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 (1)

전성준

“성님! 나를 만난 뒤로 아무 일 없지라? 혹시 콧물이 나오고 열이 나고 온 삭신이 쑤시는 감기 같은 증상은 없었지라?”

“예끼 이 사람아! 새벽 일찍 전화를 걸어 각고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는 거여. 남들이 들으면 내가 코로나 걸린 사람으로 알겠구만…”

“ 성님! 그게 아니고 지금 상황이 급해서 새벽 일찍 전화를 한 것이니 오해 마시고 제발 내 말 좀 귀 담아 들어 줘요. 아들과 며느리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각고 지금 식당 문을 닫게 되었구만이라. 그런 줄도 모르고 성님과 오래간만에 만나 너무 반가워 마스크도 벗은 채 맥주를 한잔 했으니 이게 큰 탈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행히 나는 음성 판정을 받아서 쪼게 안심이 되지만 그렇다고 음성이라고 안심 할 단계는 아니라 합디다.

음성 판정이 나와도 코로나는 잠복 기간이 2주간이라 하며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니 옴짝 달싹도 못하고 집구석에 처 박혀 있어야 할 신세가 되었구만이라. 그런디 나하고 마스크도 벗은 채 거리 두기도 않고 맥주를 마신 나이 많으신 성님이 걱정이 되어 전화 한 것이 지라. 정말 아무 일 없지라?”

“허어 !! 그래서 꼭두새벽에 전화를 한 것이 구만… 그런 줄도 모르고 큰 소릴 처서 미안하이. 자네 말을 듣고 본께 나도 쪼게 껄적지근하니 마음이 쓰이는 구석이 있기는 한디…암튼 자네 말을 듣고 본께 나도 그냥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가 싶네.”

꼭두새벽 전화를 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은 오펜바흐에 살고 있는 고향 후배 봉수의 말에 짜증을 부리며 애써 태연한 척 큰 소릴 쳤으나 달섭씨도 봉수를 만나고 온 뒤부터 심상치 않게 재채기와 콧물이 나오는 심한 감기 증상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지라 봉수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 봉수 말에 의하면 오펜바흐 반호프 근처에 한국식 불닭집을 운영하는 봉수 아들 내외가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아 성업 중인 식당이 문을 닫게 되었다 한다. 배달이 너무 많아 터키 얘를 한 명 새로 채용 했는데 그 얘가 코로나를 감염시켰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일손이 부족하여 봉수 내외가 아침저녁으로 식당과 집으로 출근하여 부족한 일손을 돕고 있는데 아들 내외가 열이 심하게 나고 콧물과 재채기가 멈추지 않아 혹시나 하고 코로나 테스트를 한 결과 양성판정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이거 큰 일이 났구나 생각이 들었다. 젊은 사람도 아니고 칠순이 넘은 부부가 아들 일을 돕다 아들 부부가 코로나 확진자로 판정이 났으니 누굴 원망 할 수도 없고 눈앞이 캄캄 했다 한다.

허겁지겁 아들이 알려준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달려가서 테스트를 받았다 한다. 즉석 코로나 테스트는 한 사람당 급행료 1백5십유로를 지불하면 세 시간 후에 결과를 알려준다는 말에 연금자한테는 꽤 부담스러웠지만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세 시간 후에 테스트 결과를 알 수 있다하여 대기실에서 조마조마 가슴을 조이며 기다린 결과 음성 판정을 받고서 안도의 숨을 내리 쉬었다 한다.

그러나 음성 판정을 받아도 2주간은 외부 출입을 못하고 집에 머물러야 하는 등 안심 할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달섭씨도 제아무리 봉수가 음성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양성 판정을 받은 아들과 가까이 지낸 그를 만나 마스크까지 벗고서 잡담을 나누며 맥주를 마셨으니 불안했다.

