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3)

전성준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의 사고력마저 감퇴시켰다.

때는 늦었지만 교포신문 창간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재독 동포사회에 영원한 신문고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며 소외되어 가는 원로들이 쇠잔한 기력을 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천근만근 온 몸이 무겁고 뼈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팠다. 오래간만에 거나하게 취해 속옷차림으로 소파에 쓰러져 천지분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깬 탓일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몸이 개운치 않고 재채기와 콧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독감 예방주사도 10월에 맞았고 혹시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고 비상 약통을 뒤져 아스피린 몇 알을 먹은 것이 고작이고 춘자씨가 열심히 끓여 주는 생강차만 거푸 마시었다. 평소에 큰 탈이 없어 어지간하면 의사를 찾지 않고 잘 참고 견디는 성격이라 춘자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상비약으로 구비 해 놓은 아스피린과 생강차를 꾸준히 준비했다. 아스피린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재채기와 콧물이 멈추지 않았다. 심한 재채기에 귀가 멍멍하고 멈추지 않은 콧물 때문에 코밑이 헐어 혹시나 코로나 증상이 아닐까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봉수 전화를 받고서 눈앞이 아찔했다.

곰곰이 몸 상태를 살펴보니 한국 뉴스에서 자주 들었던 코로나 초기 증상과 자신의 몸에서 생기는 증상이 너무나 흡사했다. 면역성이 떨어지고 기저질환이 있는 나이 많은 늙은이들이 쉽게 감염 되고 걸렸다 하면은 치사율이 가장 높다는 말에 달섭씨는 불길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달섭씨는 애주가로 소문이 날만큼 술을 자주 마셨지만 나이에 비해 평소 독감이나 감기에 걸려 고통을 받은 병력이 별로 없고 아직까지 흔한 성인병에 걸려 전문의를 찾아 간 일이 없어 병원과는 자연히 거리가 멀었다. 그 때문에 늘 자신의 건강에 대해 불안해 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봉수를 만나고 온 뒤부터 코로나와 유사한 증상이 일어나 설마 하던 차 봉수 전화를 받은 것이다.

<괜히 얼큰한 감자국이 생각난다고 대형 마트 메트로까지 돼지 뼈를 사려 갈게 뭐야, 오래간만에 고향 후배를 만났으면 주먹 인사나 하고 헤어지지 마스크까지 벗어 던진 채 얼굴을 마주 보고 맥주병을 서로 마주 치며 “위하여” 호기까지 부릴게 뭐람…>

뒤 늦은 후회도 해 보았다. 만일 코로나 양성으로 판정을 받으면 앞으로 닥쳐 올 일을 상상하니 눈앞이 캄캄하여 땅이 꺼질 듯 긴 한숨을 내리 쉬었다. 아들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으나 다행히 봉수 부부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말에 다소 안심이 되었으나 지금 달섭씨 몸에 나타난 증상을 살펴보면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 코로나 초기 증상을 찾아보았다. 무증상 감염자도 있지만 대체로 코로나 증상은 체온이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이 지속되는가 하며 기도가 붓서 올라 호흡이 힘들며 기침과 콧물이 나오고 뼈 속까지 파고드는 심한 통증이 계속 된다는 말에 달섭씨는 차근차근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증상을 꼼꼼히 비교를 해 보았다.

다행히 심한 열은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 초기 증상과 비슷한 자각 증상이 수시로 일어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코로나에 걸린 것은 아니겠지…설마가 사람 죽인다던데…>

달섭씨는 고민을 하다가 밤늦게 봉수한테 전화를 걸었다.

“성님! 늦은 시간에 웬 일이세요.혹시 몸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닌거요? 목소리까지 다 죽어 가는 사람 목소리 같구만이라.”

