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의 길을 만들어 가야

– 베를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집회‘ 광장의 목소리들

코로나가 모든 걸 완전히 망쳤다? (Corona hat alles versaut) 적어도 한반도 평화를 향한 독일 동포들의 의지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를 기록한 지난 토요일, 한국전쟁 발발 70년, 분단 75년을 맞아 베를린 포츠담광장에서 50여 명이 한반도 평화를 외쳤다. 한민족유럽연대와 코리아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오래 간만의 대중 집회였다.

극단으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북한의 ‘대남군사행동 계획 보류’ 조치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역시 6.25전쟁 발발일 전후로 대북 정책 관련 집회가 연일 벌어졌다. 대체로 “한미워킹그룹 해체”와 “남북정상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메시지였다. 일단 냉각 분위기가 조정 가능한 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의 전개를 비롯하여 전시작전권 전환 검증 평가와 맞물려 있는 8월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 문제가 추후 남북관계의 온도를 결정할 중요한 새 변수로 떠올랐다.

베를린 집회에서는 먼저 최영숙 한민족유럽연대 대표가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한반도의 궁극적인 평화를 위해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며 집회 시작을 알렸다. 각자 만들어 온 피켓을 든 참가자들은 평화의 상징인 흰색 티셔츠나 한반도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채, 사회적 간격을 유지하며 띄엄띄엄 서 있었다.

이어 성악가 목진학의 <홀로아리랑>이 한낮의 베를린장벽을 휘돌아 광장에 울려 퍼졌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로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사람들에게 배를 만들어 주고 싶다면 일감을 나누어 줄 게 아니라 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라 했던 이가 생떽쥐베리였던가.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남북 공통의 지상과제인 평화 통일을 되새기면서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어 문화인류학자인 정진헌 박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운동은 한반도 내 가장 비평화적인 구조인 분단을 없애자는 것이며, 분단의 원인은 식민의 역사에 기인하니 한반도 평화운동은 탈식민, 탈분단 운동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패전으로 인해 국가가 분단되고 과거사 청산과 피해국가에 대한 사과에 적극적이었던 독일과 달리, 전범국가인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가 분단된 것, 그리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는 일본 뒤에는, 미국 패권을 위해 불평등한 동맹관계로 구축된 한미일 공조체계가 근본적인 문제임을 지적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구호를 외치기가 여의치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손수 만들어 온 피켓을 흔들며 “탈식민, 탈분단, 한반도 평화 앞당기자”며 화답했다.

“구원의 힘은 회상”이라는 말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상기의 힘’과 뜻이 통할 것이다. 오늘날 70년간 존속된 휴전 분단 상황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것은 한반도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 확인은 곧 망각을 위한 저항에 다름 아닐 것이다.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두 나라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주적일 수 없으며, 분단의 책임을 묻고 우리의 요구를 당당히 관철시켜야 진정 평등한 관계의 동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그날의 자주적 평화시위를 통한 정체성 확인이야말로 통일로 가는 동력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다음으로 <4.27 판문점 공동선언>, <9.19 평양 공동선언문>이 여러 언어로 낭독되었다. 유학생과 1세대 한인들, 독일인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참가자들이 열띤 목소리로 낭독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6.25는 이제 전쟁기념일을 넘어 평화를 다짐하고 실천하는 평화기념일이 되어야 한다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실천하고 강제하는 범국민운동을 벌여 나가자는 취지의 <전쟁을 넘어 평화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독일통일의 상징인 포츠담광장에서의 선언문 낭독은, 남북 4대 합의의 핵심인 ‚자주 독립‘과 ’상호 존중‘을 환기시키고, 합의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의미였다. 또한 국회는 이러한 남북 합의들을 비준, 동의함으로써 남북합의의 실천적 토대를 마련하라는 요구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그 동안 사회경제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구조로, 다른 나라를 뒤따라가는 추격형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난 극복을 필두로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한국형 뉴딜을 통한 선도적 경제로의 질적 전환‘이 코로나 이후 경제적 자주독립을 추동해 낼 힘이라면,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정치적 자주독립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칼은 베어버린 허공의 끝에서 내려오지만 칼집은 여전히 베지 않은 허공을 지킨다”(이빈섬의 시, ‘칼집의 노래’ 중에서)고 한다. 문 대통령의 발언대로 “칼은 칼집 속에서 힘이 더 강한 법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역대 최대규모로 국방비를 늘리고 첨단 무기를 구입한 것은 자체적인 대북 억지력 강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북의 높은 안보능력은 이미 안팎으로 증명된 바 있다. 높은 국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국, 대한민국이 이제 대북 문제에 있어서도 자주독립이라는 토대 위에서 흔들림 없이 평화안보, 평화경제협력 체제로 뚜벅뚜벅 전진해

문 대통령의 발언대로 평화가 경제이고 생명이라면, 평화공동체로 가는 꿈은 남북이 함께 꾸는 꿈이어야 한다.

광장의 집회에서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없던 길도 만들어서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리라.

글: 코리아협의회 정유진

사진: 코리아협의회

2020년 7월 3일, 1177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