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 2020년 4월

진경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듯이 금년 봄은 전 인류에게 불안과 공포 속에 떨게 만든 가장 잔인한 봄 4월로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 겪게 된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역병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인류 역사상 아마 이런 엄청난 재앙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신의 저주를 받은 인간이 일으킨 재앙이라고도 말한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19 라는 전염병은 불과 몇 달 사이에 전 세계를 초토화 시키고 산업과 경제를 망가뜨렸으며 인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코로나 19는 의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신종 전염병이다 보니 치료약은 물론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아직 발명되지 않은 공포의 바이러스다. 더구나 무증상으로도 감염을 시킬 수가 있다 하여 서로가 서로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욱 참담하게 만든다. 또한 전염력이 엄청 강해 가족이 사망해도 임종도 지키지 못하며 장례마저 제대로 치루지 못하는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공포의 전염병이다.

현대의학으로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역병이 날마다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에 의료계도 당황하고 정부 방침도 처음에는 우왕좌왕 하는 실정이어서 불안은 더욱 불안을 불러오고 초조와 공포 속에 떨게 만들었다. 세계 어느 곳보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자부하던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도 무섭게 번지는 코로나 19 확진자와 처리 능력을 상실한 시신들로 성당이나 창고 안에 즐비하게 들어찬 관들이 뉴스를 통해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이곳 독일도 관공서와 학교, 유치원은 물론 모든 회사와 식당, 상점 문을 닫았고 심지어 어린이 놀이터에까지 빨간 색이 섞인 금줄을 쳐 놓았다. 마스크 사용을 꺼리던 국민들한테 뒤 늦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시키고 경찰의 감시 하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하고 있다.

국가마다 대문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웬만큼 사는 나라들은 타지에 나가 있는 자국민을 국적기를 보내서 자기 나라로 실어 날랐으며 우리나라 역시 여러 나라에 비행기를 보내서 해외에 나간 국민들을 데려왔다. 하늘 길도 막히니 2분이 멀다하고 이착륙하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날기를 포기한 비행기들이 인적이 끊긴 넓은 활주로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백화점, 식당, 카페, 미장원 할 것 없이 모든 서비스업의 문은 굳게 닫쳤으며 심지어 학교도 휴학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니 온 세계가 정지되어 인적이 없는 거리는 사막 한 복판처럼 황량하여 어디를 가나 적막강산이다.

이 살벌한 현실이 얼마나 지속 될까,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그동안 손을 못 댄 일을 찾아 정리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요즘은 온 몸이 나른하니 없던 병도 생기고 삶의 의욕마저 상실되어 가는 기분이다. 이럴 때는 미우나 고우나 서로 의지하고 같이 살아가는 대화상대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비감이 들 때도 있다.

이런 판국에 누구를 만날 수도 없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늘 찾아가는 곳이 주말정원이다. 계절은 봄의 한 가운데 4월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한낮에는 햇살이 따뜻해도 해질녘이 되자 정원 한 구석에 보자기만큼 남아 있는 한 자락 엷은 햇살이 마음마저 스산하게 해준다.

코로나 19 역병으로 인해 사람과의 교류가 끊기고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어진 이 봄에 내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주말 정원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초록 잔디위에 노란 민들레가 눈부시게 미소 짓고 샛노란 개나리꽃의 뒤를 이어 서둘러 피었던 목련이 뚝 뚝 눈물을 삼키며 송이채 떨어지고 나니 가지에 푸른 잎만 남았다. 고목이 되어버린 아름드리 체리나무 뭉퉁한 검은 가지에 꽃망울이 터져 하얀 눈꽃처럼 화사하더니 어느 사이 한 잎 두 잎 체리 꽃이 풀풀 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분홍 사과 꽃이 방실 꽃망울을 터트렸다.

어느 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는지 녹음이 짙어가는 무성한 잎사귀 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들은 이 봄을 즐기는 듯 청아하게 목청을 뽑는다. 무엇이든 다 할 것처럼 큰소리치던 인간들이 머리카락의 천 분의 일 크기도 안 된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면서 새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편리함과 이득만을 추구하며 하늘과 땅과 바다를 모두 오염시키며 기고만장 우쭐거리더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하며 비아냥거리지는 않을까?

거의 날마다 정원에 나오지만 딱히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빠르게 퍼지는 전염성 때문에 요즘 거리두기를 철저히 강조하고 있고 공원 산책길까지 경찰들이 순찰을 돌기도 한다. 푸름만이 있는 평화로운 정원에 나와 앉아 책도 읽고 지루해지면 꽃나무에 물도 주고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비가 자주 내려 우산 없이는 못 산다던 독일 날씨가 몇 년 전부터 가물기 시작하더니 금년 봄에도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몇 주 전에 날씨가 하도 좋아 겨우내 자란 잡초를 뽑아내고 좀 이르지만 시험 삼아 뿌려 놓은 시금치와 아욱이 어린잎을 틔우고 앙증스럽게 올라왔기에 물을 주고 있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심하고 변덕스런 독일의 사월 날씨라서 아직 마음 놓고 텃밭에 씨앗을 뿌리지 못한다. 우리와 정원 울타리를 맞대고 있는 이태리 사람 조바니의 말에 의하면 오이 호박 등 모든 농작물은 5월 중순이 되어야 맘 놓고 심을 수 있다고 한다.

오늘도 조바니가 울타리 너머로 맥주 한 병을 넘겨주고 자기도 한 병 따서 번쩍 들어 올리며 같이 마시자고 한다. 그들 부부는 우리 한국 사람들 같이 정이 많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내 잔은 반도 더 남아 있는데 조바니는 자기 부인이 저녁을 해놓고 기다린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흔들고 훌쩍 가버리고 한 뼘도 안 되게 남아 있는 봄볕마저 식은 숭늉처럼 미지근하다.

빈속에 한 모금 마신 맥주가 속을 싸하게 훑는다. 나도 집에 가야겠다, 생각하며 주변을 정리하는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컵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집에 가도 조바니처럼 밥을 해놓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가스 렌지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몇 해 전 한국 휴가 때 남대문 시장에서 사온 노란 양은주전자에 담긴 물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덜렁거리며 금방 끓었다. 컵라면에 주전자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왠지 처량한 생각이 울컥 올라왔다. 해도 기울고 새들의 지저귐마저 멈춰버린 주말정원에 홀로 남아 컵라면을 앞에 놓고 앉아서 이 생각 저 생각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왠지 모를 서러움이 목젖을 타고 올라온다.

전 세계는 지금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병과 사투를 벌리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여러 날 째 확진자 수가 열자리 안 밖에 머물고 있다니 다행이다. 관리와 치료는 물론 빠른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진단할 수 있는 진단키트 발명으로 코리아가 모범 국이라고 전 세계가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실력의 의료진들이 피나는 노력과 희생을 감수하고 정부의 탄탄한 뒷받침과 더불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함께 이루어 낸 값진 성과인 것이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단호히 슬기롭게 대처하는 대단한 대한민국! 코레아가 최고라고 전 세계인이 칭송하고 있는 뉴스에 마음이 흐뭇하다. 뿐만 아니라 재독 한국대사관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서도 원로교민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스크를 보내주는 훈훈한 소식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교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어려울 때 내게 의지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든든한 조국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마음에 큰 위로를 삼는다.

2020년 5월 1일, 116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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