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니콜라우스(산타클로스) 이야기

프랑크푸르트의 옛 니콜라이교회(Die Alte Nikolaikirche)

재독화가 황수잔

여행은 낯선 곳에서 문화와 역사를 탐방하고 새로운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여행은 항상 즐겁다. 특히 유럽 문화를 바로 알기위해서는 옛도시, 옛교회, 고성을 알아야한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알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오랜 세월동안 간직한 옛도시, 옛교회, 고성마다 간직한 이야기들이 놀랍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필자는 유럽의 문화를 즐기고 음식을 맛보는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여행의 마니아가 되었다.

약 11-12세기 건축된 옛 니콜라이교회

프랑크푸르트 Roemerberg 광장에 중세기 고딕 건축양식 건물인 1988-89년에 복원한 아름다운 니콜라이(산타클로스)교회가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 교회중 하나이다. 니콜라이교회는 약 11-12세기에 건축된 작은 기도하는 집 카펠레(Kapelle)였다. 13세기 중엽에 종탑을 세웠고 말엽에는 긴 형태인 고딕 건축양식으로 건축했다. 내부 벽면에 약 1370년의 무덤 속의 그림인 고분벽화, 1m가 넘는 ‘고뇌의 인간 (Der Schmerzen Mann)’ 예술작품이 교회를 돋보이게 한다. 입구는 아치양식으로 성가대석도 설치하였다. 이곳에서 왕이 예배보기도하고, 기도하는 집으로서 주교는 직접 임명하였다. 15세기 니콜라이교회는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서 자선을 베푸는 자선교회(Ratskirche)였다.

니콜라아교회 목사 Dr. Myers(왼쪽)와 함께한 황수잔 작가, 그리고 참석자들

15세기 중엽 교회 종탑은 마인강에 무역선이 도착하면 나팔을 불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파수꾼(Waecher)역할을 했다. 16세기 종교개혁(1520-1530)으로 인해 교회는 폐쇄되었고 창고로 사용하였다. 18세기 초 다시 복원하여 1721-1813년까지 그곳에서 예배를 보았다. 세계2차 대전후 교회는 또다시 폐쇄하였고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창고로 사용하였다. 1949년부터 가톨릭교회였던 니콜라이교회는 신교 공동 성바울교회(Evangelischen Paulsgemeinde)가 되었다. 1989-92년 지하에는 창고로, 강대석(Lesepulte)과 1992년 유명한 오르간 전문회사에서 오버린거 오르간(Oberlinger Orgel)을 설치해서 지금의 수려한 교회가 되었다.

성니콜라우스(산타클로스)이야기

성니콜라우스는 주후 254년 현재 터키지역 파아타아라아(Patara)에서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신앙이 돈독한 그의 부모는 그가 신부되기를 위해 수도원학교를 보냈다.

니콜라우스 삼촌은 뮤라(Myra)시의 주교였다. 그는 수도원학교를 수료한 19세인 니콜라우스를 신부로 임명했고 고향 시이온(Sion) 교회에서 봉직하도록 했다.

니콜라우스는 부모를 유행성 페스트로 잃고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그는 일생동안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위로하고 재산을 가난한자들에게 나눠줬다. 주교인 삼촌이 죽은 후 성지순례에서 돌아온 니콜라우스는 뮤라시의 기독교총회 협회에서 채택되어 주교가 되었다. 그가 행한 선한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의 고향인 시이온에서 가까운 파아타아라아(Patara)에서 결혼을 앞둔 세 딸을 가진 가난한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당시 풍속으로 신부가 지참금을 지불해야만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 아버지는 난로가 없는 추운 방에서 딸들의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들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생각 끝에 첫째 딸이 제안을 했다. 자신을 노예로 팔아 그 돈으로 동생들의 결혼지참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생들은 저마다 노예로 팔아 두 자매의 결혼지참금을 마련한다고 하였다.

마침 이곳을 지나가다가 창문을 통해 비참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인정이 많은 니콜라우스신부는 그들을 도와주기로 했다. 교회로 돌아온 그는 금자루를 가지고와서 열려진 창문을 통해 떨어뜨렸다. 금자루를 본 그들은 대단히 놀랐고 이 선물은 분명 우리들의 딱한 사정을 아시고 하늘에서 도와준 것이라고 굳게 믿고 감사드렸다. 그들이 금을 판돈으로 첫째 딸은 즉시 결혼하였다. 금자루 선물을 창문으로 떨어뜨린 날이 바로 12월25일이였다.

