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furt에 살면서 (5)

황만섭

미나리와 깻잎

시험 삼아서 금년에 처음으로 발코니에 미나리와 깻잎을 심었다. 발코니에 꽃을 열심히 가꾸던 집사람은 오래 전부터 미나리와 깻잎도 한번 심어보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그때마다 나는 건성으로 흘러 듣고 마이동풍처럼 지나쳤다. 여러 해를 그렇게 보내다가 금년에는(2020년)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어 이번만큼은 관심을 가지고 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찾던 중, “두드려라 열릴 것이요, 구하라 얻을 것이니”라는 성경구절처럼, 고맙게도 한 친구로부터 “미나리뿌리가 자기집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곧 이어 또 다른 친구로부터 “깻잎모종과 고추모종을 자기가 구해주겠다”고 알려왔다. 이렇게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먼저 미나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너 참 예쁘다. 싱싱하게 쑥쑥 잘 자라거라!”라는 말과 함께 비오 퇴비를 깔고 조심스럽게 심었고, 물을 시간에 맞추어 정성으로 주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미나리는 내가 한 말들을 다 알아 듣기나 한 것처럼 파랗고 싱싱하게 쑥쑥 잘 자라주었다.

“아니 미나리가 어떻게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지?” 나는 고맙고 궁금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 미나리뿌리를 우리에게 주기 전에 한국말을 가르쳐서 보냈느냐?”고, 친구는 “내가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느냐?”며 “보통 천재가 아니고서는 못 느끼는 데, 친구는 분명히 천재가 확실하다”며 능청을 떨었다. 친구의 유머감각은 확실히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깻잎모종과 고추모종이야 상점에서 돈을 주고 사왔기 때문에 한국말을 가르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겠지만 미나리는 입장이 달랐다. 집사람은 미나리와 깻잎, 토마토, 고추 등을 돌보는 데에 꽃보다 더 정성을 들였다. 가까이에다가 채소 몇 포기를 두고 마음을 다해 가꾼다는 것이 그렇게 큰 즐거움이 될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다. 발코니에 꽃만 키웠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제 우리의 ‘작은 농장’이라 부르기로 했다. 발코니로 향한 우리들의 외출은 잦아졌고 기쁨도 즐거움도 매일매일 불어났다.

꽃만 가꿀 때에는 보통 5일에 한번 정도 나갔었는데, 이젠 하루에 다섯 번 이상을 나가게 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소일거리 하나가 그렇게나 큰 즐거움이 되어 우리를 기쁘게 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부부는 알게 모르게 슬쩍슬쩍 발코니에 나가 채소를 훔쳐보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그렇게 비밀리에 본다는 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꼬리가 잡혔다. “나 몰래 몇 번쯤 더 채소를 훔쳐보았는지?” 추궁이 들어왔고, “자기가 심어 놓은 귀한 채소를 허락도 없이 몰래 훔쳐보는 것은 법에 저촉이 된다”며 “어쩌면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올 수도 있고, 그러다가 기소 당할지도 모른다”며 겁을 주었다. 협박이 통하지 않자, “채소를 너무 많이 훔쳐보면 채소가 신경을 쓰느라 자라는 데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회유까지 했다. 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들이다.

법정스님의 책 중에는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여라’가 있다. 그렇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다 행복 바로 그 자체다. 채소를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만물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된다. 토마토모종은 화요일마다 집 앞에서 열리는 노천시장에서 사온 것으로 성장이 빠르고 왕성했다. 무성하게 치솟은 굵직한 토마토 한 그루에서는 수많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다. 개수를 세다가 실패한 후 결론은 토마토를 딸 때마다 그 숫자를 기록해 수확량을 확인하기로 했다. 우리가 처음부터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고추도 의외의 결실을 가져다주었다. 고추모종은 처음에 받았던 무관심과 냉대가 서운해서였던지 수확량을 확실하게 높여 능력과 실력을 과시했다. 고추모종 한 그루에서 20여 개 이상의 고추를 맺어주었으니 그만하면 풍성한 수확이라 하겠다. 발코니의 작은 농장에서는 우리에게 심심찮은 즐거움을 끊임없이 선사했다. 작은 농장에서 나오는 수확은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절묘한 묘수까지 보여주었다.

그륀네부르크 파크(Grueneburg park)

프랑크푸르트 대학과 팔멘가르텐(식물원, Palmengarten) 사이에 있는 그륀네부르크 파크(Grueneburg park)는 시내에 있는 큰 공원 이름이다. 공원 입구에는 몇 년 전에 우리 정부에서 지은 기와집 두 채가 ‘한국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인들과 한국교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한국정원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인기가 좋았고, 독일시민들을 아시아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흠뻑 취하게 하는 산책코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교민들에게는 고국을 그리며 향수를 달래는 어머니 품속 같은 명소가 되어 한인행사가 자주 열렸고, 교민 몇 사람은 아예 당번을 정해놓고 주위 청소를 도맡아 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 받던 한국정원이 어느 날 밤 화재로 타버렸고, 지금은 작은 사랑채만 삼분의 일 정도가 불에 탄 채로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다.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추정이긴 하지만, 아마 시기와 질투로만 뭉쳐진 우리 이웃나라의 나쁜 사람들 소행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쳤다. 증거가 없으니 추정일 뿐이다.

우린 평소에 공원만 보면 좋아서 “이 공원 최고!”라고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코로나 역병으로 여행도 떠나지 못하고 갇힌 신세가 된 지금은 사람들의 처지가 완전히 달랐다. 세계에서 여행을 가장 좋아하고 많이 하는 사람들은 단연 독일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코로나 역병으로 묶어놓았으니 그들의 답답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공원은 코로나 역병으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우리도 적당히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아서 공원 안의 잔디밭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넓고 편한 잔디밭과 여기저기 작은 숲들 사이로 작고 아담한 잔디밭들은 어디에다 자리를 잡아도 휴식과 여가를 보내기에 편하게 보였다. 크고 작은 숲들이 많아 휴식을 추할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기에 적당했고 아늑한 바람막이로도 충분했다. 평소 우리 생각은 도시공원의 잔디밭에서는 옷을 벗고 일광욕을 못하니까 멀리 다른 나라 바닷가로 휴가를 떠난다고 믿었었는데 공원 여기저기에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마치 해수욕장처럼 북적인다.

팬데믹(Pendemic)과 락다운(Lockdown)으로 여행길이 막혔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집안에만 머물다 보니 사람들은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 되어버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개의 나라가 그랬다. 지금 상태는 아직 견딜만한 나라도 언제 덮칠지 모르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여행에 대해 고민하다가 나는 우리 집 발코니로 여행을 떠났다. 거기엔 맑은 공기가 있고 햇살이 있으며 건너 집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자연이 있다. 발코니엔 우리가 가꾸고 있는 꽃들과 채소가 자라는 작은 농장도 있다. 책상 위엔 먹을 것, 마실 것, 읽을거리가 넉넉하다. 여행지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모아서 착각하면서 즐긴다.

때로는 제멋에 겨워 사는 것도 좋을 때가 있다. 스페인에는 돈 키호테가 있고, 프랑크푸르트에는 황 키호테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0여 년 전에 지은 것으로 40여가구가 살고 있다. 현관문 4개가 있어 10가구당 하나씩 사용하게 되어 있다. 더욱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독신이 8가구나 되어 조용하기가 절간 같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ㄷ’자 모양 중에서 가장 중간이며 더욱이, 아래로 2층 위로 2층이 있어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2020년 10월 23일, 119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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