“맞네. 자네 말처럼 죽을 지경이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으니 독감은 아닌성 싶은데…심한 열은 별로 없는데 몸뚱이 사방팔방이 쑤시고 아픈데다 재채기 콧물이 멈추지 않고 나와 죽을 지경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알아 볼 것이 있어 전화를 했구만…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자네 아들은 지금 어떤가? “

“설마 성님이 코로나에…”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이어서

“처음에는 머리가 빠개지게 열이 나고 콧물 재채기를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심한데다 숨도 제대로 못 쉽디다. 그런디 요즈음 멀쩡해 각고 격리기간이 끝나면 다시 식당 문 열 준비를 하고 있어라. 젊은 애들한테는 독감을 앓고 난 것 마냥 멀쩡합디다. 아들 며느리가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은 뒤 온 집안이 금방 무슨 일이 생기는가 싶어 야단이 나서 혼쭐이 났는디 아직까지 멀쩡한 것이 크게 걱정 할 것 아닌가 싶네요.’ 성님! 너무 걱정 마세요. 설마하니 성님같이 자식들이 하라는 매뉴얼을 잘 지키는 양반이 설마 코로나에 감염될 리 만무하지라.”

봉수는 달섭씨를 만나 맥주를 마신 다음 날 아침 일찍 득달같이 전화를 하여 다급하게 말하던 때와는 달랐다. 양성 판정을 받은 아들 때문에 불안 해 할까 봐 다시 전화를 하여 달섭씨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여유를 보였다. 그리고 입담 좋은 그는 성님이 코로나에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다시 장황하니 어린 얘를 달래듯 말을 늘어놓았다.

“성님! 옛날에 어느 종갓집 맏며느리가 시집 온지 몇 년이 지났는데 태기가 없어 절을 찾아가 백일치성도 드리고 회임에 좋다는 약은 전부 먹어 보고 길일을 택해 몸을 정갈하게 씻고 합방도 하고 정성을 드린 어느 날 울컥 비위가 돌고 먹은 음식을 토해 내는 일이 일어나 드디어 입덧이 났구나 하고 뛸 듯이 반가워 했는디 실은 너무나 임신을 간절히 원해 일어난 상상 임신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성님도 알고 있지라. 지금 성님이 그 종갓집 며느리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 야기지라. 성님은 지금 내가 혹시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는가 내심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성님 말을 듣고 보니께 성님이 너무 과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구만이라, 암튼 그래도 조심해야지요. 혹시나 해서 말인데 코로나 예방에는 폭삭 익은 유산균이 많은 쉰 김치가 좋다고 합디다. 그 말을 듣고 아들 며느리도 먹고 우리 부부도 먹었지라. 그리고 비타민C가 많이 들어 있는 레몬과 생강차를 많이 마시고 몸 관리를 잘하시길 부탁드려요 그리고 정 불안하면은 코로나테스트를 한번 받아 보실라요.

봉수의 말에 의하면 대학병원에 가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데 결과가 4~5일 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직접 가면은 하루 후에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사비용은 의료 보험처리가 아니 되며 자비 부담이 75유로라 했다.

그리고 급행료 150유로를 지불하면 3시간 후에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 잠복기간이 2주간이라 하니 성님을 만난 지 4일이 지났으니 앞으로10일 동안만 절대 외출을 하지 말고 타인과 접촉을 하지 말고 집안에서도 형수를 위해서 꼭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달섭씨는 봉수의 장황한 설명에 약간 불쾌감을 느꼈다. 행여 자신을 통해 코로나가 감염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불똥이 자기한테 튀지 않을까 해서 긴말을 늘어놓고 있지 않는가 하는 추측이 들었다. 친 동기간은 아니라도 이제까지 살갑게 지내 오던 봉수를 코로나 때문에 불신을 하다니 코로나가 만든 병폐가 인간사회에 또 다른 불신 병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봉수의 아들 증상을 듣고 보니 다소 안심이 되었다. 재채기와 콧물에 고생을 하고 있지만 심한 두통과 열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심 할 수는 없었다. 손을 자주 씻고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당분간 부부간 각방을 쓰기로 기회를 보아 춘자씨한테 말하기로 했다.

뼈다구 감자탕 재료인 돼지 뼈를 사려 밖에 나갔다 또 술에 취해 감기까지 걸려 온 줄 알고 달섭씨를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춘자씨가 다짜고짜 당분간 각방을 사용하자는 말에 순순히 응해 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길게 오래 뜸 들이 시간 없는지라 아침 빵을 먹는 자리에서 달섭씨는 당분간 각방을 사용하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달섭씨 예상대로 각방을 사용하자는 말에 팔짝 정색을 하며 마시던 커피 잔을 식탁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앙칼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길에 주춤 했으나 말을 계속이어 갔다. 봉수를 만나고 돌아 온 후부터 몸에 나타나는 증상이 심상치 않다고 지금까지 일을 자초지종 설명을 하며 설득했다.

