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2020년 재외 동포 문학상 입상 소식

강정희(재독수필가, 소설가, 시조시인)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나날이다. 걷기를 즐기는 난 해가 뜨기 전에 아침 걷기를 한다. 아침 일찍이 자동으로 눈이 떠지고 커피 한 잔에 빵 대신 절기 음식인 옥수수를 하나 먹고 걷기를 시작한다.

마침 우리 동네에 운동장이 있어서 멀리 가지 않아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6시인데도 몇 사람은 이미 건강달리기를 하고 있다. 주로 젊은 사람들인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부지런한 사람이 먼저 이득을 보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처럼 근무를 나가기 전에 뜀질하고 상쾌한 발걸음으로 직장엘 나가는 의지가 강하고 준비된 부지런한 사람들인 것 같다.

운동장을 걷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특수한 보던 이어서 무릎이나 발목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8월10일에도 한결같이 편안한 신발과 옷차림으로 운동장엘 나갔다. 핸드폰에 삼성 Health가 앱으로 깔려 있어 하루의 걸음을 측정한다.

6시가 조금 지나 이메일이 들어오는 신호가 왔다. 그렇지 않아도 설레는 마음으로 숨을 죽여가며 은근히 재외동포재단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잠깐 걷기를 중단하고 이메일을 열었다. 정말로 기다리던 재외동포재단에서 메일이 왔다. 작은 글자가 불편하긴 했지만, 글자를 크게 늘려가며 내용을 확인했다. 2020년 제22회 문학상에 입상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에 축하의 글까지 보내왔다.

우린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걷는 걸음 숫자를 측정하여 하루의 운동량을 알 수 있고 걷기를 하면서도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재외 동포 문학상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750만 성인, 청소년, 입양 동포들을 대상으로 자유로운 주제로 작품을 모집한다. 매년 4월 중순에 시작하여 5월 말에 접수를 마감하고 8월에 수상작을 발표한다. 문학의 장르는 시 수필 소설 수기이다. 각 장르에 여섯 사람을 수상작으로 뽑는다.

난 올 5월 중순에 시 3편을 접수하고 만 3개월을 일말의 희망을 품고 발표를 기다렸다. 우리의 삶은 희망이고 기대라고 하지 않은가? 희망이 있기에 절망하지 않고, 기대가 있기에 실망하지 않고 나무는 물을 먹고 자라고 사람은 꿈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난 2016년에 “구두병원의 네스커피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수필에 수상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시 부문에서 “우리 아버지”라는 시로 입상된 것이다.

날이 갈수록 기쁨도 있지만, 가슴이 시려오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일이 자꾸만 늘어나는 요즘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끈질기고 교활한 암세포가 몸속에 고개를 들고 자리하여 너무나 늦게 병원을 찾아 암 덩어리가 커져서 속수무책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세상과의 이별을 기다리며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장마비, 뇌졸중으로 쓰러져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또한, 팬더믹 코비드 19전쟁 포로 상태에서 바람 따라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며 이웃을 만나도 반갑지 않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두려움과 답답함을 가지고 긴장 상태에 놓여 살아가는 이때, 옛이야기를 굽는 찬란한 여름날에 고국의 긴 장마와 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고 서민들의 밥그릇에 홍수 고심이 깊은 답답하고 참혹한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요즘,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모른다.

돌연한 심장마비로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난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따뜻한 보살핌도 없는 사춘기 시절을 보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인생에 다가온 최초의 불행이었다. 사춘기는 한창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는 인생의 봄이라는데 난 그렇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40년을 교편생활을 하셨다. 강산이 네 번째 바뀔 만한 세월을 공무원으로 봉직해 오신 거다. 혼탁한 시대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공직생활 40년을 마무리 지으신 아버지. 지나칠 정도의 청렴함에 더러는 불편함도 겪고 살았지만 끝내 어떠한 유혹에 굴하지 않고 정도를 지키신 우리 아버지가 정말 존경스럽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곧고 곧은 성품이시다. 가난에서 벗어 나는 길은 오로지 2세 교육밖에 없다고 하셨고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시는 일을 40년을 하셨던 거다.

아버지는 학교 다니는 이유의 하나는 만남이라고 하셨다. 선생님과 만나고 친구들과의 만남이 인간 성장발달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셨다. 오로지 지식만을 배우러 학교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셨다. 아버지는 제자들을 바둑알 두듯 키우셨다. 듣기 좋은 말보다 따끔한 충고가 때로 보약이 되기도 한다고 하셨다.

상한 음식은 아무리 비단 보자기로 덮고 향수를 뿌려도 오래 못 가 상해 버린다며 거짓과 아부는 오래 지탱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셨다. 세상과 어울리기 위해서, 안주하기 위해서 자신의 느낌을 위장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셨다. 어떤 위기에서도 정직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가 단단히 서 있었다.

최근에 우리 부모님의 젊은 날의 사진을 조카에게서 받았다. 어머니가 작은오빠를 안으시고 앉아있고 아버지 곁에 큰오빠가 서 있는 사진인데 우리 큰오빠가 작년에 93세로 세상을 떠나셨으니 약 90년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된다.

내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웅크리고 있던 여릿여릿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면서 추억을 더듬어 쓴 ‘우리 아버지’의 글이 입상된 것이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몹시도 보고 싶다. 더없이 빛바랜 꿈 싸라기가 촘촘하게 빛나고 활짝 핀 마음의 꽃이 기지개를 켜는 한없이 기쁜 날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아!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내가 즐겨 할 수 있는 일, 나아가서는 잘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살아감은 분명 축복이다.

순수함을 간직한 오늘이면 좋겠다.

작은 것에 감사한 하루였음 좋겠다.

촉촉한 사랑스러운 오늘, 선물이라 하겠다.

부족한 작품에 눈길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1183호 14면, 2020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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