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

류 현옥

루디가 입원을 하는 날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렸다 여름이 물러갈 조짐을 보이며 낮의 길이가 매일 조금씩 짧아져 가는데 가을을 재촉하며 냉기를 품은 빗방울이 바람을 타고 내렸다. 스판다우 시청 앞 야시장 에서 쓰러진 환자를 실은 앰뷸런스차가 우리병동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뒤따른 앰뷸런스차 안에서 응급 처치를 하는 의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침대 두 개를 붙여 대형 이중 침대를 만들어 준비하라는 지시였다. 병동은 금세 비상 상태로 변했다.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전에 멀리서 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환자는 2미터 8센티미터 키에 체중이 148킬로그램의 거구였다. 앰뷸런스차 속에서 응급치료로 링거주입과 산소공급을 받으며 도착한 환자 는 비에 젖은 옷을 입은 체였고 저체온 상태였다. 서둘러 몸에 들어붙은 젖은 옷을 벗기는 것부터 시작했다. 의식을 잃어가는 그의 상태가 위험하게 보여 상체의 티셔츠는 가위로 잘라 벗기고 마치 포대기 같은 큰 바짓가랑이도 잘랐다. 불려온 다른 의사가 피를 뽑아 검사실에 보내고 심전도 모니터 에 연결되었다 이렇게 시작하여 3개월을 중환자실 에서 최대의 치료를 받은 루디는 병동 팀 전체를 궁극적 테스트를 위한 시험대 위에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당의사는 이 특별케이스 환자의 건강을 되찾아주는 일은 증상치료를 하여 퇴원을 시키는 데서 끝날 것이 아닌 예방 의학적인 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로서의 의무와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의 초과중량의 체중은 만병의 근원으로 급한 윗볼만 끄는 식으로 증상치료를 해서 퇴원을 시키면 소용이 없고 몸속의 불씨는 그대로 있어 얼마 후면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체 팀의 특별한 연대가 필요하다며 간호과장을 통해 팀 회의를 요구했다.

의사는 준비해온 치료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간호 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치료와 동시에 환자의 체중을 최소한 3/4으로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선포했다.

병원에서 의사의 치료와 감시아래 체중을 내리는 일은 환자 루디에게 절호의 찬스로 본다는 주장이다. 의학적인 이론은 설명하지 않겠지만 증상치료와 더불어 루디라는 인간 한 사람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치료에 속하는 원인제거인 체중을 줄이는 일이다.

우선 제일 어려운 일부터 지적하겠다며 잠시 침묵을 하며 눈을 감았다.

커피를 마사며 젊은 의사를 지켜보던 간호사들의 긴장도가 상승했다.

“…… 환자 루디를 이틀에 한 번씩 체중 체크를 하는 일입니다.”

간호사들이 한꺼번에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환자를 올려 세워서 체크할 체중계는 140 킬로그램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당분간은 일어설 수 없는 루디의 몸무게를 달수가 없기 때문이다.

담당의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 반응을 기다린 듯 단호하게 말했다.

“……. 나도 다 압니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환자를 침대에 누운 체로 운반하여 체중을 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어요.

어차피 내과 치료에는 체중 체크가 중요하니 루디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틀에 한번이라지만 주말을 빼면 일주일에 세 번이다. 침대에 누운 환자를 운반하는 짐차가 아침 식사 전에 요한재단의 물품관리장으로 운반하여 저울이 달린 승강기에 올려 무게를 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누군가 한사람이 환자를 동행해야 하는데 당분간 의사자신이 그 일을 맡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식이요법과 물리치료를 동시에 함으로서 근육과 운동신경을 자극시켜 줄어드는 체중에 적응을 시키게 하겠다고 했다.

간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루디 한사람의 집중 치료로 다른 환자들을 등한시 할 수 없다는 항의를 했다. 침상목욕 때는 최소한 세 사람이 필요로 했다. 대형침대 양쪽에 서서 환자 케어를 하는 외에 환자 상태를 예민하게 신고하는 모니터 화면이 보여주는 심전기의 그래픽을 지켜봐야 하고 약품투입이 되고 있는 페푸죠를 지켜보아야 하는 일들이다. 루디 한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은 일손이 모자라는 병동운영에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과도현상을 가져올 것을 각오한 채 다음날로 정해진 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요한재단소속 사회복지사가 여러 번 와서 사회적 배경과 가족 상황을 물었는데 루디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성인이 된 후에는 남자공동 숙소에서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루디는 평생을 무직자로 살아온 복지수혜자다 .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퇴원날짜가 결정되었다. 연락을 받은 구청 사회복지담당자가 퇴원할 때 입고 나갈 옷을 가져왔다.