“당신이 요 며칠 사이 재치기에 콧물까지 흘리더니… 그럼 혹시 코로나에….” 까무러치게 놀랜 춘자씨는 얼굴을 감싸고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달섭씨는 태연하게 춘자씨를 달래며 능청을 떨었다.

“나 혼자 코로나에 걸려 죽으면 됐지. 나 때문에 당신까지 내 뒤를 따라 죽으면 아니지. 그동안 나를 따라 살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험한 일도 많이 당했으니 남은 여생 편히 살아야 할 것 아냐. 이 참에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해줘. 다행히 아무 일 생기지 않으면 당신 손잡고 같이 교회에 가자…”

당신 손을 잡고 같이 교회에 가자는 뜬금없는 말에 춘자씨는 금방 감동을 받았는지 울상이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이제야 남편을 위해 작정 기도를 했던 기도 발이 드디어 증거로 나타났구나…

주여! 주여! 울컥 눈물이 날 지경으로 감동을 받았으나 각방을 사용하자는 남편 말에는 약간 빈정이 상했다. 그러나 각방을 사용하던 말든 남편 입에서 예상 못한 말이 나오자 순간 감동을 받아 아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으나 춘자씨도 이 기회에 남편한테 한마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태연하니 정색을 하고 달섭씨 말에 응수했다.

“우리 교회 박권사, 김권사, 양집사, 송집사들이 오래 전부터 남편과 떨어져 각방을 쓰고 있다는 말을 해서 설마 했더니 우리 집에도 그런 일이 닥쳐왔네요.

당신 코 고는 소리도 안 듣고 시도 때도 없이 이불 속에서 꿔 되는 방귀 냄새에서도 해방이 되었으니 정말 잘 되었네요. 그렇지만 자식들한테 이런 사실을 숨길 테니 앞으로 건강을 생각해서 술 좀 작작 했으면 해요. 약속하지요?”

겉으로 태연한 척 내숭을 떨면 말하는 춘자씨의 얼굴색이며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달섭씨는 알아챘으나 모른 척 했다.

춘자씨와 달섭씨는 아등바등 자주 다투고 부부 싸움도 자주 했으나 두 사람 다 성질이 모질지 않고 몇 시간 지나면 언제 부부 싸움을 했는가 싶게 금방 풀렸다. 서로 취향이나 성격이 달라도 밤마다 같은 침대에서 비록 서로 등을 돌리고 잠자리를 같이 할망정 각방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원치 않았는데 코로나가 부부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춘자씨는 집안에서 혼자 끙끙거리며 지낼 것이 아니라 전문의를 찾아 코로나 테스트도 받고 치료를 받자고 간청을 했다. 그러나 달섭씨는 완강히 거부를 했다.

석연치 않는 증상으로 지금 이 시기에 의사를 찾으면 금방 주변에 소문이 날것이고 한국과 달리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도 자가 격리를 시키고 격리기간 내 자연 치유가 되지 않고 증상이 심해지면 그때야 중증 병실로 입원시킨다는 사실을 봉수를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자식들한테 무슨 면목으로 알려야 할지 난감하고 설령 이 사실을 자식들이 안다 해도 집에 찾아 올 수도 없는 자식들의 입장을 생각하니 더욱 눈앞이 캄캄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더 이상 무엇을 바라고 욕심을 부려 가려가며 자식들한테 부담을 줘야 하는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생각하고 집안에서 남은 격리기간 10여일을 코로나 방역 기준을 철저히 지켜 코로나의 공포 속 창살 없는 감옥에서 탈출하기로 달섭씨는 작심을 했다.

코로나 예방과 면역력을 길러 준다는 새콤한 레몬 즙을 혀를 내 둘려 가며 마시고 김치 냉장고 안에서 수년 묵은 폭삭 익은 쉰 김치를 찾아 콧구멍을 틀어막고 눈을 찔끔 감은 채 들어 마셨다. 뱃속이 요동을 쳤으나 달섭씨는 코로나를 이겨내는 데에 이런 고통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생각이나 행동이 어린애 같다는 말이 달섭씨를 두고 하는 말이 틀림없었다.

