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디

류 현옥

병동의 팀은 투루디가 떠난 후에 뒤늦은 관심을 보이고 이구동성으로 유감을 표시 했다. 소문으로 알고 있던 그녀의 미스테리한 결근이 병가로 이어졌다가 결국 사직으로 끝났다. 일 많은 내과병동의 일정에 그녀의 몫이었던 부엌일이 첨부되었다. 그녀의 부재는 병동의 중요한 부엌일이 정지되었기에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문제였고 등한시했던 인간 투루디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병원 관리 당국은 투루디에 대한 인간적인 책임과 팀 전체에 가져온 타격을 줄이기 위해 대치할 사람을 찾기에 서둘렀다.

40 년 동안 “부엌 여자” 라는 직명아래 병동의 어머니 역할을 한 크리스텔이 정년퇴직한 후 비운 자리에 후임으로 투루디가 왔을 때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간호사들은 그녀에게 적응을 해야 했다. 투루디는 첫 직장으로 우리에게 왔기에 더 어렵게 시작했을 것을 알지만 모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일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여러 유형의 사람들 속에서 행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직업학교 수련이 없는 아직 사춘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이다. 체구마저 보기 흉하게 뚱뚱하여 뛰둥거리는 세련되지 않은 걸음걸이가 그랬다. 긴 머리를 느려뜨린 모습이 정신없이 보이고 어수선했다. 병동의 부엌일을 해낼 것 같지 않아 한눈에 어려운 시작 이라는 것을 감안한 동료들은 파국적이라고까지 말했다. 예측대로 쉽게 적응을 못했지만 꾸역꾸역 자리를 지켰는데 간호사들이 크리스텔을 잊기도 전에 그녀가 떠난 것이다. 그래서 아쉽기까지 한 것인지 모른다.

병동의 어머니 역할을 한 크리스텔은 젊은 새 의사가 병동에오면 커피잔을 건네주며 팀내의 속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금 정을 붙인 젊은 의사가 늦게 도착하여 인사도 않고 급하게 부엌 앞을 지나가면 얼른 커피 잔을 들고 젊은 의사 뒤를 따라갔다. 젊은 동요들은 크리스텔이 의사들에게만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간호사들에게도 해야 한다고 삐쭉거렸는데 투루디가 온 후 이 풍습이 사라졌다.

의사가 간호사실로 들어서며 아침인사를 한 후 커피를 한 잔 마셔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커피포트가 비어있어면 커피를 끓어야하는 풍습이 생겼다. “부엌일은 중년의 경험있는 부인이 와서 사리분별 있게 환자 음식을 챙겨야 하지만 혼자 사는 의사에게 모닝커피를 건네는 것도 중요한데…” 농담 삼아 투덜거렸다.

투루디가 나치를 탈출 하여 독일을 떠났던 부모를 잃고 완전 고아로 전후독일로 돌아온 유대인 이세라는 것이 알려지자 모두 숙연해졌다

부모세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작용을 하는 듯 했다. 그녀의 얼굴 전체에 새겨진 생의 어려움과 슬픔의 흔적이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갖게 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병동의 부엌 구석구석을 채웠다. 그녀는 말없이 부엌일만 했고 누구에게도 접근 하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크리스텔 때와 달리 병동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는 일체 관심이 없는 투루디의 부엌에서 서성거릴 일이 없었다. 수다쟁이 크리스텔이 주워들어 살을 붙인 잡답을 듣기위해 부엌에 머물었던 좋은 시절은 크리스텔과 함께 사라졌다.

한 달 정도의 휴가에서 돌아오면 크리스텔에게 신고를 했고 그동안에 있었던 비공식적인 정보를 얻어 들을 수 있었다. 병동의 부엌 아주머니의 위치는 무시할 수 없는 회색의 저명인사로 군림한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투루디와 이런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세월이 흘려야할 것이다.

다만 그녀의 역할인 부엌일은 병동일과에서 무시할 수 없이 비중을 주는 일인 만큼 그녀의 존재가 최소한 그 일만큼의 무게가 있었다. 투루디의 아침상이 노년기의 내과 환자들에게 의외로 환영이었다.

