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2015년에 시작된 HeRo(해로)는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활동의 필요성으로 귀결되었다. <해로>의 입술로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독 동포들의 목소리를 그릇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의 입구가 되길 바란다(필자 主)

7/ 호스피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전주곡

봄이 한창인데 생(生)의 겨울 앞에 선 이들이 있다.

요즘 부쩍 부고(訃告)가 많이 들린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야외 장례식이 눈에 띈다. 인간이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무 아래 영원한 쉼을 마련한 이도 보인다. 소풍왔던 세상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은 자는 봄바람처럼 고요하다. 그의 고단한 삶의 기록은 이제 남아 있는 자들이 가질 기억의 몫일 뿐이다.

톨스토이는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임에도 순간순간 잊는다. 죽음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환자들은 차가운 의료장비에 둘러싸여 튜브에 몸을 감싼 채 죽음을 기다린다. 하지만 정작 죽음의 고통보다도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별의 과정에서 어느 누구의 환송 없이 삶과 이별할 때다. 이국 땅에서 홀로 된 이들의 마지막이 슬픈 이유다.

독일에는 약 4만 5천여 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노년층을 이루는 세대는 6-70년대 독일로 온 이들이다. 재독 동포사회의 마중물이 되었던 그들은 이제 잔뜩 물먹은 스펀지처럼 고단한 노구가 되었다. 분주함으로 지나왔던 시간엔 미처 몰랐던 상실감과 고독감이 스멀거린다. 이들에게 가족이나 일상의 벗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육신의 고통은 더 시린 통증으로 다가온다.

사단법인 <해로> 호스피스 팀은 이렇듯 외롭고 힘겨운 투병의 삶을 사는 이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코끝의 호흡이 점점 사그라드는 이들에게 누군가가 내민 손은 고귀한 산소 역할을 한다.

<해로> 이정미 팀장은 „제가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한인 어르신들 중에 고독한 투병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거에요. 사회적 커뮤니티와의 단절로 소외가 된 이들은 중병 앞에서 더 처절한 아픔을 토로합니다. 한 분이라도 외롭지 않게 평안히 삶과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녀의 바람처럼, 해로 호스피스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환우들의 손짓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삶을 마감한 H어르신은 해로에서 꾸준히 돌봐드렸던 분이다. 그녀는 5년 전부터 치매질환을 앓았고 3년 전부터는 요양시설에 입주하게 되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늘 기도하는 습관이 배여 치매 중에도 기도의 손을 모았다. 약 10개월 전부터 암이 발병했는데 고통을 신앙심으로 아름답게 이겨내고 있었다. 그녀 특유의 긍정모드는 경건하게 살아온 삶이 녹아난 아름다운 자화상이었다.

„제가 그분 돌아가시기 3주 전에 뵈었는데 ‚어디 편찮으신 데 없으세요?‘ 했더니 ‚아니 안 아파. 괜찮아, 이렇게 멀쩡하잖아.‘ 하면서 해맑게 웃으셨어요. 그분 곁에는 우리 봉사팀 외에도 신앙친구들과 든든한 아드님이 계셔서인지 외로워 보이지 않았어요. 그분의 마지막은 편안했고, 정말 웰다잉을 실천하신 분 같아요.“

H어르신을 방문했던 자원봉사자의 말이다. 그러기에 자녀가 없거나 이국 땅에서 사회적 접촉이 없는 이들에게는 해로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해로>에서는 주변에 홀로 사시는 이들이 보이면 관심을 갖고 기록을 한다. 그분들이 당장은 급하지 않아도 다가올 위급 상황에 효율적으로 돕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회생 불가능한 중병에 걸렸을 경우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방지하기 위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Patientenverfügung), 예방적 대리권(Vorsorgevollmacht) 작성을 도와주기도 한다. 물론 임종 후의 관리도 중요하다. 장례식 및 장지와 관련한 유가족들의 장례상담도 무료 서비스한다.

실질적인 도움을 위한 봉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은 필수다. 교육은 총 130시간으로, Celler Modell을 준수하며 추가적으로 독일 사회복지법, 완화의학, 대화의 기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이민자와 치매 등 다양한 보수교육을 다룬다. 교육과정과 실습을 이수한 자원봉사자는 말기 환우와 그에 준하는 말기 질환의 진단을 받은 환우 및 그 가족을 총체적으로 돌본다. 가족의 요청에 따라 환우가 평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영적 돌봄을 병행하기도 한다.

이국 땅에서 삶을 마감하는 이들의 소중한 친구, 자식이 되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누군가 곁에 있어줘야 한다면 그 누군가가 우리가 될 수 있다. 먼저 갈 이들의 벗이 되어주는 일은 뒤따라갈 우리에게도 생의 이별을 위한 소중한 리허설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전주곡은 겸허함이 내재된 사랑의 마음이어야만 울림이 크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후원문의: 이메일: info@heroberlin.de/ 홈페이지: www.heroberlin.de

2020년 6월 12일, 1174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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