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통을 고수해 온, 타임머신이 멈춘 것 같은 아름다운 중세도시

뉘른베르크(Nuernberg) 재독화가 황수잔

예술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 뉘른베르크의 전경

몇 세기를 거치면서 오랜 유럽의 전통을 고수해온 예술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중세도시, 남부독일에 뉘른베르크 고성이 있다. 구시가 한가운데에 견고한 고딕건축으로 우뚝 선 교회 앞에는 아름답게 장식된 분수가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몇 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동방무역 중심을 이루었던 부를 누렸던 유명한 장터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소금, 곡물, 양념, 꿀, 와인 등 각가지 진기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이곳은 세계 각처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렸으며 인근 5Km거리에 건축된 화려한 주택가에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인근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던 장터

시민들의 생활은 풍요로웠다. 부와 번영을 최고로 누렸던 이시기를 Richard Wagner의 시대라고한 다. 로맨틱한 보석상자라는 뜻이다. 당시 이곳은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중세도시로 완벽하게 지니고 있었다. 높은 언덕위에는 1050년 Heinrich 3세로 시작해서 1571년까지 카이저들이 살았던 웅장한 카이저성(Kaiserburg)이 있다.

부와 권력을 함께 누렸던, 성곽을 감싸고 있는 숲의 전경이 붉은 벽돌과 뾰족한 탑들이 주는 느낌은 낭만의 극치이다. 당시 Barbarossa카이저는 전 유럽의 반이 그의 영지였다고 하니 그 권력과 명성은 전 유럽을 거의 차지했던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을 연상케 한다.

카이저성에서 조금 내려오면 뉘른베르크의 자랑이자 보석인 천재화가 듀러(Albrecht Duerer 1471-1528)박물관이 있다. 듀러거리, 듀러호텔, 듀러선물집 이곳은 온통 듀러거리다. 마치 천재화가 ‘고흐’가 살았던 남프랑스의 알(Arles)거리처럼 화가의 옛 발자취로 가득하다.

듀러가 죽은 지 몇 세기가 지나서도 그가 남긴 살아 숨 쉬는 예술품들을 보려고 끊임없는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예술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기도의손’은 그의 유명한 동인쇄 판화작품이다.

구시가지는 하나의 문화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 문화, 예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뉘른베르크는 1050년부터 도시로 인가(Urkunde) 되었다. 가는 곳마다 전통

독일집(Fachwerk)들이 있고 자갈길 오르막에 골목길들이 있다. 당시 사람들은 말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녔던 아름다운 정감있는 도시였다. 당시 히틀러는 아름다운 이 도시를 대단히 좋아해서 곳곳에 중요한 공공건물을 건축했다.

이곳은 유럽의 중요한 중심도시가 되었다. 1933년 중요한 독일민족사회주의 국회정당회의(Nationalsozialismus Reichsparteitage)를 열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도시가 거의(90%)파괴되었다. 그 후 다시 복구하여 지금도 중세의 향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00년 950주년 기념행사에 시민들이 시민광장을 가득 메웠다. 현재는 모던하고 활동적인 옛것과 공존하는 인구 50만명이 살고 있는 대도시이다.

시립박물관에는 당시 풍요로웠던 아름다운 뉘른베르크성을 4사람이 4년을 걸쳐 완공한 조형품에서 옛 도시와 고성문화를 볼 수 있다.

렙쿠켄(Lebkuchen)이야기

뉘른베르크 특산물, 렙쿠켄

크리스마스시장 으로 유명한 뉘른베르크(Nuernberg) 특산물인 렙쿠켄(Lebkuchen)은 전통적인 다양한 향과 맛이 일품인 고품격으로 유명하다. 12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뉘른베르크(독일 Bayern주의 도시이름)의 렙쿠켄 제조업자들은 무척 바쁘다. 8월부터 독일 곳곳에서 다량으로 주문하기 때문에 뉘른베르크 2천여명의 제조업자들은 매분마다 렙쿠켄을 구워내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종류도 다양하고 한번 맛보면 다시 먹고 싶을만큼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 인기는 대단하다.