두껍게 썰어 만든 빵에 두껍게 바른 버터와 쨈에 습관이 되었고 시작되는 병실생활의 하루 에 영향을 주었다. 간호사가 아침상을 들고 들어가면 한결같이 “투티는 어디갔나요?” 하며 물었다. 투티는 환자들 사이에 통하는 투루디의 애칭이었다. 투루디 역시 새 환자가 들어오면 자신을 투티라고 소개했다. 본명 게아트루터는 오히려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간호사들이 붙여준 애칭 게티를 투루디가 거절하여 투루디로 바꾸었다. 그녀가 놀랍게도 테오도 스토름의 전래동화 (Theodor Strom: Die Regentrude) 나오는 투루디로 불러 달라고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투루디로 바꿨다가 투티로 되었다.

직업학교도 포기하고 돈을 벌기위해 자격증이 필요 없는 병동의 부엌일을 하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재미를 붙였다. 그녀는 부엌문 앞에 나와 서서 영어 악센트가 섞인 큰소리로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고 알렸다. 두 귀가 다 어두운 그녀는 쉴 새 없이 부엌으로 드나드는 동료들과의 대화를 피했다. 40명 환자의 아침밥을 준비할 때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봐야 대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언제부턴가 쪽지에 써서 그녀가 읽을 수 있게 준비된 핀 벽에 꽂았다. 매일 같은 일이 번복되는 부엌일에는 특별한 대화가 필요 없었지만 마찰을 피하며 일과를 보낼 수 있는 그녀의 일터였다

투루디가 사라진 부엌에서 커피잔을 들고 서서 투루디 이야기를 듣던 젊은 병동 의사가 연민의 뜻을 표현하는 말로 투루디야말로 어두운 독일역사의 산물이라고 했다.

2차 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유대인 학대의 잔인성이 강도를 더해갔기에 이를 피해 캐나다로 망명간 그녀의 부모는 어린 투루디를 혼자 두고 세상을 떠났다. 고아원으로 가서 유년기의 몇 년을 보내는 동안 독일이 패전하고 전쟁을 지휘했던 독재자가 베를린의 지하 대피소에서 자살을 했다. 투루디의 인생길이 바꿔지는 계기였다.

새 정부 독일은 국제 적십자사의 도움으로 망명간 독일 시민 들을 찾았고 원하는 사람들의 귀환을 도모했다. 투루디 역시 천하의 고아로 독일로 오게 되었다. 부모의 무덤이 있고 그녀가 태어난 곳을 떠났다. 도착한 곳 역시 투루디 에게는 낯선 이국 땅이었다. 귀환한 독일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떠난 부모의 고향이었지만 그를 반겨줄 지인이 없었다. 대부분의 친척은 학살당했고 세계의 곳곳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은 투루디의 탄생을 알리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분간 청소년 보호소 에 수용되었다.

어느날 투루디 아버지의 옛 친구라는 남자가 청소년 보호관리소에 나타남으로서 투루디의 운명이 바뀌었다. 캐나다로 망명을 떠난 친구의 소식을 들을 수 없어 궁금하던 중에 투루디 의 소식을 들었다는 남자에 대해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친구가 떠난 후에 소식이 끊어졌지만 직업학교를 같이 나온 죽마고우였다고 주장하는 그는 유대인으로 망명을 떠나는 친구를 도울 수가 없었지만, 그 딸인 투루디를 책임지겠다고한 것이다. 투루디는 남자가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것과 고아원에서 가정집으로 가게 된 행운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 남자의 손에 잡혀 청소년 보호소를 떠났다.

그 남자는 전쟁 상의용사로 혼자 살고 있었다. 법적으로 입양을 할 조건이 되지 않았지만 투루디에게 가족을 대치하고 그녀가 자립할 때 까지 한집에 살며 사회적인 기반을 잡게 해주겠다는 서명을 청소년 보호당국에 남겼다.

한집에 산지 얼마 안 되어 투루디의 남자는 청소부를 해고하였고 그 일은 투루디에게 맡겨졌다. 요리는 책임지고 하겠다던 남자는 어느 날부터 투루디에게 요리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명목으로 부엌으로 불러 들였다.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정규적으로 현지상황을 검사나간 여사사회사업가는 투루디의 장래를 위해서 최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관청에 올렸다. 그녀가 직업학교를 거절하고 병원의 부엌일을 하겠다고 했다지만 그 남자의 종용에 이루어진 것이 뒤에 알려졌다. 상부로부터 특별한지시를 받은 간호부장은 병동에 올 때마다 부엌에서 나오지 않는 투루디를 찾았다.

