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여행 2019년 9월19일 ~ 24일 한국에서여행 9월 24일 ~ 10월20일 (7 마지막 회)

황만섭

나주목사가 살았던 내아는 2009년부터 숙박체험 공간으로 문을 열었고, 특별히 존경 받았던 나주목사 유석중과 김성일의 이름을 딴 방에서 자게 되면 평생 복을 받는다는 덕담이 생겨나 이 두 방을 예약하기가 쉽지가 않다고 한다.

나주시내투어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서 언제 간다고 해도 여행하기가 편할 것이다. 나주에서 며칠을 머문다면 반남 고분군, 국립나주박물관, 한국천연색 박물관, 나주 복암리 고분전시관, 나주영상 테마파크, 황포돛배 뱃놀이 등 여러 가지를 즐길 수가 있다. ‘나주목사 문화관’은 천년 동안(983~1895) 호남의 행정, 군사,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역대 나주목사들의 업적을 복제 해놓은 미니어처가 좋고, 매직비전, 그래픽 고지도, 패널과 대형 나주시 모형은 여행객들을 편하게 해줄 것이다.

나주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의 목적지는 광주 양림동에 있는 펭귄마을이었다. 공터와 골목길, 폐가 등을 연결시켜 만들어진 복합전시장으로 다양한 작품들과 옛 선조들의 유물, 농기구, 생활소품 모든 것들을 다 모아놓은 지구상에서 보기 드문 명소다. 누가 어떻게 저런 발상을 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구석구석까지 정돈된 작품들을 보면 담당자들의 빈틈없이 가꾸어 보존해가는 정성이 보인다.

대문도 없는 골목길과 공터의 열린 공간에 진열되어 있어도, 도난사고가 없다. 오랫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세계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유럽의 여러 곳을 직접 가이드를 한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기상천외한 박물관, 전시관은 본적이 없다. 여러 개의 골목길과 2개의 폐가, 공터, 쓰레기장 등을 활용해 세계에서 제일가는 명소로 만든 사람은 김동균씨다. 골목길과 공터에 쌓여가는 쓰레기들과 폐가들, 몇몇 노인들이 펭귄처럼 불편한 걸음걸이로 어렵게 살아가는 쓸쓸한 정경을 보면서, 그는 이 폐허를 어떻게 되살릴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마침내 김동균씨는 쉼터, 작품 공간, 편의공간, 복합문화공간과 담벽에 펼쳐지는 여러 편의 시, 빈 캔, 병뚜껑, 도마, 플라스틱 등 쓰레기를 이용해 만든 정크아트로 가득 채웠다.

다음은 무등산이다. 무등산에는 광석대, 입석대, 서석대를 자랑한다. 또한 무등산수박으로도 명성이 높다. 버스는 무등산공원을 지나 원효사에서 2시간가량 자유시간을 주었다. 거기엔 수많은 등산객들이 무등산을 사랑하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연대를 태어난 순서대로 모아보았다. 서로 대조하면서 읽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면앙 송순(1493-1583 담양), 석천 임억령(1496-1568 해남), 사촌 김윤제(1501-1572 담양), 퇴계 이황(1502-1571 풍기), 소쇄옹 양산보(1503-1557 담양), 하서 김인후(1510-1560 장성), 고봉 기대승 (1527-1572 광산), 송강 정철(1536-1594 한양), 재봉 고경명(1533-1592 광주), 서하당 김성원(1525-1597 담양), 정암 조광조 (1482-1520 용인) ]]

광주호와 생태계공원, 한국가사문학관, 식영정(그림자가 쉬는 정자), 소쇄원, 환벽당은 서로 가깝게 이웃하고 있다. 소쇄원은 조선중기 양산보가 조성한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으로 개혁을 꿈꾸었던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화순 능주로 유배되고, 얼마 뒤 사약을 받고 죽자, 양산보는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담양 창암촌에 내려와 소쇄원을 지었다. 소쇄원을 통해 양산보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빛나고 있고, 제자 양산보를 통해 조광조의 이름이 다시 거론된다. 소쇄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양산보는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을 지어 학문에 몰두했고,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광풍각을 지어 손님들을 위한 사랑방으로 사용했다. 매대(梅臺)에는 매화를 심었으며, ‘소쇄처사공지려’라는 문패를 달았고, 정철, 송순, 김윤제, 임억령, 김인후, 고경명 등이 정치, 학문, 사상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한곳이기도 하다.

