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일간의 세계일주,
퀸 빅토리아 크루즈로 지구 한 바퀴를 돌다

– 이영남

퀸 빅토리아와 제 2의 고향 함부르크

지구 한 바퀴를 돈 ‘여행 이야기’가 드디어 10월 9일 책으로 나왔다. 1년 반을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여행이 벌써 끝이나 옛 이야기가 됐지만, 그때 그 아름답던 추억은 내 가슴에 남아 시시때때로 훨훨 날개를 달고 망망대해로 날아간다.

몇 번에 걸쳐 크루즈 여행을 했던 경험은 있지만, 장장 114일간 배를 타고 지구를 돌아본다는 것은 상상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여행에 가장 현혹된 이유는 여행 출발지와 종착지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함부르크 항구로 소위 집 앞에서 떠나 집 앞에서 내리는 여행이어서였다.

우선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함부르크를 소개하자면, 독일 북쪽에 위치한 유서 깊은 ‘한자동맹’의 도시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로, 일 년에 250여척의 크루즈 및 선박들이 오고 가는 세계적인 항구도시다.

‘크루즈 여행의 본부’라고 할 만큼 각종 크루즈들이 함부르크 항구를 출발지로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가 택한 큐나드 라인 해운사는 캐나다의 사업가 사무엘 큐나드 씨가 주춧돌을 놓았으며, 영국의 남부지역 사우스햄프튼을 본부로 두고 있다. ‘퀸 빅토리아’ 이외에 ‘퀸 엘리자벳’, ‘퀸 메리’ 등 3개의 유람선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크루즈의 여왕, 바다의 여왕”으로 불리는 호화유람선이다.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다

크루즈 여행이 큰 인기를 끌 때, 우리도 언젠가 ‘퀸 빅토리아’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다가 드디어 2019년 1월 8일 그 꿈이 현실화됐다.

우리 캐빈은 배의 뒤쪽 8층으로 크기도 적당해 한눈에 맘에 들었다. ‘114일간을 좁은 공간으로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을까?’ 했던 염려가 한방에 날아갔다. 특히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에서 책을 읽으며, 꾸럭꾸럭 내 뱃속의 소리를 듣고 싶고 또 시간에 쫓기거나 허둥지둥 대고 싶지 않았는데, 이 꿈을 이뤄줄 발코니가 있어 무엇보다도 좋았다.

어둠이 내리자 배는 천천히 세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9층 중앙 갑판에 나와 손을 흔든다. 눈에 익은 함부르크의 밤 풍경이 어둠에 덮이고 작별을 고하는 고동소리가 밤하늘로 퍼져갔다.

아—–함부르크!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옛날이 생각난다. 낯선 땅, 낯선 언어 그리고 낯선 사람들! 돈을 벌어 집안을 돕겠다며 용감히 고향을 떠났던 그 옛날! 어느 덧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 세월! 고향 공주에서 대전으로, 서울로 그리고 독일로 옮겨온 인생 여행!

이번 기회를 통해 지도상으로만 알던 많은 나라들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여행 전 만나게 될 나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들을 준비해 왔다. 눈 공부만 아닌 지식 공부도 하고 싶었고 또 한권의 책도 만들고 싶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져 드디어 한권의 책이 나오게 됐다.

내가 만난 지구촌의 여러 나라들

이번 여행 코스를 소개해 보자면,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대륙과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 3대양을 그리고 그 유명한 파나마운하와 에쿠아도르 적도를 3번이나 횡단했다. 24개국, 40개 항구, 28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방문 등 약 70,000Km(38434 Sea Mail)라는 엄청난 거리를 둘러본 셈이다.

이어 40여개의 도착 항구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월 : 함부르크-영국 사우스햄프턴, 버무다 해밀턴, 미국의 커내버럴항과 에버글레이즈항-아루바 오랑예스타드-콜롬비아 카르타헤나, 파나마운하, 코스타리카 푼타아레나

▲2월 : 멕시코의 카보산 루카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호룰루루, 사모아의 아피아, 통가의 누쿠알로파, 뉴질랜드의 타우랑가, 오클랜드와 베이오브아일랜드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3월 :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번, 에얼리비치와 다윈, 인도네시아의 발리의 베노아, 베트남의 푸미와 나짱, 홍콩, 베트남의 찬 메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포트켈랑과 스리랑카의 콜롬보

▲4월 : 세이셜의 빅토리아, 모리셔스의 포트 루이스, 레위니옹,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포트 엘리자벳과 케이프타운, 나미비아의 웰비스베이, 스페인의 그란 카나리아의 라스팔마스, 영국 사우스햄프턴. 그리고 4월 30일 독일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이 길고 긴 지구촌을 다니는 동안 경험했던 이야기는 여기에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내 인생에 이보다 더 귀한 경험은 없을 듯싶다.