렙쿡컨은 오래전 바이에른 (Bayern)주 프랑켄지방에서 한 수도사가 성만찬에 사용되는 과자위에 후추를 넣은 반죽을 조금씩 떼어 놓은 다음 오븐에 구워낸 것이 렙쿠켄이 시초였다. 그 후 맛을 내기 위해서 연구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다. (꿀, 계피, 설탕, 호두, 생강 등 다양한 향료를 첨가했다).

1395년부터 렙쿠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바이에른(Bayern)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특별한 쿠켄이 되었다. 그러나 만드는 법은 비밀이기 때문에 일반가정에서는 만들 수가 없어서 렙쿠켄은 대단히 귀했다.

1643년 뉘른베르크시에서 공인된 14명의 렙쿠켄 명인(Meister)들이 나왔다. 렙쿡컨은 명인들만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대단한 존경을 받았으며, 그들의 직업을 부러워했다.

당시 렙쿠켄 명인이 되기는 무척 어려웠다. 일반인이 배우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가로,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여러 가지 귀한 향을 넣어서 오랜 시간을 구워내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쉬운 방법으로는 명인의 딸과 결혼해서 장인에게 배우는 것인데 그것도 간단하지 않다. 딸이 추녀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1645년부터 렙쿠켄 레시피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엄한 회원 회칙 때문에 사람들은 공인된 명인의 Backofen(빵굽는 금속판) 에서 구워낸 쿠켄만 살 수 있었다. 렙쿠켄 이름인 렙(Leb)은 라틴어’Libum’에서 나온 Fladen(둥글납작한 과자)이다.

한 수도사가 처음으로 만든 렙쿠켄

당시 뉘른베르크는 렙쿠켄을 만드는데 적격이었다. 중세기의 뉘른베르크는 무역 중심지로 세계 곳곳에서 밀집된 진귀한 조미료, 향료, 양념 등을 판매하는 시장(Gewuerzstrassen) 이였다. 그중에서도 쿠켄에 제일 필요한 구하기 힘든 동인도 설탕(Ostindischer Kolonialzucker)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주위가 온통 울창한 숲으로 덮인 뉘른베르크에서 꽃이 한창일 때는 수많은 양봉가(야생꿀벌집)에서 쿠켄을 만드는데 필요한 꿀을 다량으로 구입할 수가 있었다. 1808년부터 엘리센렙쿠켄 (Elisenlebkuchen)을 만들었다. 이 쿠켄은 렙쿠켄 종류 중 제일 고가이고 고품격인 맛이 일품이다. 엘리센 이름은 렙쿠켄 명인(Meister)들의 딸 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의 이름이다.

1867년부터 자동화된 시설로 렙쿠켄을 다량으로 굽기 시작했다. 다양한 향과 맛이 일품인 렙쿠켄은 오랜 세월 변함없이 언제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가격은 무척 고가이지만 지금도 초기처럼 손으로 정성된 수고로 만들어낸 정통적 렙쿠켄의 맛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종류도 다양한 렙쿠켄을 담고 있는 우아하고 품격있는 쿠켄 통들을 이용해서 실내 장식용품으로 수집하는 수집가들이 많다.

렙쿠켄에 들어있는 계피와 호두는 찬바람이 부는 추운겨울에 어울리는 견과이다. 서인도 지방에서 나는 일종의 과수(식물)인 계피는 풍부한 향이 들어있다. 계피의 풍부한 향은 춥고 외롭고 피곤할 때 따뜻하고 포근함을 준다. 특히 Ceylon(인도양에 있음)의 계피는 신비한 향이 진하고 향기로워서 특산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호두는 비타민 E가 풍부해서 콜레스테롤에 좋으면 호두에 들어있는 기름은 겨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긴긴 겨울밤 촛불을 켜고 다정한 사람끼리 마주앉아 그릴와인과 함께 맛보는, 은은하게 향이 있는 렙쿠켄의 맛은 무척 낭만적이다.

