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제 15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

이국 땅에서 홀로 나이 들어가는 것은 고독의 범주를 넘어선 생활의 문제다.

젊었을 때는 노년의 삶을 예측하지 못했다. 휴가 때면 여행을 다니고 주변에 한인과 독일인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서 주변의 친구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특히 홀로 된 어르신들이 중병에 걸렸을 경우 난감해진다. 만성적 질병으로 점점 생활능력이 떨어졌을 경우 손 내밀 곳 없다면 더 치명적이다.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기 힘든 상황이 올 때 무엇보다 동행자가 절실하다.

그간 재독 한인사회는 종교단체와 한인단체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이러한 협력적 활동에 제약이 따르고 있다. 바이러스 장벽으로 소통의 부재도 가져왔다. 자녀들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타국에 살거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경우는 더 큰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도저히 홀로 생활을 못할 경우, 양로원 등으로 입주하게 되지만 대부분 한인들은 폐쇄된 공간 안으로 들어가길 꺼려한다. 게다가 자신의 개인적인 모든 영역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해진 양로원 생활은 더 침체된 늪으로 빠지기 쉽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길 희망하고 그건 비단 한인 뿐만이 아니다. 그렇기에 집에 거주하는, 나이든 환우들을 위한 도움활동이 절실한 이유다. 의식이 살아있는 한, 집에 머물고 싶지만 누군가가 돕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사단법인 <해로>에서 방문하는 환우가 있다. 환우 M은 초기 치매를 앓고 있다. 처음으로 방문한M 환우에 대한 인상은, 희미한 미소 속에 가득한 외로움이었다. 부엌과 거실은 어수선했다.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수북히 먼지가 쌓여 있었다. 부엌은 오랜 기간 음식을 하지 않았는지 삭막하고 쾌쾌한 냄새가 가득했다. 널브러진 그릇들 사이에 죽은 벌레들만이 자신의 영역 속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다. 묵혀 있던 음식 속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냉장고 안은 정도가 심했다. 유통기한을 훨씬 넘은 음식이 냉장고 속에 가득했다. 치우고 치워도 표시가 나지 않았고 쓰레기는 눈두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날 3명이 함께 했지만, 베란다와 거실, 부엌, 화장실을 치우는 데만 해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환우 M은 ‘손님들이 무슨 청소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기본적인 청소는 절실했다. 어느 정도 일이 끝나자 집안이 환해졌다. 그러자 M 어르신의 표정도 밝아졌다. 팔십의 노구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설 힘도 없어보였다. 간간히 거동을 하며 마트에서 단 것을 사 드시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 같았다.

평생 홀로 살았던 그에게는 독일 땅에 친척이 없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스스로의 삶을 잘 영위하고 살았을 것이다. 똑똑하고 당찼으며, 온화한 성격으로 주변의 사랑도 받았다. 자신의 욕망과 의지대로 삶을 조율할 수도 있었다. 손님이 오면 차를 내오고 식사를 대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치매를 겪게 되면서 식사와 모든 활동의 통제 기능을 상실했다. 그분에게는 식사문제가 가장 급선무였다. 게다가 누군가 갖다준 음식 조차 들여다볼 의지를 잃었다.

잠시 그는 벽에 붙은 친지의 사진을 지그시 바라봤다. 친지에 대한 기억은 또렸했다. 때마침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한국에서 온 전화였다. 통화 속에서 그의 친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자 물었다.

“누구랑 통화하셨어요?”

“누가 전화했어요? 언제? 누구지?”

M어르신은 방금 온 수화기 속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했다. 전화가 왔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분명 친지와 아는 체를 하며 대화를 나눴지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기억은 이미 생각의 저편으로 떠났다.

그는 혼자였다. 가끔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음식을 놔두고 갔지만 그것마저 손을 대지 않고 방치된 채로 남겨져 있었다. M에게는 함께 눈을 맞추고 잠깐이라도 음식을 나눌 동행자가 필요했다. 사단법인 <해로>에서는 여러 번의 팀 회의를 통해 가장 적절한 자원봉사자를 배치하기로 했다. 그에게는 누군가 지속적으로 곁에 있어줄 이웃이 필요했다. M의 증상이 더디 가도록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챙겨주는 누군가였다.

나이 들어서는 가장 본능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 봉착한다. 살아가려면 음식 섭취가 이루어져야 하고, 냄새가 나지 않은 의복을 세탁해줄 수 있는 기본적이고 섬세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환우의 집을 나서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1.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2.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3.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보살핌과 배려.

한인 1세대를 돕는 단체인 사단법인 <해로>가 이 질문에 순응하며 걸어가야 할 숙제로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 하며 체감적인 보살핌과 배려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후원문의/ 이메일: info@heroberlin.de, 홈페이지: www.heroberlin.de

1190호 16면, 2020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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