1년이 지나 니콜라우스는 또다시 똑같은 날 금자루를 같은 방법으로 떨어뜨려 금을 판돈으로 둘째가 결혼하게 되었다. 3년째인 그날은 유난히도 추운 겨울밤이어었다. 창문은 닫혀있었고 선물을 몰래 전할 방법이 없었다. 생각 끝에 그는 지붕을 올라가 굴뚝을 통해 금자루를 떨어뜨렸다. 마침 그때 셋째 딸은 양말을 빨아 난롯가에 걸어놓고 말리고 있었는데 금이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행운을 경험한 세자매 이 이야기는 입으로 널리 전해졌다.

그 후 세계적으로 12월 25일은 아기예수가 탄생한 날이며 크리스마스시즌이 되면 니콜라우스(산타클로스)가 나타나 선물을 주는 날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니콜라우스 날은 12월 6일이다. 12월6일 전날밤 선물을 받기위해 문 곁에 장화를 세워두거나 양말을 걸어두고 다음날 아침을 보면 니콜라우스가 지나가면서 초콜릿이나 귤 또는 렙과자, 땅콩선물 등을 넣은 것을 보고 아이들은 무척 좋아한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서 니콜라우스로 가장하고 어린아이들을 방문한다. 1년 동안 지내면서 착한지 불량한지를 적은 금색으로 된 ‘귀중한 책(Goldenen Buch)’을 펼쳐 읽은 다음 착한아이에게는 선물을 불량한 아이에게는 매로 다스린다. 니콜라우스는 하얀 수염과 빨간색 모자, 끝에는 하얀 털 방울이 달려있다. 긴 겉옷(수도사 옷의 일종) 소매 끝과 옷자락에 하얀 털이 달려있다. 복장은 가톨릭 수도사 옷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성니콜라우스를 신타, 성스러운 니콜라우스 ‘신타크라세(Sinterklasse)’ 라고 한다. 신타크라세가 미국에서는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1931년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시즌에 사슴이 마차를 끌고 오는 코카콜라선물 선전에서 빨간색과 하얀색을 이용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산타클로스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후 산타의 옷 색은 빨간색과 흰색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시즌이 되면 곳곳에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가난한자들을 위한 자선냄비에 종을 흔들면서 구호금 모금을 한다.

니콜라이는 선한 일에 앞장서고 악한사람들에게는 매우 무섭게 하는 다혈질인 정의의 사람이었다. 마치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그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는, 국민의 존경하는 스타였다. 유럽에서 니콜라우스 날을 12월 6일로 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선원들이 무사히 항해를 위해 제사드리는 뮤라시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고 풍요로운 여신 디아나(Diana) 신전이 있었다. 이방신을 숭배하는 그들은 310명의 크리스찬들을 데려다가 심한고문을 하고 괴롭혔다. 이 사실을 알고 대단히 노한 니콜라우스는 디아나신전을 모두 파괴해 버렸다고 한다. 승리에 찬 크리스탄들은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디아나여신의 생일인 12월 6일을 니콜라우스날로 정했다.

그후 유럽에서 니콜라우스날은 12월 6일이 되었다. 6세기중엽 콘스탄티노플(Konstantinopel), 지금의 이스탄블에 Justinian황제에 의해서 니콜라이교회가 처음으로 건축되었고 니콜라우스 칭호는 성 니콜라우스가 되었다. 러시아교회에서는 예수, 마리아 그리고 성니콜라우스로 숭배한다.

니콜라우스 이야기는 8세기 로마로 전해지면서 전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독일에는 Friesen선교사에 의해서 알려지게 되었고 약 980년 Otto황제 부인 그리스인인 Theophanu에 의해서 니콜라이 교회를 건축하였다. 그때부터 수도원 학교에서는 선한 일을 한 학생들에게는 니콜라우스 날이면 선물을 증정했다. 현재 이슬람교인들도 니콜라우스날(Noel Baby 라고 함)인 12월6일이 되면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한다. 이탈리아 브라우와일라(Brauweiler)에서는 1087년 4월 선박 3척이 터키를 항해하면서 성니콜라우스가 묻혀있는 유명한 관광지가 된 터키 Kale 중심가에 있는 니콜라이교회에 보존하고 있는 대리석 관 속에서 뼈를 훔쳐가지고 와, 지하에 대리석관을 만들어 보존한 브라우와일라에 니콜라우스교회를 건축했다고 하니 니콜라우스는 대단한 인물임을 알 수있다. 현재 뮤라시의 니콜라이협회에서는 잃어버린 부분적인 뼈를 찾아와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그가 사망한지 천년이 훨씬 넘는 오랜 세월인데도 유적을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11-16세기에 걸쳐 북쪽 알프스산맥에 건축된 니콜라이 교회가 2,200개 이상이나 된다고 하니 당시 엄청난 트렌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외롭고 어렵고 힘들 때 위로하고 도와줬던 사람은 일생동안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산타클로스라고 한다.