김인후가 소쇄원사십팔영’ 지어 애양단의 담장에 걸었으며, 고경명이 ‘유서석록’에서 소쇄원을 설명했고, 임억령의 시가 벽에 걸려있다. 제월당 현판은 송시열이 썼고, 소쇄원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은 김성원(임억령의 사위)이 지었고, 식영정이라는 정자 이름은 임억령(김성원의 장인)이 지었다. 정철은 식영정에서 성산별곡을 썼고, 사람들은 식영정과 환벽당을 송강 정철의 유적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김성원은 11살이나 어린 정철과 임억령에게서 공부했으며, 정철은 계속 기대승과 김인후으로부터 배운다.

사람들은 서하당의 사선(四仙)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이라고 불렀으며, 정철은 한양에서 태어나 강화도에서 죽었고, 송순은 담양군 봉산면에서 태어나 고관대작을 두루 거친 후, 김인후, 임형수, 오진, 박순, 기대승, 고경명, 정철, 임제 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송순은 면앙정과 석림정사를 지었으며, 담양군에서는 송순 문학상을 제정해 금년(2019)이 8회째가 된다.

이퇴계와 기대승은 12년 동안이나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학문논쟁을 벌였으나, 기대승 보다 25세가 더 많은 이퇴계는 나이 어린 기대승에게 항상 깍듯한 예의를 다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억령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문인이자 시인이었으며, 그가 담양부사로 있을 때 식영정에 모인 四仙은 각각 20수의 시를 지어 이곳의 경관을 자랑했다.

인근에는 한국가사문학관이 있다. 무등산 자락 계곡으로 광주호 앞, 식영정 옆이다. , 국문시가의 가사문학(歌辭文學)은 조선중기 이서의 낙지가(樂志歌)를 비롯하여 영남의 규방가사, 기행가사, 유배가사 20세기 정해정의 민농가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헌종이 내린 시호장과 교지가 있으며, 선조가 하사한 옥배, 정철의 유묵집, 백세보증, 백세진보 등 13세 권이나 이곳에 있다.

규방가사는 친정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들려준 노래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시집살이 요령 등을 교시하는 훈계사를 담고 있는 노래도 규방가사에 속한다. 허난설헌의 규원가는 사대부가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삶의 고독을 체념미학과 꿈의 시학으로 표현한 총100구의 규방문학의 대표작이다. 이외에 상명가사, 사향곡, 화전가, 도산별곡, 우미인가, 도덕가 등이 이곳에 있으며, 송순의 면앙집과 분재기, 정철의 송강집도 여기에 있다.

정철은 을축사화로 귀양을 다니던 아버지 따라 16세부터 27세에 등과 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담양 지실 마을에서 살았다. 가까운 충효마을에 살았던 김윤제는 광주호 상류 청계천가 언덕에 환벽당(푸르름)을 지었고, 가까운 창암촌에 살았던 양산보는 소쇄원을 지었다.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이 서로 가깝게 자리잡아 어우러지면서 우리문화유산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같은 시대에 교류하며 살았던 이들이 남긴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양산보가 54세로 사망할 때, 송순은 64세, 임억령은 61세, 김윤제는 56세, 김인후는 47세, 김성원은 32세, 기대승은 30세, 고경명은26세, 정철은 21세였다. 당시 이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서로를 알아보았고 서로 존중했으며 담소를 나누었던 당대의 선비들이다. 한민족이 잘 되려면 국민이 깨쳐야 되고, 그러려면 학문이 발달해야 한다. 국민이 무식하면 국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것은 배운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1190호 22면, 2020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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