그 뿐인가 설상가상으로 봉수를 만나고 온 뒤부터 자주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나와 혹시 잠시 몸을 거쳐 가는 감기려니 가볍게 생각을 했다. 그러나 콧물이 쉴 사이 없이 흘러 나와 코 밑이 헐고 재채기를 자주하여 귀속까지 멍멍하니 통증을 느끼던 차에 봉수 말을 듣고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침대에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달섭씨는 끙끙 속앓이를하고 있었다.

마침 지하 세탁실에서 세탁물을 한 아름 앉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춘자씨가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남편의 인기척이 없자 이 양반이 또 그새를 못 참고 외출 했는가 싶어 안방 문을 열자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죽은 듯 누워 있는 달섭씨를 발견하고 눈을 흘기며,

“감잣국 재료 사러 간다고 자식들 몰래 빠져 나갔다 오더니 이게 웬 꼴이 다요.” 하며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가 따끈한 생강차에 아스피린 한 알을 침대 머리맡에 놓고 휭 나갔다. 달섭씨는 누구든 설령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을지 모르니 아무나 만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자식들의 말이 떠올랐다. 봉수 역시 음성판정을 받았다 해도 안심 할 수 없지 않은가… 만일 달섭씨 신상에 코로나 같은 증상이 일어났다면 자식들한테 어떻게 알려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매일 수시로 집에 전화를 걸어 지금 독일 전역에 코로나가 심각한 상태이니 절대 외출하지 말고 집에만 머물러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불시에 전화를 걸어 집 전화를 받지 않으면 휴대폰으로 지금 어디냐고 소재를 확인 하는 등 하루도 거르는 날 없이 매일 귀찮고 뻔질나게 걸려온 전화 때문에 전화통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늘 외출하여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버지의 생활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베를린에 살고 있는 아들이나 뮌헨에 살고 있는 딸이 수시로 전화를 하여 아버지의 동향을 체크 했다.

만일 코로나에 감염 되었다 하면 자식들한테 당할 문책이 더 걱정스러웠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말이, 설령 나이 많은 아버지, 어머니가 코로나에 감염 되어 확진자로 판정이 나면 가족도 방문을 금하고 얼굴도 볼 수 없으니 자식들을 불효자로 만들지 마시고 집에 계시라고 집 전화를 받으며 애원적인 어조로 당부를 했다. 그러나 집 전화를 받지 않고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밖에 외출한 줄 지례 짐작 <자식들 불효자로 만들지 마세요.>하며 사뭇 위협적으로 말을 해 왔다.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자식들한테 확인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달섭씨는 늘그막에 코로라 핑계로 마누라뿐 아니라 자식들한테까지 감시를 받아 가며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싸잡아 투덜거리며 화를 버럭 냈다. 그럴 때 마다 춘자씨는 <자식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하는 말을 가지고 동네방네 사람 들으라고 고래고래 큰소리를 칠게 뭐람… 눈만 뜨면 집안일은 나 몰라라 거들 떠 보지도 않고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아버지를 자식들이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을 가지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큰 소리로 화를 낼게 뭐람….> 평소에 남편한테 쌓인 불만을 자식들을 앞세워 투정을 부릴 때는 달섭씨는 혀를 끌끌 차며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자리를 피했다.

춘자씨와 입씨름을 해 본들 결과는 언제나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나 마누라가 하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당연한 말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매일 눈만 뜨면 집을 나와 술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부부가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주말이나 휴가 때를 빼고는 낮 시간을 마누라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별로 없어 부부간에 별 충돌이 없이 살아 왔다.

휴가 때는 같이 한국도 다녀오고 2,3일 짧은 여행도 자주 가는 금실 좋은 부부였다. 그러나 서로 정년퇴직을 하고 마누라와 같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하찮은 일에도 열을 올리며 자주 부부간에 충돌이 잦아 졌다.

연금 생활에 들어서부터 춘자씨는 남은 여가 시간을 오직 교회를 위해 봉사를 해 왔다. 모태 신앙으로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병원 간호사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믿음 생활을 소홀히 한 것 같아 연금 생활에 들어가기 바쁘게 교회에 매달렸던 것이다. 더욱이 권사 직분을 받은 뒤로는 적극적으로 교회 봉사와 전도에 생활 일부를 할애 할 만큼 열성 신도였다.