간호사들은 간호부장과 투루디의 대화내용을 들을 수 없었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사생활 문제기에 본인의 허락 없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훗날 투루디의 사직으로 조금씩 알려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호사들은 오히려 당시에 그런 일들이 알려졌더라면 도와 줄 수 있었을 것이며 그녀에게 조금쯤은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라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투루디는 사춘기 의 소녀들이 고민하는 몸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매일 큰 병의 코카 콜라 한 병을 근무 중에 마셨고 기름진 소시지를 먹었다. 어느 날 실습온 간호학교학생이 “한 여자의운명은 몸매에 달려있는 데 투루디는 우선 체중을 줄여야하고 콜라는 금물이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투루디는 울면서 자기의운명은 이미 정해졌고 더 나빠질게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 후에 전해졌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결근을 할 때면 간호사들이 각기 자기가 맡은 환자의 식사준비로 투루디를 대치해야 해야 하기에 며칠간 투루디의 몫을 함께한 근무가 계속되면 동료들의 불평의 목소리가 높았다. 뒤이어 환자들의 불만으로 보호자들 이 병원당국에 전화로 호소했다.

“갑자기 어디 가서 투루디를 대치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 변명 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간호사들은 투루디를 잘못 건드려 병가를 내면 결국 손해를 보니까 조심조심 하는 것으로 유지 되었다. 그녀의 휴가가 시작되고 그녀를 대치할 사람이 하루 전에 와서 투루디가 실습을 시켜야 하는 날이면 갑자기 휴가를 가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며칠간을 병동으로 와서 어물거렸다. 대리로 와서 일하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핑계로 제 시간에 일터에 나타났다. 그녀가 주인인 부엌에 다른 사람이 와서 주인행세 하는 것을 혀용 할수 없다는 태도로 간섭을 했다.

“어이 투티 ! 휴가 중에 너 또 왔어? 햇볕 좋은 지중해의 섬에 가서 좀 쉬고 오지 그래?”

하면 자신은 그런 휴가가 필요 없다고 했다. 이런 날이 며칠 지나고 그녀가나타나지 않으면 동료들은 “투티가 드디어 진짜 휴가를 갔구먼! 모든 일에 뜸을 들여 야하기에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알아듣기는 하지!”

이렇게 어렵게 휴가로 병동 부엌을 떠난 그녀가 휴가가 끝나 일터로 돌아올 때도 뜸을 들였다. 진짜 휴가를 일주일 정도 늦게 시작해서니 일주일 늦게 병동에 나타나는 그녀대로의 계산 생활방식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언제 근무처에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예측불능이었다. 그녀는 휴가의 상태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는 접점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는 듯했다. 여러 번의 연락으로 다시 근무를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에 적응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무도 그녀에게 휴가를 어디서지내다 왔는지 묻지 않았고 다시 근무를 시작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었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 집에 사는 남자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없었다. 부모형제가 없으니 어디갈수도 없었고 여행도 떠나지 않으니 습관적으로 근무처에 올 것이라는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드디어 투루디가 휴가를 갔다고 생각했고, 잠시 그녀를 잊었다. 그녀의 대리인이 계약을 끝내고 부엌을 떠나면 뜸을 들인 투티가 오기를 기다렸다. 해마다 투루디의 뜸 드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녀의 결근은 병원의 아래층에서 개인병원을 하고 있는 병원부원장으로부터 병가증명서를 받아서 의료 보험기관으로 보내는 것으로 사유 없이 결근한 것을 무마시켰다. 이런 해결은 투루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투루디를 등한시하고 심지어 무시하는 처사였는지도 모른다. 오직 병동유지를 위한 잘못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투루디의 나이 19살이 되면서 그녀에게 결정적인 불행이 시작되었다

19살 생일을 앞두고 남자는 지팡이를 짚고 투루디를 동행하여 시내의 고급 여자 옷집으로 갔다. 남자의 임의로 결정한 생일 선물로 꽃무늬의 원피스로 결정되었다.

생전 입어보지 못한 화려한 원피스는 그녀에게는 불편한 옷이었다. 그녀 몸에 는 맞지 않는 생소한 옷은 그녀의 체구에 맞는 중년 여성의 옷이었다. 그녀의 기억에는 원피스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자연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큰 꽃의 무늬가 생소했고 분홍색 무늬가 찍힌 천이 그녀의 피부에 와 닿는 것도 싫었다. 알 수 없는 공포심이 마음속 한곳에서 일어났다.

