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신미 아동을 소개 합니다

1970년 2월 12일, 이화여자대학교 앞이 하얀 배꽃으로 온통 눈 내린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화여대생 모두가 배꽃처럼 하얀 소복을 차려입었기 때문입니다. 이화여대총장을 지냈던 김활란 박사의 관을 들고, 발인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장엄하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옷깃을 여민 채, 기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광경은 김활란 박사의 관을 따라가며,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슬픈 조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를 합창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박사는 평소에 자신의 유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이란 영원불멸하는 것임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대로, 더 좋은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육체와 환경에 얽매인 것을 극복하면서, 승리의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이 심장의 고동이 멈춘다고 죽는 것 아닙니다.

내 육신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고, 나를 죽은 사람 취급하고, 장례식 해주는 것은 정말 싫습니다. 존경하는 친척, 친지, 동지여러분, 정말 여러분이 나의 장례식을 치루어 주기 원한다면, 나를 죽은 사람 취급하지 마시고,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새 출발하는 사람으로 여기시고, 이 세상에서는 체험할 수 없었던 더 풍성한 생명의 길로, 더 화려한 승리의 길로, 나를 보내는 환송예배로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가 같은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말고, 영광과 생명의 노래로 엮은 웅장하고 신나는 음악회처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유언대로 김활란 박사의 장례식은, 향을 피우는 대신, 조문객들이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영전에 바쳤고, 모든 장례절차가 고인의 원했던 대로,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음악회처럼, 음악예배로 진행되었습니다. 슬프고 우울한 종래의 장례식과는 전혀 다른, 기쁘고 힘찬, 생명의 약동이 느껴지는 특별한 장례식 이었습니다.

본래 첩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믿음으로 모든 환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지런히 서양의 문물을 배우고, 익혀서, 한국의 여성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수모를 다른 여성들이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유엔총회에 일곱 번씩이나 한국대표로 참석하였고, 한국동란 중에는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직접방문해서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고, 1966년 유네스코 회의 때는 한국대표로 참석해서 한국을 소개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6.25전쟁 중, 한국에 파송되었던 하지 중장을 만나, 신탁통치에 대한 의견에 반대하면서 하지 중장을 몰아세웠던 일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 1946년, 국제연합총회에 참석해서, <한국인은 절대 다수가 공산주의를 반대한다>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미국 웨슬리안 대학, 보스턴 대학원, 콜롬비아 대학원을 졸업했고, 한국여성으로 최초의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정부 공보처장, 순회대사, 여성교육자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남겼고, 그냥 경력으로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온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대한민국 1등 수교훈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63세에 이화여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후, 신학교에 들어가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웠고,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일에 여생을 바쳤습니다. 그녀의 묘비에는 화려한 경력이나 학력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무덤 앞에 돌로 만든 성경책이 놓여있을 뿐인데, 그곳에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김활란 박사는 그렇게도 많은 공부와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실패한 인생이요, 무의미한 인생임을 깨닫고, 결국,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확실한 사실을 알리려고, 63세가 된 후,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과 나에게 보내 주셨고, 그분은 오늘도 당신을 향하여 어서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 이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에게, 오늘이 최고의 기회임을 깨닫고, 지금, 예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당신의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권신미 아동은 두 언니와 함께 충남 천안에 있는 아동 양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경제력이 전혀 없는 엄마가 두 언니와 함께 세 자매를 키우시다가 신미 아동이 4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3자녀를 시설에 입소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신미 아동은 2020년 현재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시설에서는 언니와 원생 7명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밝고 활동적이며 자존심이 강한 아이입니다. 현재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공부에 관심이 없는 것과 달리, 피아노 학원은 열심히 다니며, 장래 피아니스트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아빠도 엄마도 없이 시설에서 살고 있는 3자매에게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는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14세기 벨기에의 왕인 레이몬드 3세는 오로지 맛있는 음식만 찾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와 사촌이었던 새로운 왕은 차마 레이몬드를 죽일 수 없어,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감옥은 오직, 레이몬드를 위해 새롭게 지어졌는데, 매일 진수성찬이 차려졌습니다. 어느 날 새 왕이 레이몬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백성을 돌보지 않고, 자기 안위에만 집중해서 살아왔다. 만약, 네가 음식에 대한 탐욕을 이겨내고, 너의 몸무게가 줄어, 이문으로 나올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너는 자유다. 허지만 음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면, 평생 밖에 나가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

문은 생각보다 작지 않아, 레이몬드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음식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죽을 때 까지 감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 문으로 통과하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진정으로 회개하십시오! 당신의 영혼은 아름답고 날씬해 저서 쉽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해철 선교사 드림

1183호 34면, 2020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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