한편 고도의 현대문명의 소용돌이 속에 무자비하게 자연이 파괴되고 또 바다가 오염돼 오색찬란해야할 바다 속의 신비가, 신비가 아닌 무덤으로 변한 곳도 있었다. 아름다운 지구를 우리 후세들에게 물려주고 보전하려면 우리 모두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대 과제를 실천해야함도 배우게 된다.

크루즈 여행의 장단점

여러 등급의 크루즈가 있지만 대부분 내부 시설이 좋다. 내가 탄 ‘퀸 빅토리아’는 “떠다니는 5성 호텔”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최상급의 친절을 베푼다. 우리 배에 탑승한 전체 인원은 약 3,000여명으로 승객이 2,000여명, 선장 및 직원 1,000여명으로, 손님 2명당 한 사람의 직원이 서비스를 담당한다.

크루즈 여행의 장점은 여행하는 동안 숙소 변경을 할 필요가 없어, 짐을 싸고 푸는 불편함이 없으며 여행 코스도 주최 측이 주선한 코스를 택하면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 또 머무는 동안 술 종류를 제외한 식사와 음료수가 제공되기 때문에 그저 먹고 노는 일 외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심신과 영혼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온전히 쉼을 가질 수 있다.

반면 단점은 저녁에 떠나 그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기 때문에 ‘일일 여행’을 하게 되므로 선택한 코스 이외에 다른 곳을 볼 수 없으며 잘못 택하게 되면 큰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2~3일을 머물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1개의 코스를 택해야 하며 또 가격이 비싸다. 도착지마다 현지 가이드들이 있어 약간 저렴하게 흥정할 수 있다. 개인이 주선해야 하는 복잡함이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현지 가이드 및 여행사를 택했다.

또 하나 장점은 지루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승객이 참가할 수 있는 그림 그리기, 합창, 언어 코스, 꽃꽂이 강습, 공연 등등 수준 높은 프로그램이 있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잊지 못할 추억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가는 곳, 내가 밟는 땅, 내가 경험하게 될 문화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도착 항구 및 나라와 도시에 대해 갖가지 정보를 출력해 가지고 왔다. 주최 측에서 항상 다음 도착지에 대한 정보 및 설명을 해주었는데 내가 준비한 자료들과 함께 차근차근 일기장에 글로 옮겼고 또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여러 나라를 도는 동안 가장 놀라웠던 것은, 중앙부 및 그 도시의 요지에서 한국식당을 발견하거나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닐 정도로 지구촌 방방곳곳에 한국인들이 진출해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타향살이는 고달픈 것! 모두가 성공하기를 빌었다.

또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오클랜드, 시드니, 홍콩에서 한국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회포를 푼 일이 큰 추억으로 남는다.

이번 여행 중 배에서 가진 나의 책 낭독회는 귀한 경험으로 더욱더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Yongi, oder die Kunst einen Toast zu essen’ 이 책은 내가 한국에서 발간한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를 2018년 독일어로 번역해 출간한 책이다. 크루즈 여행 동안 독일여행객을 위해 독일어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낭독회가 열렸고, 이후 배 안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참 좋았다”면서 돌아가면 꼭 내 책을 사서 읽어보겠다고 하는 등 나에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여행은 새로운 것들의 발견!

‘여행’은 먼저 자기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다. 낯선 곳은 우선 불안하고 또 불편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가! 불안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것의 발견’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낯선 나라,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 낯선 언어 등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신비하고 또 호기심도 커서 이 낯섦을 경험하고 배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크루즈 여행 주최 측에서 일기 쓰기를 권고하면서 두꺼운 노트를 선물했다. 나는 주최 측 권고 때문만이 아니라 단 한 번일 수 있는 이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사진 찍기를 유난히 좋아해 사진과 함께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작업을 했다.

이번에 출간한 책에는 약 300여점이나 되는 사진이 포함돼 독자가 읽기 편하게 했으며, 세계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정보지 역할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행은 끝나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법! ‘114일이 지루하지 않을까?’ 했던 염려가 채 가시기도 전에 출발했던 그 자리로 되돌아왔다.

떠날 때 앙상한 가지만 남았던 겨울나무가 봄을 맞아 연초록 잎사귀를 내고 있었다.

떠남도 좋지만 쉼도 좋은 것! 비밀 보따리를 풀듯, 보고 듣고 경험한 수많은 것들을 천천히 풀면서 추억에 잠기리라. 소설 같았던 여행은 끝났지만, 그 찬란했던 해돋이와 석양, 광활한 바다, 그리고 은가루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이 찬란했던 밤하늘! 길고 긴 항해 끝에 나타나는 육지!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고개 숙이며 깊은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수많은 추억들은 한편의 시가 돼 영원히 내 가슴에 남으리라.

아직 펼쳐보지 못한 곳의 유혹에 귀 기울이며, 참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여행이었노라고 속삭여 본다.

서툴지만 이 귀한 여행을 글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 기쁘다.

1193호 30-31면, 2020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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