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furt에 살면서 (4)

황만섭

다시 시작하는 Frankfurt에 살면서(4)는 이미 상, 중, 하로 얼마 전에 마침표를 찍었던 글이다. 그러나 살면서 새로 생겨난 이야기들을 Frankfurt에 살면서라는 이전의 글에다가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록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혹시 누군가에게 이야기 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외국의 한 도시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일상이 누군가에게 “아! 그때 그 시절에 그렇게 살았던 사람도 있었구나” 하는 이야기로 한 몫 할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한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주변의 이야기들 생활에서 얻어지는 이야기들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산책

걸어 다닐 만큼 건강하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더 늙어지면 어떤 일들이 찾아와 산책을 방해할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2020년 6월 6일)의 산책코스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마인 강까지 갔다가, 올 때에는 전차와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집을 나서, 헤센 방송국과 프랑크푸르트 한인천주교회 사이의 넓은 길을 지나면 바로 경찰청이 나온다. 다시 큰 길을 건너 넓은 도로를 끼고 있는 주택가를 지나면 꽤나 긴 Oeder Weg이 나온다. 그 길은 끝날 때까지 주택가와 상가들이 반복된다.

상가들은 때론 밀집해 있기도 하고 때론 주택들 사이에 드문드문 끼어 있기도 하면서 에쎈하임머 토아(성문)까지 이어진다. 가만히 살펴보면 Oeder Weg은 간혹 넓은 곳들이 많아 쉽게 사람들이 모여들기가 편리한 곳들이 많다. 그런 곳에는 틀림없이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고 틀림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생동감이 넘치는 활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때론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워 머리가 아플 때도 있지만, 대개는 즐겁고 유쾌할 때가 더 많다.

어제까지 비가 내린 날씨가 오늘은 거짓말같이 맑고 파랗다. 비가 온 후의 각 가정들의 정원에 있는 온갖 꽃들과 공원의 크고 작은 나무들, 작은 숲들은 지난번 산책 때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싱그럽고. 아름답다.

우리가 사는 돈부쉬에서 마인 강까지는 4km 정도가 되지만, 다시 옛 성벽 터를 따라 만든 공원길을 따라 마인 강까지 가면 도합 5km정도는 거뜬히 될 것 같다. 옛날에 있었던 프랑크푸르트 성벽은 나폴레옹의 공격으로 부서져 속절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그 자리에 나무와 꽃들을 심고 호수를 만들어 공원으로 꾸며 걷기가 좋다.

우리 부부는 걷기에 불편이 없을 때 작은 추억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 늙어지고 병이 생기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역병으로 인한 행동의 제약으로 고통을 받았던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공원과 시내 곳곳에 인파가 넘쳤다. 우린 마인 강에서 준비해온 빵 조각을 오리들에게 던져주며 여가를 즐겼다. 오리들의 세계에도 깡패(강자)가 있었다. 힘이 센 그 악질(오리)은 약한 오리들을 쫓고 있었고, 강자들의 공격에 쫒기는 오리들은 두려움에 떨며 혼비백산이다. 강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빵 한 조각 얻어먹고 사는 것도 힘들다. 새들의 세계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앞집으로 이사 온 일본사람

우리 앞집에 일본인이 이사 왔다. 네덜란드에 회사가 있고, 회사근무 때문에 주로 네덜란드에서 살지만, 독일에도 가끔씩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 두 집 살림을 한다고 했다. 회사의 임원처럼 보였다. 원래 살았던 독일여자는 세를 내주고 자기는 시내에 있는 고급아파트로 이사를 나갔다.

미혼인 그녀는 사고나 실수에 대비해 집 열쇠 하나를 안전하게 우리 집사람에게 맡기고 싶다며 한사코 떠넘겨 여러 해를 우리가 보관해 주었다. 은행에 근무한다는 그녀는 집을 비어두고 근무 때문에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여러 해를 살기도 했다.

새로 이사 온 일본인 가족들은 어딘지 행동이 활발하지 않았고 의기소침해 보였다. 항상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회사 일로 쫓기는지?”, “생활에 쫓기는지?”, “정치적으로 쫓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소 그들의 생활이 대단히 어둡고 두려움 속에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인사도 없었고 가능한 한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나는 반가워서 그들을 쫓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친절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나는 일제가 저질렀던 과거를 증오하지 지금 살아 움직이는 일본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미워하는 일본인들은 아베와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전부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오리발을 내미는 그들의 심사가 참 치사하고 유치해서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까지 들 정도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우린 그걸 용서하고 다 같이 미래의 인류공동의 번영과 화목을 도모하며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침략과 전쟁이 있을 수도 있고, 당연히 정복과 피정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젠 그런 잘잘못을 털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과거에 악랄한 죄악은 그들의 진심 어린 사과가 우선되어야 선린우호가 시작 된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쥐새끼 같은 행동들만 반복하는 치사한 무리들이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인간이 어디까지 뻔뻔해질 수 있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당하는 우리 쪽에서 오히려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 부끄러울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이 어떻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나는 여행사를 할 때에도 여행 중에 동양인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친절한 인사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내가 하는 그런 행동이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해주는 민간외교라 믿고 살았기 때문이다. 지구의 반대편 유럽에서 동양인이 동양인들을 만났다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무섭고 굳은 표정으로 나를 피했다. 알지도 못한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것 보면서, “저 사람은 혹시 정신 나간 사람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새로 이사 온 일본 사람도 그랬다. 볼 때마다 기분이 찝찝했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고 그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이 담긴 인사를 끊임없이 보냈다. 언제부턴가 그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도 원래는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극성을 부리는 극우성향의 사람들로부터 귀가 아플 정도로 듣고 살아왔고 교육을 그렇게 받고 살다 보니, 어느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인성이 망가졌는지도 모른다.

평소 그들은 ‘자기들은 선진국 사람들이고, 한국인들은 엽전으로 더럽고 냄새 나는 후진국 사람들로 ‘어글리 코레아’라고 믿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만나고 있는 한국 사람은 자기 생각과 전혀 달라서 혼란에 빠진지도 모른다. 일본서점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혐한 서적을 읽으며, 자기가 알고 배웠던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머리가 어지럽더라도 목욕탕에서 넘어지면 안 된다. 잘못하면 두개골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0년 9월 25일, 118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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