봉수가 카톡으로 코로나 예방에 좋다는 정보를 알려 왔다. 짙은 자주색 생 양파를 반쯤 잘라 숙소에 놔두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코로나 및 독감 바이러스를 빨아 당기는 효력이 있다나…

이 소식을 들은 달섭씨는 아침 일찍 슈퍼에 가서 자주색 생 양파를 구해 집안 구석구석에 놓고 실에 꿰어 매달아 놓기도 했다. 집안에는 때 아닌 양파 냄새가 진동 했으나 춘자씨는 드디어 남편이 하나님을 맞이하는 문이 열린 것에 감동을 받아 아무 군소리가 없었다.

격리 기간 1주일이 지났을 때 다시 아침 일찍 봉수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성님!! 별일 없지라”

“이 사람아! 나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갔는가 확인 하려 전화 했는가”

“성님도…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한다요. 그건 그렇고, 성님! 춤선생 날라리 박기수가 죽은 것 알고 있는가요. 아마 코로나에 걸려 대학 병원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라.”

“무엇이 어째, 기수가 죽었어”

봉수의 말에 달섭씨는 화들짝 놀랬다. 재독 동포사회에 한때 화제의 인물로 등장한 박기수. 헌칠한 키에 귀공자 타입의 박기수는 사교춤의 대가였다.

1955년 한국 상류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의 동생이라고 자처하는 그는 유엔부대 아줌마들 모임에서 제비 오라버니로 많은 염문을 뿌렸고 송사에 휘말려 비스바덴 헤센주 교도소에서 2년 실형을 살고 나온 난봉꾼에 잡놈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여자들 세상에서 영원히 군림 할 줄 알았던 그도 칠순의 나이를 속일 수 없었고 코로나 사태를 비껴 갈수 없었던 것이다.

역시 사망원인이 코로나19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저질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장례까지 마쳤다고 했다. 설령 사망 원인이 코로나로 판명이 나와도 모두 쉬쉬하고 다들 사망 원인을 숨겼다. 민감한 현실이라 확인 할 수 없는 뒷말만 무성했다.

박기수와 달섭씨 사이에는 남다른 사연이 많았다. 박기수는 파독 광부가 아니고 중동 건설 붐을 틈타 독일에 안주한 것으로 알려 졌으나 그의 자세한 과거와 신상은 분명치 않았다. 헌칠한 키에 매너가 좋고 귀공자 타입의 박기수는 한인 사회뿐 아니라 유엔부대 아줌마들 세상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그의 품에 안겨 블루스 스텝을 밟은 여성치고 그를 등진 여자가 거의 없었다. 사뿐사뿐 날렵하니 파트너를 가볍게 리드하는 그의 춤 동작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이처럼 인기가 대단 했던 박기수가 달섭씨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새끼마냥 기를 못 폈다.

그 이유는…

1970년대 인기 가수 김추자가 부른 <거짓 말이야!>가 유신시대를 빙자한 가요로 방송심의에서 금지 가요로 판정 중도에서 인기가 하락 했던 시절, 인기가수 김추자와 안개로 인기 상승을 했던 정훈희. 인순이등 유명 가수의 안무를 직접 지도했고 매니저로 활약했다고 허풍을 치며 동포사회에서 유명인 행세를 하던 그가 그 당시 국내 주간지 연예부기자로 유명가수들의 계보와 신상을 상세히 알고 있는 달섭씨한테 그만 덜미를 잡힌 것이다.

지닌 것 없이 맨 몸으로 독일 땅을 찾아 먹고 살기 위해 사교춤 선생으로 수많은 파문을 몰고 왔던 박기수의 정체를 달섭씨는 함구했다.

한번만 눈을 감아 달라는 박기수의 간청에 달섭씨는 모른 척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 인연으로 박기수는 달섭씨를 친형님 못지않게 따랐으며 술을 좋아 하는 달섭씨가 술친구와 어울려 술판을 벌릴 때 슬그머니 뒷전에서 술값을 계산해 주는가 하며 달섭씨 호주머니에 돈 봉투를 찔러 주는 등 달섭씨의 체면을 크게 세워 주던 박기수였다. 그러나 유엔군 아줌마들이 남편 따라 본국으로 떠나고 복고풍 춤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그의 인기가 쇠퇴 할 무렵 그는 여행 가이드와 골프 도박을 주선하는 등 주목인물이 된 뒤로 달섭씨와 연락이 뜸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그의 근황을 전혀 모르고 지내다 봉수를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에 감염 중증 환자로 대학병원 격리병동에 수용되어 쓸쓸히 이 세상을 하직 했을 기수를 생각하니 달섭씨는 망연자실했다.