1420년 건축된 3층으로 된 목재건물, 옛 시대의 살아 숨쉬는 박물관(듀러하우스)

듀러가 그린 박물관 (듀러 하우스)

1509년 듀러는 독일 전통집(Fachwerk)을 구입했다. 당시 이곳은 Zisselgasse였는데 듀러가 살면서 Albrecht-Duererstrasse가 되었다. 이집에서 부인 Agnes Duerer와 어머니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 1528년 듀러가 죽고, 1539년 부인이 죽자 듀러하우스는 예술가의 집으로 빛을 잃었다. 종이제조자, 철사제조자, 가구사 등 주인이 수시로 바꿨다.

19세기 초에 사람들은 과거 낭만적이었던 옛 시대의 살아 숨 쉬는 듀러의 예술품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1826년 뉘른베르크시에서 듀러하우스를 샀다. 처음에는 예술가들이 모임의 광장으로 사용하다가 1871년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때 파괴되었으나 다시 재건하였고, 1949년부터 박물관이 되었다.

듀러 탄생 500주년 기념해인 1970-71년 박물관 1층에 초현대적인 비디오영상 시네마를 설치했다. 브에노스아이레스에서 Video und TV ’96’으로 문화단체인 새로운 아트컬렉션, 멀티환상기술로 최고의 상을 받았다. 비디오영상 시네마에서 15분간 상영하는 ‘듀러의 생애와 작품’ 영화를 볼 수 있다.

옛주방(Alte Kueche)

옛주방 (Alte Kueche)

1988년 뉘른베르크 실내 장식가이자 미술대학교수인 Friedrich Wanderer에 의해 영화관 곁에 당시 사용했던 옛 주방을 19세기 전통적인 르네상스 스타일로 우아하게 설치했다. 부인이 사용했던 역사적(1500년)인 부뚜막이 옛 그대로 있고, 위에는 그녀가 사용했던 주방기구들이 걸려있다. 중세기 요리방법을 쓴 부인 Agnes Duerer의 요리책이 당시 그대로 놓여있다.

주방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듀러가 중환자로 생의 마지막을 보낼 때, 계단을 내려가서 사용 하는 화장실이 무척 불편했다. 그는 주방에 비밀로 화장실을 설치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에서는 그에게 건축법에 위반했으므로 벌금을 지불하도록 했다. 그러나 듀러는 뉘른베르크 시민들의 존경하는 예술가인 자랑거리자 보석이므로 그대로 묵인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유명한가를 증명해주는 이야기이다.

2층에는 색을 혼합하는 액자를 만드는, 당시 듀러의 모든 인쇄과정을 볼 수 있는 작업실이다. 3층 갤러리에서 600년 이상이나 오래된 그가 그린, 인쇄된 예술작품들을 볼 수 있다.

문화와 역사탐방을 하다보면 3000년전 그리스의 조각, 2000년전 로마의 벽화, 중세기 문화 등 오래전의 건축물, 역사 예술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곳에는 침략했던 적국이 건축한 건물들도 있고 예술품들도 있다. 그들은 진실 그대로 소중한 산 역사를 보여주는 그곳이 관광지가 된다.

유럽인들은 옛 것을 무척 사랑한다. 과거의 흔적을 찾기 위해, 보존하기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한다. 그들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과거 역사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박물관을 나왔다. 비가 내린다. 저녁이 되어 밖은 어둡고 젖은 나뭇잎이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는 젖은 길을 걸어 우리들은 그 옛날 유럽과 동방의 상인들이 거쳐 갔던 요충지, 듀러의 예술품들을 주문했던 부유한 상인들이 만났던 그 장터, 우물곁에 유명하다는 투박한 목재로 된 정통적인 바이에른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구운 소세지집(Bratwursthaeusle), 식당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장작불에서 굽는 구수한 소시지 냄새와 연기로 가득했다. 손님들로 발들일 틈없이 북적거렸다. 식당 전체분위기가 편안하고 가족적이다. 종업원들은 친절하며 모두 바이에른 주의 복장을 하고 분주하게 다니고 있었다.

이곳의 메뉴는 사와그라우트 (Sauerkraut), 뉘른베르크 구운 소시지(Nuernberger Bratwuerstchen)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장작불에서 구운 구수한 소시지와 사우어그라우트의 새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서민적인 식당이다. 우리들도 정통적인 메뉴를 맛보면서 그 옛날 중세기의 뉘른베르크 분위기에 젖어보았다.

1203호 30면, 2021년 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