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한인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

류 현옥

우리가 즐겨 사는 나라 독일정부가코로나 위기에 접하여 국민에게 전례 없는 생활 규칙을 발표했습니다. 의사 방문과 약국과 시장을 가는 일 외는 외출을 줄이라는 것입니다. 산책을 할 때도 한집에 사는 가족들과 할 것이며 거주를 같이하지 않을 경우 두 사람 이상은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다 폐쇄되었으니 어디 갈 곳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세 사람이 모여 공원에 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하면 경찰이 와서 신분을 확인하고 벌금을 내야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모든 예술 문화 시설이 문을 닫았습니다. 레스토랑, 박물관, 필하모니, 도서관, 영화관, 오페라하우스와 스포츠장이 폐쇄되었습니다. 가능한 집에만 있으라는 지시입니다.

밥 먹고 잠자는 것 이외의 모든 사회생활이 중지된 상태입니다. 잊고 살아온 우리말, “배부르고 등 따시면 행복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음식이 든 복부와 뒤를 지켜주는 등 위치의 따뜻함으로 근본적인 삶이 보장되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했을 때의 격언입니다.

배부르고 등 따신 것만으로 보장된다는 행복을 잊고 살아 온제가 너무나 오랩니다. 한 단계 넘어선 지적 만족, 척추 위에 앉은 머릿속이 요구하는 정신적 즐거움과 정서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온 세월이 엄청 오래됩니다. 많은 정신질환이 생겼습니다. 잘 먹고 잘 산다는 말도 그 의미를 잃었습니다. 배고픔을 모르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시간이 없다며 바쁘게 살아온 생활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코로나는 정치적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로 해결할 수 없으며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빈부의 차이, 교육 수준의 차이, 인종차별 없이 나라와 국경을 무시하며 마구 침범합니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구별이 안 되니 끌어안고 반가움을 표현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구별 없이 만나서 입을 맞추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제 막 건너온 사거리에서 지나가던 행인이 기침으로 퍼뜨리고 간 감염자는 자신이 감염된 것도 모르기에 건강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지나가는 사람과 약국과 슈퍼에서 만난 사람과 1,5m의 간격을 두라고 합니다.

법과 질서, 순종에는 세계적인 우등국민 독일인들은 잘 지키고 있다는 통계가 보도됩니다.

이곳에 살면서 적응하고 훈련이 잘 된 우리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사회학자,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번갈아 충고를 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정서의 안정을 기하고 전화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손 편지를 써보라고 권고 합니다.

문제는 전화기를 통한 대화의 내용입니다. 온 세계인이 선전포고를 하고 투쟁을 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의 적 코로나 비루스가 대화 내용의 주인공으로 그 위치를 고수합니다.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TV와 라디오를 통한 뉴스시간 이외도 코로나 ‘특방’이라는 표제를 붙여 쉴 새 없이 중계합니다. 마치 중독에 걸린 것처럼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에 대한 전율적인 보고를 듣습니다. 유튜브를 통한 진실과 거짓보고를 구별 없이 들은 후에는 친척과 친구들과 전화로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하루에 한번 이상 뉴스를 듣지 말라고 권고하지만 지금의 현실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혼자 사는 친구 한 사람이 코로나비루스를 혐오하고 생활규칙으로 규제하는 정치인을 혐오하고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하면서 이제 전화를 더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외아들이 애인과 십여 년을 같이 살며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드디어 결혼을 하는데도 참석하지 못하고 비디오 결혼식 손님이 되었습니다. 예약했던 모든 이벤트를 취소하고 아이를 맡기고 떠나기로 한 신혼여행도 취소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만나 끌어안으며 축하를 해주었을 하객들이 쉴 새 없이 전화를 해와 며칠째 하루에 4시간씩 전화통에 매달리게 되자,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우리 결혼식에서 만나면 이야기 많이 하자.”며 코로나가 세상을 정복하리라 예상도 못한 시기에 정한 결혼날짜를 기다린 친구들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들의 결혼식이 있을 며칠 전에 그 중의 한 친구가 코로나에 잡혀 저세상으로 끌려 가버렸습니다. 그녀는 일 년치 필하모니 입장권을 계약하여 정규적으로 콘서트에 가며 오페라를 애호하는 음악가입니다. 정년퇴직자가 되기 전에 암 선고를 받아 투병을 한 용사입니다.

나이도 그렇고 건강상태가 코로나 고위험군에 들어가기에 일체 외출을 하지 않고 식품점에서 배달하는 식품과 생활용품으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몇 주를 그렇게 살다보니 정신상태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지치지 않고 코로나 위기를 보고하는 TV는 안 보기로 하고 라디오도 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 씩 작동되던 오디오가 고장이 나서 음악을 들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걸려오는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습니다. 신체적 격리뿐만 아니라 정신적 단절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위험한 상황인 줄 알면서도 친구로서 도울 길이 없었습니다.

손자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른 도시에 사는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방문을 올 수도 없습니다. 독일 방역본부는 어린아이들과 위험 그룹인 노인들의 만남을 피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식품배달원이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며칠 전에 문 앞에 두고 온 식품봉지가 그대로 문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감염자였다는 것은 부검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녀가 살던 아파트 한 층이 폐쇄되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별세계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멀쩡하던 사람도 “하늘의 천벌이 인간 세상에 내려졌다.”고 합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신의 엄중한 벌이라고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에 올 세상은 그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외출금지가 해제되고 술집이 다시 열리고 도서관과 영화관 등 온갖 문화시설의 문이 다시 열려서 사람들을 기다리지만 거리낌 없이 제지 없이 마구 드나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얼마간인지 모르나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다녀야 한답니다.

코로나는 한번 정착한 인간 세상을 쉽게 다시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입니다. 당분간은 코로나와 같이 살아야한답니다. 예방주사를 맞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살 수 있는 때가 되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한번 걸렸다가 회복한 사람들은 면역성이 생겨 안심해도 된다는 학설을 뒤엎고 재감염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인간사회를 바꾸겠다고 선포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마치 인간의 손에서 지구를 구해 내겠다고 선포한 것 같이 보입니다.

동네 뒤의 숲속을 산책하면 코로나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지난 몇 주간 동안 비행기도 날지 않았고 다른 도시에서 쉴 새 없이 달려오던 자동차대열도 사라지고, 쉬는 시간이면 동네 밖에까지 떠들썩하게 들리던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의 외침이 사라져 적막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공기가 맑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색이 깊은 청색으로 한층 높아졌습니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2m 간격을 두고 지나가며 한 결 같이 인사를 합니다.

“당신이 싫어서 피하는 게 아니고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지 모릅니다. 코로나 다음 세상으로 가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환경보호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나왔던 젊은 세대들이 보람을 느낄 일입니다.

100만의 사망자를 낼 것이라고 예언한 정치인도 집에 들어 앉아 창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면 됩니다. 이것이 자연스런 세상의 흐름인지 누가 압니까? 흐르는 강물의 방향을 역류하여 전력을 다하여 헤엄을 쳐봐도 상류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해온 인간의 자만심에 금이 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의 세상이 되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며 고개를 들어 숨 쉬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뿐입니다. 강의 하류에 도착하면 강바닥이 발밑에 닿을 것이고 우리는 일어서서 물속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거기까지 따라오지 못한 사람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참지 못하고 중간에서 하차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힘이 모자라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강물은 코로나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대했을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불공평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재독한인 여러분

부디 하류에서 바로서서 걸어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2020년 5월 1일, 1169호 14-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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