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제10회/ 사회적 유대관계가 삶을 바꾼다

겨우 몇 달만인데 시간의 거리는 오래된 듯 했다.

어디선가 굴러온 망측한 바이러스였다. 삶을 잠식해버린 코로나가 화근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 노구로 어려웠던 만남의 행위들이 더 힘들어졌다. 안 본 사이 머리발 속에 백발이 더욱 무성해졌다. 볼펜으로 깊이 그린 듯한 입가 주름도 도드라졌다. 마스크로 감싼 입술이 열리자 세월은 더 드러났다.

백발의 노년에도 서열은 있었다. 팔순의 언니는 일흔의 동생을 낯설지 않게 보듬었다. 독일 삶의 반 백년 동안 해온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들은 세월 속에 풍화되어 하나가 되었다. 이제 황혼의 길을 함께 걷는 동행자였다. 그들의 의식 속에 지난 시간 함께 했던 추억들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만남은 짐작보다 따스했다. 어색한 팔꿈치 인사조차도 정겨운 의례였다. 마스크 틈새로 스멀스멀 행복의 미소가 배어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규칙을 준수했지만 마음은 이미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삶에 있어서 우리는 늘상 누군가의 사이에서 동질성과 공감의 이유를 찾곤 한다. 파독 1세대는 그런 면에서 축복받은 이들이다. 고향을 떠났다는 것, 파독되었다는 것,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공통분모가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고향의 형제자매보다 더 끈끈해지고 뜨거워진다. 오랜 만에 만난 자리는 흥겨웠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고국의 정에 굶주려 있을 터였다.

함께 식탁을 마주하고 그간 나누지 못한 정담을 나눴다. 이날은 재독 한인간호협회(회장 문정균)가 주선해 모인 자리였다. 국제보건의료재단의 건강증진사업의 위탁사업 일환으로 진행되는 도움사업이었다. 숟가락을 들며 따스한 정이 오갔다.

문정균 재독 한인간호협회장은 풋풋하고 정감 넘친 인사말로 시작했다. 그의 겸손한 언어가 마주한 식탁에 흘러넘쳤다. 베를린협의회의 신성식 회장은 베를린의 어려운 한인동포들을 위해 ‘사랑의 선물박스’를 전달하는 봉사를 담당한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인 최근에도 선물박스는 가동되었다. 또한 정명렬 이사는 참석한 이들에게 한민족여성재단이 배부한 마스크를 참석자들에게 전달하며 공동체적 유대감을 강조했다.

이날 사단법인 <해로>는 재독 한인간호협회의 활동과 연대하며 도움 활동하는 단체로 자리를 함께 했다. 봉사활동의 수혜계층은 독일에 사는 파독 1세대이기에 한인사회와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세대가 이미 밭을 일구어놓은 한인사회에 공감의 창을 열어놓으면 된다. 그 창을 통해 <해로>는 그들의 빈틈을 들여다보고 메워주며 협력하는 일을 한다. 그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민자로서 같은 길을 걷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해로>는 코로나 기간에도 다양한 도움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부터 어려운 한인 1세대들을 위한 직접적 도움 서비스를 모색했다. 외출이 힘든 기저질환자를 위해 장보기 서비스를 시행했고, Pflegehilfsmittel 서비스 지원 서류 작성 등을 도왔다. 민주평통 베를린 지부와 연계해 어려운 한인들에게 마스크와 부식품을 전달하는 일을 협력했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가가호호 방문을 하고 그분들의 안녕을 확인했다. 또한 베를린 한인회 사회복지부의 활동을 통해 한인사회 속에서 채워질 수 없는 빈틈을 촘촘히 채워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마음이 있지만 방법을 몰라 돕지 못하는 기업이나 개인을 위해 중간 매개체 역할도 한다.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칠 수 있는 중간자인 셈이다.

삶은 더더욱 각박해지고 있다. 나 돌아보기도 힘든 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 스스로 한 발자국이라도 이웃 곁에 다가간다면 이국 땅에서 더 행복한 이방인의 삶이 될 것이다.

<해로>가 가진 이웃을 품는 연대 철학이 한인사회를 하나의 끈으로 묶어주길 기대해 본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후원문의: 이메일: info@heroberlin.de/ 홈페이지: www.heroberlin.de


2015년에 시작된 HeRo(해로)는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활동의 필요성으로 귀결되었다. <해로>의 입술로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독 동포들의 목소리를 그릇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의 입구가 되길 바란다(필자 주)

1182호 12면, 2020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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