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해로(HeRo) 특별 연재 – ‘자신 사랑하기’의 첫 걸음

2015년에 시작된 HeRo(해로)는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코멘트에서 출발했다. 해답은 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활동의 필요성으로 귀결되었다. <해로>의 입술로 연재를 시작하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독 동포들의 목소리를 그릇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고단한 삶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의 입구가 되길 바란다(필자 주)


17/ 자신 사랑하기의 첫 걸음

내가 아는 파독 간호사 어르신 한 분.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다. 언젠가, 앞으로 하고 싶은 소원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일정을 잘 마치고 평화롭게 죽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욕심 없는 소박한 소망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제외할 것 없이 죽음의 터널을 지나야 할 우리에게 종국에는 가장 예민하고 절실한 바람이 될 것이다.

그는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지나온 삶을 통해 충분히 여러 방면으로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왔다. 그러기에 인생에 후회도 기대도 없다고 했다. 나름대로 건강한 삶을 영위한 그가 근래 들어 여러 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고 싶은 소망도 질병의 고통 속에서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행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웰다잉에 대한 책과 강연이 쏟아져 나온다. 삶의 연장선상에서 죽음에대한 통찰도 대중 속으로 진입한 지 오래다. 이렇듯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정신을 상기시키지만 막상 죽음의 문턱에서는 이상적인 마지막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생의 마지막에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생각과 여전히 현세에 대한 미련이라는 동전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물론 신앙이 있는 경우는 죽음 후의 또 다른 삶을 고대하기에 내려놓음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호흡이 멎는 순간을 고통에 겨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 호흡이 있는 순간까지는 부단한 고통이 따른다. 사랑, 그리움, 회한, 지나온 흔적에 대한 통찰이 엄습한다.

가장 중요한 화두는 사람과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후회와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고뇌다. 이때 누군가가 곁에 있어서 손을 잡아주고 남은 시간을 위로할 수 있다면 평온히 고통의 언덕을 넘을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유독 재독 한인사회에 부고 소식이 많았다. 외로운 마지막을 함께 할 누군가는 늘 필요하다.

사단법인 <해로>는 이러한 나이 들고 임종을 향하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일을 소중히 여긴다. 도움활동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자원봉사자를 배출하고 있다. 호스피스 교육은 120시간 이상의 교육을 이수해야만 현장에 배치될 수 있다.

호스피스 2기 자원봉사 교육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계속되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에 입각해 소수의 교육생만 접수를 받았다. 6명의 교육생은 대부분 4~50대로 독일 삶에 어느 정도 안착된 이들이었다.

10월 16일 토요일에 첫 수업이 있었고, 2주의 교육 후 몇 주간 현장 실습시간을 가졌다. 현장을 다녀온 자원봉사자들은 생애 처음 자원봉사 활동에서 느낀 감회를 나눴다.

<교육생 H>

“내가 맡은 환우는 한국에 계신 친정 어머니와 같은 나이였다. 그분은 말을 하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홍시를 좋아하신다는 주변인들의 정보를 입수해 홍시를 가져갔다. 빵이나 다른 음식은 제대로 못 드시는데 홍시를 조금 드리면 입을 벌리셨다. 손톱을 깎아드리고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다. 처음에는 조금 두려웠지만 방문할수록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고향에 계신 우리 엄마 같아서…….”

<교육생 J>

“내가 방문한 요양원은 코로나 여파로 30분밖에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집에서 너무 멀어 처음엔 귀찮은 마음이 들었지만 점점 보람이 느껴졌다. 어르신이 날 기다리는 것 같았고 내가 방을 나올 땐 그분의 눈빛이 너무 외롭고 슬퍼보였다. 처음에는 어르신의 상황이 낯설고 힘들었는데 내가 안 가면 누가 올까 생각하니 마음이 갔다. 말씀을 못하는 분이라 사진을 보여드리고 이야기를 해드린다.

<교육생 M>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남의 인생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젠 내 자신 스스로 많이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 어르신에게 다가갔을 때, 어르신에게서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요양원에서 목욕시키는 직원이 오면 싫다고 앙탈을 부린다고 들어서 이해했지만 사실 깜짝 놀랐다. 나또한 그분을 대하는 게 처음엔 서툴었지만 그분이 싫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미래의 비전을 찾은 것 같다. 그분이 던지는 신호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느낌을 인지하고, 그림이나 음악을 들려주곤 한다

<교육생 K>

“내가 방문한 어르신은 치매환우였다. 어르신의 동생분이 가끔 방문을 하곤 했는데 내가 방문하자 동생분이 무척 반가워하셨다. 동생분 역시 나이가 많아 가족으로 느끼는 어려움도 들어주고 위로해드리기도 했다. 치매환우기 때문에 되도록 눈을 맞춰주고 존중해주려 애썼다.”

호스피스 교육은 남을 돕는 일에 앞서 날 통찰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언젠가 우리 모두 육신의 장막을 벗을 날을 맞닥뜨리기에 우리 스스로 웰다잉을 구현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이 편해진다. 또 내가 베풀었던 사랑의 행위가 부메랑처럼 언젠가 다가올 것을 안다면, 남을 돕는다는 어줍잖은 내적 교만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겸허히, 환우에게 다가서는 한 걸음이 바로 날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박경란/ 사단법인 <해로> Alltagshilfe 자원봉사팀장

후원문의/ 이메일: info@heroberlin.de, 홈페이지: www.heroberlin.de

1196호 16면, 2020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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