뮤라시에 가장 어렵고 빈곤한때가 있었다. 그들은 양식이 없어 굶고 있을 때가 많았다. 당시 로마황제를 위해 곡식을 싣고 가는 100척의 선박이 있었다. 니콜라우스는 그들 선장들에게 곡식을 뮤라시 시민들을 위해서 나눠줄 것 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생을 보내는 그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곡식을 나눠주기로 하고 그 대신 로마에 도착하면 곡식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했다. 니콜라우스의 간절한 기도를 받고 로마로 도착해보니 곡식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곡식을 로마황제에게 무사히 전해 주게 되었고 뮤라시민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매년 12월이면 어김없이 다시 니콜라우스(산타클로스)날이 온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상처 입은자들이 위로받고 따스한 인정들이 오고가는 산타클로스 날이 되길 기도한다.

황수잔 초대미술작품전을 옛 니콜라이교회에서

도서전에서 그림 어린이책 출판사 대표와 함께
도서전에서 황수잔 작가가 자신이 표지를 디자인한 재외동포 문학상수상집을 보이고 있다.

2005년 도서전시 주빈국인 ‘한국의해’ 문화행사로 10월 22-23일까지 2일간 Alte Nikolaikirche Roemerberg Frankfurt am Main 에서 ‘아버지와 아들’, ‘창조, ’시간‘ 등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을 나타내는 추상화로 남북간의 ’화해‘ 테마로 “황수잔 초대미술작품전”이 열렸다.

첫날인 10월 22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관광지인 니콜라이교회를 찾는, 미술작품전을 보러온 방문객들로 하루 종일 붐볐다. 10월 23일 11시15분이 되자 전시개막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 모인 독일인들과 우리들(한국인들)은 제단위로 올라가 둥그렇게 의자를 놓고 앉았다. 담임목사 Dr. Myers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먼저 작가의 인사가 있었고 한국어 성경봉독(고린도후서에서)이 있었다. Myers목사님은 우리들에게 남과 북의 상황에 대해서, ‘화해’라는 테마인 그림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에서 본 남과북의 상황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했다. 대화가 끝난 후 재독시인인 유한나씨의 ‘화해’ 테마로 시낭독이 있었고 윤미선양과 황수잔 작가의 부군인 Rein씨의 은은하고 낭만적인 플루트연주(Barcarole Lago Arvo, Badinerie Valsavaranche)가 오랜 옛 정취를 간직한 니콜라이교회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었다. 끝으로 남과 북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통일의 그날이 오기를 다함께 기도하고 목사님의 축도로 마쳤다.

오후3시부터는 2부순서로 한국의 전통차와 떡, 과자를 시식하면서, 작가와 함께하는 작가의 작품설명과 남과 북의 현재상황을 설명했다. 대부분 참가자들이 독일인들인데도 분단된 우리나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을 들으면서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모든 설명이 끝난 후 ‘아버지와 아들’ 그림 앞에서 “우리 모두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평화를 누리자” 라는 설명으로 모두 끝냈다.

  • 일간 400명 이상이나 되는 많은 방문객들이 니콜라이교회를 다녀갔다. 그들 중에는 잠깐 쉬었다가 가는 사람, 작품과 교회를 감상하는 사람,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선헌금함에 헌금을 하고 촛불을 켜서 기도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여름에는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방문객들이 하루에도 천명이상이나 된다고 하니 니콜라이교회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대단하다.

그들은 다른 나라 다른 인종이지만 한 아버지의 형제들이며 자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의 성전을 찾아온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그들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끊임없이 니콜라이성전을 방문할 것이다.

1198호 30-31면, 2020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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