이성 중심적 가치관으로 무장되었던 모더니즘이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져 좌초한 후 신체에 대한 종교적 인식변화,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원적 인식 구조의 붕괴, 생명공학의 발달 등과 함께 그 동안 정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시되고 무시되었던 신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에서, 또 모더니즘 이후 새로운 돌파구로서의 낙관성을 보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한계로 드러낸 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불안과 위기를 느낀 미술가들이 무언가 확실한 정체성을 찾고 싶은 욕구에서 등장시킨 것이 결국 인간 신체(몸)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신만큼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육체이며 육체는 결코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유에 앞서 삶의 생태를 먼저 파악할 수 밖에 없다.” 라고 한 실존주의자 카뮈의 사고와 맥을 같이한다.

즉, 1990년대의 후기신체미술은 한마디로 사회적. 문화적위기, 혼란에 대한 자의식의 표출수단으로 대두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길버트와 조지(Gilbert Proesch & George Passmore)

길버트(1943년생)와 조지(1942년생)(Gilbert and George)는 1969년부터 <살아있는 조각>라는 퍼포먼스(행위 예술)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1971년에는 <노래하는 조각>으로 영국에서 선보이기 시작해서 세계의 주목을 받다가 최근에는 더 확장된 신체언어로 사진조각이라는 형태로 보여 주고 있다.

초기에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2명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그들은 자신들을 ‘살아있는 조각’으로 부른다. 가장 널리 알려진 1971년의 행위예술 ‘노래하는 조각’에서 손과 얼굴에 금속성 페인트칠을 하고 영국적인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녹음된 노래와 말을 틀면서 그 리듬에 맞춰 태엽 인형처럼 움직이며 “예술이여, 우리는 당신을 위한 몸짓을 언제까지고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작품 제작의 요소로서 살아있는 몸짓과 행위, 소리 등을 구사함으로써 기존의 예술 범주에 대한 도전이자 그 범주의 확장을 꾀하는 모험으로 드러났다. 퍼포먼스는 사진이나 회화, 조각처럼 오브제로서의 작품이 남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예술작품의 물신성과 그 신화적 아우라를 벗겨 내고 깨 버리려는 맥락이 더 강하다.

길버트와 조지가 자신들만의 문법을 갖추게 된 것은 1977년의 일이었다. 데뷔 이래 이들은 영국 런던의 게토인 스피탈필드에서 살아왔는데, 1970년대 후반 영국의 경제 사정은 대단히 좋지 않았고, 자연 이 지역에선 여러 사회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들은 그에 흥미를 느껴, 길거리의 풍경과 낙서와 구호들을 촬영해 자신들의 초상 이미지와 뒤섞었고, 곧 새로운 작품 형식이 마련됐다.

길버트와 조지가 제시하는 작품은 이처럼 모호한 의미를 부추겨서 우리에게 상징계 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게 유도한다. 실제계는 언어의 그물망에 걸러지지 않은 존재의 공간, 살아있는 신체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후 이들이 선택한 매체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미학이었다. 사진은 기존의 예술개념을 확장한 획기적 도구였다. 현실 재현의 도구이면서 현실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는 카메라 최초의 특성인 기록성을 버리고 컴퓨터 기술에 기반한 합성 기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작업을 해 나간다.

40년 이상 꾸준히 함께 일해온 이 예술적 동반자는 2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길버트와 조지의 현재 모습은 비주류 문화를 포착한 주류 예술가 그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의 문법이 그러했듯이 그들은 󰡐새로움의 충격󰡑을 주면서 미술계에 등장했지만, 더 이상 그들의 예술적 형식은 새롭지 않은 익숙한 것이 되었다. (편집실)

사진: Gilbert and George Exhibition, MONA, from 2015

2020년 4월 17일, 116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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