술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달섭씨는 집안 살림을 아예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와는 달리 춘자씨는 병원과 교회 일을 빼고는 남매 뒤 수발과 집안 일 밖에 모르고 살아 왔다.

그래도 자식들은 기특하게도 아버지를 늘 챙겨 오고 어머니 몰래 용돈도 아버지 호주머니에 넣어 주곤 했다.

춘자씨는 자식들이 끔찍하게 아버지를 챙겨 주는 효심도 모르고 늘 집 밖을 배회하며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남편이 하나님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점이 자신의 부족한 믿음 때문으로 여겨 늘 회개하며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를 했다. 언제나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는 남편이 얌전하게 고분고분 자신의 말에 따라 나설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어느 때는 눈물을 보여 가며 춘자씨는 끈질기게 통성 기도까지 했다.

한 때는 달섭씨도 춘자씨의 끈질긴 설득과 읍소에 못 이긴 척 마지못해 몇 차례 주일 예배에 참석 했다. 그러나 목사님 설교 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는가 하면은 꾸벅 꾸벅 졸음이 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긴장을 하면 할수록 더욱 졸음이 심하고 잠깐 수면이 그렇게 흡족 할 수가 없었다. 그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던 춘자씨가 남 보기 창피해서 허벅지에 새 파랗게 멍이 들게 꼬집어도 세상모르고 졸음에서 깨어 날 줄 몰랐다.

그 뿐만 아니었다. 새 신자 환영 예배가 열리는 주일 전날 토요일 향우회 모임에서 질탕 취해 돌아 온 달섭씨를 겨우 달래어 주일 예배에 참석 했다. 이날 예배가 새 신자인 달섭씨와 다른 새 신자를 환영하는 예배 자리였다.

새 신자를 환영하는 목사님 설교가 성경 말씀으로 진지하게 이어 지는 순간,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 할 때 어제 밤 마신 주기에 코까지 드르렁 골며 잠에 취한 것을 춘자씨가 몇 차례 옆구리를 쥐어박고 흔들어도 아무런 기척도 없자 심하게 흔드는 바람에, <아이큐!>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넘어져 코피를 흘리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그 뒤로는 남편 전도를 포기하고 남편이 하나님을 받아 드릴 때까지 작정 기도를 하기도 춘자씨는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다.

춘자씨는 틈만 나면 찬송가와 성경책을 앞에 놓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를 좌우하시는 위대한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저 늙은 양을 구원 해 주시길 간절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는 춘자씨의 통성 기도 횟수가 늘어 갈수록 달섭씨 마음에 동요가 오기는커녕 더욱 마음이 멀어지고 외출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젊은 시절 파독 광부로 독일 땅을 밟기 전에 한때 주간지 연예부 외근 기자로 활동할 즈음 전문 왕기자 지시를 받아 유명 배우 일일 촬영 스케줄을 뒤져 지방 곳곳 영화 촬영장을 찾아 가는 일정을 전담하고, 특종을 얻기 위해 인기 가수나 드라마 탤런트 뒤를 쫓아 다니는 그들 사회에서 흔히 통용 된 용어 인 시다바리 또는 요즈음은 따까리로 잔뼈가 굵고 많은 이력을 달섭씨는 쌓았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역마살을 끼고 태어나 마당발처럼 활동적으로 살아 온 그가 독일 땅에 정착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아직도 그 기질이 남아 잠자코 집안에 쥐 죽은 듯 묻혀 지내지 않았다…

1978년 마지막 후진으로 독일 땅을 밟은 후 루르지역 에린광산 채탄부에서 일 할 즈음 막장에서 활차에 팔목이 끼이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 오른 쪽 팔목 뼈가 심하게 탈구가 났었다.

