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한인천주교회 50주년 기고문 – 3

쾰른 한인천주교회 50주년 기고문 – 3

빛을 비추소서!

쾰른한인천주교회 박영숙 세실리아

“엄마, 성당가면 안 돼. 본,쾰른,뒤셀,각지에서 사람들이 다 모이잖아. 엄마는 감기도 잘 걸리면서 절대 안돼요.“ Covid19가 걱정된 아들의 염려 전화다. ”응,알았어, Danke!“

“어떡하지?“ 그러다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미사가방을 챙기게 되는 나. 3, 4월 두 달의 공백 후 5월 중순부터 다시 미사가 재개된 후에는 아이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주일 미사에 이렇게 전처럼 다시 성당으로 행하고 있다.

Corona로 집에 거의 갇혀서 지내던 지난 몇 달, 두렵고 불안할 때, 성경 필사를 하면서 많은 위로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2019년 본당에서 50주년 희년을 맡기 위한 준비로 성경쓰기와 성경필독을 하기로 했고 나도 그동안 틈틈이 써왔던 성경필사를 2020년에는 완필하겠다는 목표로 써왔다.

신심단체 만남 등 내 일상의 많은 시간을 차지했던 성당에 가는 시간이 줄었고 나의 독일에서의 삶, 공동체와의 인연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이제 꼭 6개월 후면 ‘70’이라는 숫자가 나를 따라 다닐 것이다. 그래도 추억은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망가뜨리고 독일로 떠나온 젊은 날에 머물고 있다.

“네가 선생이 되면 나는 너 밥해주며 너하고 살란다. “

“엄마는 아들 두고 왜 나하고 사실려고 해?“ “아들은 할아버지 사랑에 빼앗겼으니까.“

장손인 나의 동생보다 맏이인 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 바치시며 내가 교사가 되기를 꿈꾸던 엄마의 소원대로 나는 교육대에 입학하여 반 학기를 잘 다녔는데, 방학 동안 외국 바람이 들었다. “나는 유학갈거야“ 라고 엄마의 도움 없이 기숙사며 장학생으로 졸업할 수 있는 K대 간호대로 옮겼다. 그 당시 우리는 얼마나 외국을 동경하고 있었는지!

이때부터 엄마와의 대화는 뜸해졌다.

매정하게 엄마를 떠나와서 독일의 한 시골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국의 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유학의 꿈은 일단 접었다.

유학 대신 결혼하여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다. 믿음을 가진 남자였다. 나도 학창시절 친구 따라 세례는 받은 상태니 일단 대화가 통했다. 남편은 매 주일마다 양복을 차려입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 하느님 사랑은 몰랐지만,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 그가 가는 곳을 따라다니던 세월이 40년. 이제는 내가 주일날이면 먼저 차 빼라고 재촉하게 되었다.

그 후 50년 공동체사 가운데 40년을 나는 이 공동체에 몸담고 있다. 이 안에 사는 동안 아이들을 키우면서 큰 힘을 얻었고, 몸이 아플 때도 형제자매들의 기도와 위로가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한때는 사제가 못마땅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장례미사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저분을 통해서만 천국으로 갈 수 있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주님은 나를 다시 주님의 집에서 기쁘게 봉사하며 살게 해 주셨다.

“내 가지에만 붙어 있거라“하시면서… 매일의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엄마에게 저지른 불효도 기억하며 주님께 자비를 청하는 시간도 갖게 해 주셨다. 이국에 사는 나에게 공동체원은 내가 한국에 두고 온 식구 대신 선택한 커다란 가족이었고 든든한 신앙의 울타리였다.

2020년 6월 28일 쾰른 한인 천주교회는 설립 5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50년 전 6월 어느 날 독일의 한인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한국에서 한 사제가 파견되어 쾰른에 도착하신 것이다.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맞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여왔다. 교우들은 영적으로 더 깊고 맑아지고자 50만단의 묵주기도를 목표로 바치기 시작했고 도보순례를 함께 하며 우리의 지난날에 쌓여 있는 것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기념미사를 봉헌하고자 할 때 코로나 격리로 계획했던 기념행사 계획들은 포기하여야만 했다. 그래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 감사미사를 봉헌하고자 한다. 외부 초대 손님 없이, 함께 다 모일 수도 없어 두 차례에 나누어 조촐히 감사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런 일을 겪으니 정말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가는 과정 자체이구나 생각이 든다.

특히 1월 전체 신자가 청주교구 사회국장이신 최 바실리오 신부님과 즐겁게 본당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일일피정을 했었는데 이제 그것이 얼마나 귀한 기회였는지 알게 된다.

특별히 오래 기억날 의미 있었던 50주년 계획 중 하나는 2018년부터 시작한 Trier 마티아스 성인묘지로 향한 도보순례다.

5월의 유채꽃이 만발한 길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었던 것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3박4일을 기도하며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아침미사-“빛을비추소서!”를 외치면서 시작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주 하느님 크시 도다“성가와 함께 펼쳐지는 우리의 하루는 아름다운 자연, 강을 따라 자라난 이름 모를 들꽃들, 비탈진 산을 오르고 내려가며 매일 14-16km를 평균 연령 70대임에도 힘든 줄 모르고 걸었던 너무 아름다은 시간이었다.

3년 계획 마지막 해인 올해 5월16일, 드디어 전 공동체 일행이 도보로 마티아스 성인묘지까지 순례하려던 계획은 코로나로 인하여 내년으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하느님 보시기에는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는데 1년이 대수랴! 나는 내년 5월, 형제자매들과

함께 Trier로 향할 꿈에 부풀어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참 행복하다. 나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에게 힘을 주시는 주님, 형제자매님 사랑합니다~.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의 빛을 비추소서!“( 시편4:7 )

2020년 6월 26일, 117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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