달섭씨 자신도 언제 어느 때 자신을 덮칠 줄 모르는 죽음의 코로나 공포를 벗어 날수 없었다. 병구도 죽고 기수도 이 세상을 떠나고, 다음 차례는…. 불길한 생각을 하며 바짝바짝 피가 마르는 듯한 불안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차라리 술이나 마시고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술친구 없이 혼자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술이란 상대가 서로 권커니 잣거니 분위기에 따라 술이 땅기고 흥이 나는데 외로움을 잊기 위해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스스로 독약을 마시는 것 마냥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달섭씨 역시 코로나 때문에 내키지 않은 각방을 사용하고 즐겨 하는 술도 마시지 못하고 외출도 못하는 갑갑한 세상을 살고 있는 자신한테도 멀지 않아 불행한 일이 닥쳐오리라 생각하니 삶에 대한 의욕도 점점 멀어지고 눈만 감으면 악몽에 시달렸다. 헌칠했던 기수의 모습은 간곳없고 피골이 상접한 미라 같은 기수가 달섭이 형님! 하며 그 앞에 나타나는 꿈을 꾸고 나면 온 몸이 물에 젖은 듯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밤이 두렵고 어둠이 두려웠다. 불안과 죽음의 공포가 서서히 자신을 향해 한 발 두발 다가오는 망상 속에 빠져 가고 있을 즈음 때마침 커튼사이로 레이저 불빛 같은 강력한 햇살이 방안을 환하게 밝혔다. 구름 사이로 가려진 해가 석양을 앞두고 잠깐 얼굴을 내민 그 햇빛이 길 건너 게오르기 슐레 2층 창에 반사되어 어둑어둑한 달섭씨 침실을 환하게 밝혀 준 것이다.

순간, 기억의 뇌 세포가 하나 둘 죽어 가던 달섭씨 머릿속에 전광석화처럼 스쳐 가는 장면이 나타났다. 옛날 서울 어느 극장 시사회에 초대되어 보았던 십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구세주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 하나님 등 뒤에 나타난 강력한 빛이 달섭씨 눈에 나타난 것이다. 몸이 허약하고 심신이 탈진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환각 증상일까. 마침 잠시 멈췄던 재채기가 다시 튀어 나왔다. 심한 재채기에 충격을 받은 청각이 마비되어 한 순간 귀 속이 멍한 정적이 감돌았다.

달섭씨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춘자씨가 침대 옆에 놓고 간 따끈한 생강차를 한 모금을 마셨다.

막혔던 귓속이 뻥 뚫리고 조용했던 정적이 사라지고 어느 곳에서 흘러들어 오는지 은은한 노래 소리와 멜로디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알듯 말듯하다 불현듯 떠 오른 노랫말과 멜로디는 어느 해인가 성탄절 날 유명 호텔 디너쇼에서 애절한 가락으로 심금을 울려 주었던 가수 심수봉이 부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Higher Ground> 찬송가였다. 그 찬송가는 달섭씨를 용수철에서 튕겨 내듯 침대에서 불뚝 일어나게 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구쳐 올랐는지 불뚝 일어난 달섭씨는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슬며시 침실을 빠져 나와 찬송가가 들리는 안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 틈 사이로 찬송가를 펴 놓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춘자씨가 눈을 감고 두 손바닥을 모은 채 통성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달섭씨 눈에 확 들어 왔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지금 길을 잃고 황야를 헤매고 있는 저 늙고 병든 양이 하나님 품에 안겨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간, 달섭씨 몸에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기가 전신을 감싸고돌았다. 그리고 조금 전 자신이 떠 올렸던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보았던 그 강력한 햇빛이

거실 창 틈 사이로 다시금 눈부시게 그의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달섭씨 몸에 일어난 그 열기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어난 병적인 열기가 아니었다.

그 열기와 강력한 햇빛은 달섭씨가 일흔 여덟 해 살아 오는 동안 처음 경험한 신비한 순간이었다.

1200호 14-15면, 20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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