다행히 부서진 뼛조각을 제자리에 연결하는 정교한 의술 덕택으로 완치는 되었으나 정상적으로 팔을 사용 못하는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마침 장애2급 정도면 능히 가능한 대학병원 환자 배식 차량 기사로 근무 정년퇴직을 했다.

젊은 나이에 새로운 문화를 찾아 독일 광부로 취업하였으나 자신의 꿈을 펼쳐 보지 못한 채 장애자 2급 판정을 받은 후부터 성격에도 많은 변화가 따랐다. 활동에 큰 불편은 없지만 여름철 팔소매 짧은 옷을 입을 수 없고 남들 앞에 정상적인 팔을 내 보일 수 없는 장애자 2급이라는 편견 속에서 평범한 보통 사람과 달리 받는 스트레스에 무척 술을 즐겨 마셨다. 그는 시골 술도가집 맏아들로 태어 나 일찍부터 술 맛을 알고 자랐다 그 때문인지 술에 대한 일가견이 있고 손에 들고 가기에는 힘이 들어도 뱃속에 담고 가기는 어렵지 않은 주량을 지녔다.

그처럼 남다른 기질과 이력을 소유한 그가 마누라 뒤를 고분고분 따라 예배당을 찾아 경건하게 예배를 드릴 차분한 성품은 절대 아니었다. 요즈음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집안에 갇혀 마누라 눈치나 살피며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더욱 코로나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날로 기승을 부리며 진정 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독일연방 정부에서는 11월 한 달 동안은 모든 식당과 각종 모임을 통재하고 마스크 착용을 의무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엄격히 발동하는 등 코로나 방역에 엄격한 지침을 내리자 아들 딸 들이 더욱 귀찮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 때문에 근처 마켓이 문 여는 아침 시간에 맞춰 인적이 드물 때를 틈타 부리나케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하여 오는 것 외에는 외부출입을 않고 지냈다.

춘자씨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못하고 안달이 나있는 남편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을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주일 날 예배당에 가는 날만 빼고 매일 집에 머물러 성경책과 찬송가를 끼고 살며 틈이 나면 쓸고 닦고 집안 살림에 만 정신을 쏟는 춘자씨와는 달리 달섭씨는 TV와 인터넷을 번갈라 보며 소일 했다. 춘자씨가 교회에 전적으로 매달린 후 부터 부부사이에는 밥 먹는 시간과 밤잠자리만 같이 할 뿐 물과 기름처럼 지냈다.

아침저녁 숲속 산책도 춘자씨는 원치 않아 달섭씨 혼자 마스크를 쓰고 근처 숲길을 산책 했다. 그러나 산책도 몇 차례 다녀 온 뒤로 그만 뒀다.

마스크를 쓰고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저 만큼 걸어오던 사람들이 달섭씨를 보고는 길도 없는 옆 숲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가 하며 어떤 사람은 오던 길로 뒤 돌아 다시 가다가 딴 길로 빠져 나가는 등 마스크를 쓰고 산책 나온 달섭씨 모습이 마치 코로나에 걸린 환자로 착각 기피하는 모욕적인 일이 자주 벌어 졌다.

심한 모욕감에 화가 부글부글 들끓었으나 꾹 참고 집에 돌아 와 생각하니 머리 검은 동양사람 전부는 중국인으로 인정하고 마침 코로나 진원지가 중국이라 하니 동양인을 혐오하는 그 자들이 요즈음 부쩍 늘어 산책 가는 것도 중단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잠시도 집안에 붙어 있지 않은 아버지한테 금족령을 내린 것이 미안 했는지 베를린 사는 아들이 내려 와 TV에 인터넷을 깔아 주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TV채널 선택으로 어머니와 다툼이 생길까 우려해서 별도로 휴대용 아이패드를 어머니한테 선물 기독교 방송CGN 앱을 깔아 목사님들 설교를 듣게 하는 등 부모한테 각별히 많은 신경을 자식들은 썼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1198호 14면, 2020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