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여행 2019년 9월19일 ~ 24일
한국에서여행 9월 24일 ~ 10월20일 (4)

황만섭

부석사에 올라가는 길은 가팔랐다. 올라가다 쉬고,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거듭했지만, 결국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거친 길바닥에 돌까지 발에 걸렸고 심한 경사 길은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다. 4박5일 일정에 우리는 피로가 쌓여있었고 이미 지쳐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지금의 나는 “어느 씨름판에 가서 황소나 한 마리 따올까” 하고 힘쓰기에 몰두했던 옛날의 젊은 시절의 내가 아니다. 꼭 보고 싶었던 무량수전을 못보고 그냥 되돌아간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었지만, 사람이 우선 살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문무 왕의 명을 받아 의상대사가 지었다는(676) 부석사는 고려시대 때 공민왕의 명을 받고 원웅국사가 더 많은 건물들을 추가로 지으면서(1372) 오늘에 이르렀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옆면 3칸이 들어간 무량수전은 황금비율이 적용되었다는 사실이 훗날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고대 이집트인이 시작한 황금비율(1:1.618, 기하학적, 건축수학)은 그리스 수학자에 의해 황금비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황금비율로 칭송 받는 건축이나 작품으로는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 이집트의 피라미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비례도’와 모나리자,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 상 등이다. 지금은 일반화 되어 액자, 창문, 십자가, 주민등록증, 신용카드, 담배 갑, 텔레비전 화면, 영화관의 스크린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있지만, 그 옛날 황금비율을 건축과 작품에 적용한 선조들의 지혜는 놀랄만한 대사건이었다.

서울에 있는 호텔로 되돌아가는 길은 동해안도로의 드라이브코스를 포기하고 곧바로 서울을 향했다. 한국의 고속도로는 어딜 가나 넓고 편하고 아름다웠다. 전에 공사로 여기저기 파헤친 작업장을 지나칠 때는 보기가 불편했지만, 이제 공사가 다 끝나고 자연이 스스로 자신을 단장한 우거진 산하는 아름다웠다.

이제 4박5일 일정이 끝난 우리에겐 바쁜 일정이 없다. 평소에 우리는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물결치면 물결치는 대로 서두르지 말고 한가하게 매일매일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을 미리 해 둔 상태였다. 이제는 예전같이 않아 순발력도 없고, 기억력도 가물가물할 때가 잦다. 이번에 구입한 유시민 작가가 쓴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한 인간에게는 100조에 가까운 엄청난 숫자의 세포가 있고, 뇌에는 수천억 개의 뇌 신경세포인 뉴런이 있다. 나이가 들면 그 뉴런이 적어지고, 뉴런 사이의 정보전달을 돕는 화학물질의 분비도 원활하지 않아 정보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 여파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둔감해지면서 늙어가게 되고, 고집을 부리거나 화를 잘 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늙어간다. 거기에 맞추어 아주 곱게 늙어가는 연습을 해두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업은 애기 3년 찾는다’는 노쇠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다. 이제 나는 쉬면서 치과에 찾아가 마무리 공사(임플란트)를 하는 일과 힘(기분)이 생기면 인사동, 광화문, 청계천, 명동, 창경궁, 비원, 경복궁, 조계사 등 걷기를 반복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또 남한산성도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생각이다. 잘 찾아보면 서울에서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만한 곳들은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아내는 “여행가방을 자주 쌌다가. 폈다가 하는 것이 너무 귀찮다며 앞으로는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난 할 수없이 조정안을 만들어 아내를 달랬다. ‘만약 한국휴가를 가게 되면, 아예 서울에다가 전 일정의 숙박(호텔)을 정해놓고, 며칠씩 떠나는 여행은 간단한 손가방만 챙겨 떠나자’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이번 4박5일도 이중으로 호텔 비가 지출되었다. 시간이 맞고 기분이 나면 어디든 가볍게 가서 편하게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먹고 놀고 쉬면서 유유자적하자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한국에 휴가 나올 때마다 수없이 보았던 ‘갑 질’ 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전에는 어디를 가나 곱지 않는 눈초리로 위아래로 째려(훑어)보며 도토리 키 재기를 일삼고, 또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는 똠방각하들이 흔했었는데 그런 사람 역시 볼 수가 없다. 혹시 한꺼번에 이민을 떠나간 건 아닌지? 아니면 귀양을 가버렸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너무 안 보이니까 은근히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혹 만나면 오랜만이라며 너무 반가워 맥주라도 한잔 사주고 싶어서다.

다음으로 서울에서 찾기 어려운 것은 ‘맛 없는 식당’이다. 독일촌사람(Frankfurt 거주)이 어쩌다 한 번씩 서울에 와서 먹어본 음식들은 한결같이 맛이 좋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서울에서 만난 택시기사들도 한 결같이 친절한 신사들이었고, 상점주인들도 식당관계자들도 모두가 훌륭한 교양인들이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대한민국은 이제 확실하게 세계최고의 선진국가가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10월3일은 서울에 있는 우리친척들이 우연히 모이는 날이 되었다. 처음발단은 누님의 장남내외가 “꽤 유명한 식당이 있는데, 우리 내외를 초대하고 싶다”는 전화로 시작이 되었다. 대답을 해놓고 내 머리에는 순간적으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서울에 있는 식당을 다녀보니 어느 식당이나 맛이 좋으니, 노력하고 고생해서 특별한 식당을 찾아갈 게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호텔(인사동)로 오면 가까운데 있는 식당으로 결정하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 서로 바쁜 세상에 살면서, 시간 내서 얼굴보고 이야기하고 싶어 찾아오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고급식당을 찾는다고 고생까지는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많은 조카들에게 일일이 “나 휴가 나왔다”고 알리기도 애매하고, 또 누구에게 먼저 누구에겐 나중에 연락을 할까 하는 순서도 고민이었는데, 이런 기회에 모두다 한꺼번에 연락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또 그 연락을 내가 직접 하지 말고, 평소 우리 친척들의 화목을 위해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부지런한 두 사람에게 부탁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전화를 돌렸다. “둘이 의논해서 올만한 사람 모두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누구나 오는 사람은 대환영이고, 바쁘거나 약속이 있어 못 오는 사람도 이해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만남의 범위를 내가 확대했으니, 그날 식사 비는 내가 지불하겠다”고 못박았다.

3일 날, 모인 사람은 35명이 넘었고 우리들은 반갑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대성공이다. 사실 옛날 시골에서 모일 때는 어렵지 않게 오고 가고 했지만, 지금의 현대생활은 개인주의가 급속하게 발달하는 가운데 거개의 사람들이 바쁘게 산다. 바쁜 생활은 자기가 먹을 밥을 찾아먹는 시간도 잊을 때가 있다. 더욱이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서로 만나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평소 내 생각은 옛날 같은 분위기가 나는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한국휴가 때마다 넓고 편한 리조트를 생각하게 되었다. 공간이 넓어 수십 명이 모여도 부담이 없다.

이번 만남 역시 가족사에 기록될만한 멋진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그날 밥값계산서는 나에게까지 전달되지 않고, 중간에서 없어졌다. 다음번부터는 어느 한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회비를 거두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자존 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2020년 8월 7일, 1181호 22면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