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철 아동을 소개 합니다

1927년, 7명의 조선 유학생들이 일본 동경 6평의 다다미방에서, <우찌무라 간조>의 지도아래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성경공부방에는 일본 대학생 몇 명과, 조선 유학생으로는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유달영 등 7명이었습니다. 그리고 1928년 7월에,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중심인물은 28살 된 청년 김교신 이었습니다. 조선 유학생이던 김교신은 성서 조선 잡지 발행에 감격하여,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애인이 둘이 있다. 조선이라는 애인과, 성서라는 애인이다. 그래서 <성서 조선>이라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조선을 살리는 길은 성서 위에 조선을 세우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교신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서울 양정 중학교 지리 교사로 부임해서, 지리 과목과 함께, 성경과, 조선의 얼과, 혼을 가르쳤습니다. 김교신은 평생 일기를 썼습니다. 매일 아침, 자신이 담임하는 50명의 학생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기도하였습니다. 반 학생 중에 손기정이 있었는데, 그가 출전하는 마라톤 선수 동경 선발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담임선생인 김교신은 자전거를 타고, 손기정의 뒤를 따랐습니다. 반환점을 지나서 손기정 선수가 쓰러지려 할 때, 김교신 선생은 울면서, <기정아…..!힘내라…..! 조국을 생각하라…..! 내가 기도하고 있다.> 손기정은 김교신 담임선생님의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들면서, <내가 종살이 하는 조선을 위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달리자>고 입술을 깨물며 달려 1등에 선발되었고, 결국, 베를린 올림픽에서 1등의 월계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손기정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마라톤은 전략과 작전이 아니다. 정신력이다. 2시간 26분 42초로 인류 역사상 최고 기록이 될 줄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성서 조선 잡지는 발행정신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300부 이상 발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김교신은 500부까지 만들어서 자전거에 싣고 가서 팔았습니다. 그 후, 김교신은 양정 중학교 교직에서 강제 퇴직 당했습니다. 조선의 독립 정신을 고취했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그리고 1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교신은 함경남도 흥남 질소 비료 공장에서 기숙사 사감으로 일 했습니다. 그곳에는 조선 근로자 5천 명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도박과 술로 방탕생활을 하였습니다. 김교신은 도박판을 찾아가, <조국은 망하고, 일본의 종이 되었는데, 이것도 모자라, 우리 자손들에게도 종살이를 시킬거요?! 여러분, 잃어버린 조국을 생각하십시오!> 화투판을 찾아가 울면서 애원하였습니다.

근로자들은 김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같이 도박장과 술에 취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계속적으로 말하자, 차츰 감동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도박과 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공장의 생산성이 눈에 띠게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경찰은 김교신을 해임시키라고 공장장에게 압력을 가했지만, 김교신 때문에 노동 생산성이 좋아진 것을 알고 있는 공장장은, 오히려 김교신을 보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1945년 3월부터, 전염병인 장티푸스가 만연하여, 공장의 근로자들이 하나 둘, 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김교신은 전염될 수 있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환자 한명, 한명을 부모처럼 옆에서 간병하며 도왔습니다. <장티푸스가 무서워 예수님의 제자인 내가 몸을 피해 이곳을 떠난다면, 나는 예수님을 은 30량에 팔아버린 가롯 유다가 된다. 예수님 앞에 부끄러워 어떻게 예수님을 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며, 김교신은 예수님을 섬기듯, 내 가족을 돌보듯, 헌신하며, 지극정성으로 그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장티푸스에 감염된 김교신은 1945년 4월17일, 병마와 싸우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조국의 해방을 4개월 남겨두고서 말입니다. 그때 김교신의 나이 45세였습니다. 김교신은 예수님의 제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예수사랑, 겨레사랑, 조국사랑, 성서사랑, 성서 위에 조선을 세우자!>

그러나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는 그동안 한국교회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해 왔습니다.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는 <교회가 필요 없다가 아니라, 예수님이 없는 교회답지 못한 교회는 간판을 내리고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으로, 교회가 인본주의로 흘러가고, 비본질적인 것을 더 중요시 하고, 예수님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교회, 무늬만 예수로 치장한 이름뿐인 교회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만일, 김교신과 같은 이가 오늘까지 살아있다면, 작금의 교회들을 향하여 어떤 호통을 칠 것인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김진홍 목사의 설교 중에서 발췌)

오늘 소개드리는 송형철 아동은, 2013년 4월 서울 관악구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에서 발견되어, 현재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아동시설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아동은 2020년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아직 한글을 완벽하게 읽고 쓸 줄은 모르지만, 상가의 간판이나 홍보 문구를 읽어 보기도 하고, 다른 동생들에게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난생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이 되긴 했지만, 요즈음은 코로나 19로 학교에 갈 수 없어, 시설에서 형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형철 아동이 좋아하는 음식은 분식류입니다. 그러나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도 곧잘 먹습니다. 또래 아동들처럼, 팽이와 장난감을 좋아합니다. 자식을 베이비 박스에 버린 형철이의 엄마 아빠는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을까요? 자식을 버린 뒤 후회하지는 않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은 계속 인구 감소 추세입니다. 노인들은 많아지는데, 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핏줄이라면, 누가 되었던지 잘 키워서 장래의 일꾼으로 성장 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과거의 출산율에 비하면, 너무나 저조합니다. 초등학교가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역행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민여러분, 국가가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장래 대한민국의 일꾼이 될 형철아동에게 교민 여러분의 격려와 사랑을 나누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이 많으니 절대 조의금을 받지 말고, 그저 와서 맛있게 먹고,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 한때를 풍미했었던 코미디언 고(故) 구봉서 장로님의 생전의 부탁입니다. 그는 2016년 8월 27일,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가난한 어린이를 돕고 있었고, 문경에 소재한 신망 애육원 최장기 후원자였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후원을 끊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아직도 훈훈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민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2020년 5월 8일, 1170호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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