젊은 의사는 루디가 병원에서 바로 요양병원으로 가서 시작한 치료가 계속되고 식이요법이 중단되지 않게 조치를 했다. 그동안 가끔 방문한 공동숙소의친구들이 루디의 소지품을 가져왔다. 루디는 30kg의 체중을 줄이고 몸과 마음을 재구성이라도 한 듯 다른 사람이 되어 요양소로 떠났다.

통일된 독일 연방국은 정치체제는 물론 온갖 시스템 개조에 들어갔다. 다르게 운영되었던 두 개의 나라가 하나로 순환되는 과정에서 특히 사회주의 체제아래서 저개발 상태였던 운영개선이다. 국경선이 없어지고 하나가 되었지만 존재하는 다른 경영방법의 차이를 없애기 위한 시스템 개선으로 엄청나게 필요한 국가비용을 감당하기위해 경제 프로그램이 실시되었다. 의료기관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동서 베를린시가 합치면서 인구 숫자에 비해 병원 수와 환자 침대수가 상대적으로 많다하여 줄인다는 방책이 보고되었다. 요한재단에 속한 작은 우리병원이 폐쇄대상의 리스트에 오르고 신문지상에 대서특필되었다.

스판다우 지구에는 세 개의 종합병원이 있다. 불과 세 개의병동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내과 병원이 제일 먼저 폐쇄 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많은 사람의 일자리와 나처럼 재단내의 가족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공간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직장과 주거지를 한꺼번에 잃게 될 상황이었다. 당시 베를린 시장이었고 후에 독일 대통령이 된 리챠드 바이책커(Richard Weizsaecker) 부부가 재단이사회의 중요 멤버로 큰 행사 때마다 참석하였기에 안면이 있는 내가 시장 앞으로 병원 폐쇄 반대를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기로 했다.

각 병동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현수막을 들고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자리한 붉은 벽돌집 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렸다. 통일된 독일국가의 수도 베를린 시는 전쟁전의 시청건물을 보수하여 재생시켰다. 병원 구조를 위한 시위에 대한 내용은 이미 신문에 보도되고 있었다. 현수막을 들고 선 병원 팀의 눈을 의심케 한 일이 일어났다.

역시 손으로 쓴 현수막을 든 남자들을 이끌고 루디가 시위단으로 나타났다.

그는 일일이 병원 팀들과 악수를 한 후 준비해 온 호소문을 읽었다. 이 작은 병원에서 그는 새 삶의 출발을 하게 되었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의 생명을 구해준 폐쇄 리스트에 오른 작은 이 병원이야 말로 능력 있는 의사와 간호사가 일하는 곳이므로 문을 닫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남자공동숙소에 사는 그는 처음으로 의사의 인문주위와 간호사들의 따듯한 사랑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고 하루도 빼지 않고 병원 팀들에게 감사하며 되찾은 삶에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지 말고 서명을 하여 베를린 시청 책임자에게 보내는 것에 협조해주기를 호소했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단련된 체구에 청색의 운동복을 입은 그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체중이 100kg이 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중년남자의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병원 팀은 한 달 동안을 주말에 같이 모여 시위를 하면서 환자가 아닌 인간 루디와 다른 인연을 맺었다. 병원은 문을 닫지 않았고 구역의 다른 큰 병원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 존재를 과시하게 되었다 .

루디가 슬로건에 쓴 생명의 은인들이 일하는 곳이기에 구해졌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임에도 병원 측은 루디의 힘이 컸고 그 루디를 치료하고 간호한 병동 팀들의 덕택이라고 칭찬을 했다. 루디는 그 후 병동을 자주 찾아왔고 요한재단의 행사 때에는 잊지 않고 참석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기록된 말이 있다. “하나의 생명을 구제하면 전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하는 많은 격언 중에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금언이다.

1195호 14면, 2020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