모든 새로운 일들 극히 작은 변화도 적응기가 필요한 그녀에게는 옷을 입고 거울에 비췬 자신을 보기가 두려웠다. 옷을 입어보지 않겠다고는 그녀를 점원이 작은 탈실로 데리고 들어가 겁내지 말고 천천히 입어보라며 위로한 후, 혼자 두고나갔다. 그녀를 하녀로 하락시킨 남자는 점원이 건네주는 커피를 마시며 투루디와 그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쟁 상의용사로 피난길에 부모를 잃게 된 친구의 딸을 키워 주고 있다고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한 적이 없었다. 투루디 역시 간호부장이 작은 꽃다발을 들고 와 축하를 하면 잠시 생각했을 뿐이다. 세 살 된 그녀를 두고 그녀의 부모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나갔으므로 그녀의 탄생을 기뻐할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부모의 죽음에 대한 과정을 이야기 해주지 않았고 그이후의 일들 역시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를 따라다닌 출생신고에 기록된 날짜가 그녀를 동반하였지만 생일날 축하의 노래를 불러준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모든 생활비는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투루디가 받는 월급은 얼마의 용돈과 교통비를 제외한 돈은 적금을 하여 언젠가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것 역시 그녀를 슬프게 했다. 남자의 걸맞지 않는 비싼 생일선물이 생소했고 그녀의 슬픔을 보상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온몸을 싸늘하게 했다. 저항 없이 끌려간 구두 집에서는 투루디가 들고 들어간 원피스를 점원에게 펴 보임으로 그것에 맞는 신발이 선택되었다.

윈도우를 장식하고 있던 비싼 핸드백 은 중년 여자용이라는 점원의 충고에도 같이 포장하라고 했다. 남자는 투루디가 이제 성인이 되었기에 어울린다고 고집했다.

생일 준비를 한다지만 그녀에게는 초대할 친구도 없었다.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없는 터였고 남자쪽으로도 한자리에 앉아 생일 케이크를 먹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것을 아는 남자는 5일간의 짧은 여행으로 북해의 섬으로 가서 생일 파티를 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오자고 했다. 투루디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자”는 말이 생소 했고 알 수 없는 예감으로 다시 공포심을 더해 왔다.

나무로 지어진 붕갈로 모텔은 큰 호텔건물에서 따로 떨어져 있었고 식사를 위해서는 호텔에 속한 레스토랑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투티는 생일 선물로 정장을 하고 남자 역시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레스토랑으로 드나들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투루디가 강제로 남자의 여자로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그녀의 불행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다. 레스토랑에 앉은 인생경험이 있는 중년의 여자들은 아버지와 딸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고 의미심장한 눈길로 둘을 지켜보았다.

베를린으로 돌아온 투루디는 병가를 내었고 병가 연장 소식도 없이 결근이 시작되었다.

두 달 후에 다시 나타난 그녀는 첫눈에 다른 모습이었다. 체중이 줄었고 건강한 얼굴색이 아니었다. 자주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투루디가 싱크대를 붙들고 토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동료의 신고로 간호부장이 불려왔다.

투루디의 임신이 확진되었다. 밤낮으로 남자와 함께 있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근무를 계속 나왔다. 투루디는 이미 청소년 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나이에 들었고 남자역시 계속 법적 보호자로 인정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태어나는 새 생명의 부모로 가족을 이룰 수가 없었다.

투루디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임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남자는 투루디의 보호자로 피보호자를 임신시켰다. 남자는 양부 역할을 했지만 근친상간으로 취급할 수도 없었다. 임신부의 생명에 위협을 준다는 의사의 진단으로 임신중절을 시킬 수가 있다는 것이 언급되었지만 독일은 나치역사를 제조정하는 과정에서 의사의 진단결정으로 새 생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중년의 부엌여자가 투루디의 후임으로 오는 날 간호부장이 인계시간에 참석했다.

투루디 이야기를 하기 위해오겠다고 했었지만 말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만 전쟁고아로 보호를 받았어야할 투루디였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그 남자와는 같이 살지 않겠다는 투루디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는데 거주지가 알려지지 않다고 했다. 행방이 불명하다고 덧붙였다. 투루디는 다시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으로 갔다. 새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말없이 적응하며 어머니가 되어 갈 것이다.

2020년 9월 25일, 1188호 14-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