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처시하

황만섭

대한민국헌법 제1조 2항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집의 권력은 어디에서부터 나온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걸 굳지 따질 것도 없이 그냥 마냥 집사람으로부터 무한정 쏟아져 나온다. 나는 가끔씩 쓸만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한 순간에 감옥으로 가야 할 만큼 극악무도한 나쁜 인간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결정과 판단은 오직 집사람만이 할 수 있다.

집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은 어마어마하다. 흔히들 세계적인 독재자나 우리나라의 역대독재자들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새 발에 피다. 그 정도 실력가지고는 독재자의 대열에 낄 수가 없다. 지구는 항상 집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돌고 있다.

국가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기관이 있어 그 역할을 분담하고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권력을 분산하지만, 우리 집사람은 그냥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다. 모든 업무를 관장하면서도 지칠 줄을 모른다. 집사람은 검사이기도 하고 판사의 역할도 맡았다가 어떨 때는 경찰청장까지 겸임한다. 집사람은 두뇌회전이 빠르고 집념이 강해 업무의 과중을 느끼지 못한다. 행정 사법 입법 등 3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그녀의 눈 밖에 나면 인생 끝이다.

하루하루를 명심하면서 눈치껏 살아야 삶이 계속되고 일상이 편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또 다른 나의 가장 큰 약점은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대답은 “집사람이다.” 한 결같이 정해진 이 대답은 영원불변할 것이다. 집사람은 또 내가 그렇게 대답할 것이라는 걸 귀신같이 알고 있다. 나는 지금 부처님 손아귀에서 놀고 있는 손오공에 불과하다.

가만히 우리들이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회상해 보면 집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안정된 토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만큼 그녀의 수고와 땀이 곳곳에 배여 있다. A부터 Z까지 만사가 그녀의 아이디어와 수고를 거치면서 무에서 유가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세월을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으니, 지금은 무조건 만사에 고마워만 하면서 살아야 할 터 인데,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게 고분고분하고 만만할 수만은 없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늘 저항하고 반항한다.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악처 때문에 철학자가 되었다는 소크라테스 이야기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싸우면서 살았다는 톨스토이 부부의 이야기도 확인불가능 하지만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집사람의 거친 손은 두 애를 키우면서 병원근무와 가사일, 식품점, 여행사 일을 하면서 생겨난 훈장(거친 손)이다. 많은 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항상 웃었고 눈빛은 샛별같이 빛났으며 지칠 줄을 모르는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우리 집 형편은 그녀의 아이디어와 노력 그리고 수고를 통해서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나온 아이디어는 노하우가 되어 지금의 힘(권력)으로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과 함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도 다 힘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간혹 남자들도 여자들보다 가사노동을 대단히 잘하는 유능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아니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다소 있었겠지만 항상 엉성했고, 나보다 생각이 빠르고 아이디어가 한 수 위였던 집사람에게 밀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결국 집사람은 유능한 사람의 자리에까지 올랐을 것이고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추락하게 되었을 것이다.

힘없는 사람은 자연히 발언권이 없고 무능한 사람 대접을 받으면서 뒷전으로 밀려나는 게 세상이치다. 내가 그렇다. 집사람의 수고와 헌신은 업적이 되어 훈장을 달았고, 나는 쩔쩔매는 처지로 추락했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에게 생긴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집사람이 챙겨주지 않으면 하루도 혼자서 못 산다는 것이다. 집사람은 또 그 점을 귀신같이 꿰뚫어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 손아귀에서 놀고 있는 손오공에 불과하다.

집사람은 톨스토이가 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책을 옆에 놓고 시도 때도 없이 읽는다. 그 책을 몇 페이지라도 읽은 날은 그녀의 마음씨가 비단같이 곱고 순하다. 품성이 얼마나 올곧고 정숙한지 거의 신사임당에 가깝다. 그러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대략 반나절 정도 지나면 어김없이 독재자의 자리로 되돌아 와 있다.

한번 거머쥔 권력을 순순히 내놓을 사람은 없다. 그렇다. 독재자를 몰아낼 방법은 촛불혁명밖에 없다. 그러나 나 혼자 촛불을 들어보았자 입김만 세게 불어도 금방 꺼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스스로 막강한 권한을 내려놓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권력의 맛이 얼마나 달콤하고 좋은데, 그걸 순순히 내려놓겠는가?

우리주변에는 항상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문제들은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들로 충돌한다. 그런 문제들을 놓고 서로 갑론을박 하다 보면 마찰이 생긴다. 예를 들면 “코로나 핑계만 대지 말고 산보라도 다녀오라”고 하면 나의 대답은 “오늘은 쉬고 내일 가겠다”고 하면서부터 언쟁이 시작된다. 때로는 “왜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았느냐? 기왕 손을 대면서 삐딱하게 놓아 보기에도 불안하고 혼란스럽지 않느냐?”라는 문제로 시비가 시작된다.

우리생활에 다툴 일은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런 사소한 논쟁은 가끔씩 하늘까지 치솟는 말다툼으로 번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성이 어떻고, 품성이 어떻고가 필요 없다. 평소에 인류의 4대 성인의 가르침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고상하게 폼 잡고 이야기했던 모습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이성이 헝클어지면서 질서도 교양도 같이 소멸한다. 결국은 한줌도 안 되는 작은 일로 격앙된 언성이 오고 가는 어리석음을 연출하면서 사는 게 우리들 인생이 아닌가 싶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를 스쳤다. 내 나이도 적지 않은데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나의 어리석은 인생을 뉘우친다면 너무 늦고 후회하다가 죽게 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갚아도 집사람이 수고했던 고마움의 절반도 못 갚고 죽을 것이 분명한데 이렇게 계속 ‘엇박자’만 내면서 살 수는 없다는 깨우침이었다.

“아니야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고 그렇다. 내가 바뀌자. 나를 바꾸자. 그 동안에 집사람이 했던 수고와 고마움을 갚는 일로 남은 생을 채우자. “이제 내 나이가 칠십 중반을 넘어 팔십을 바라보고 있는데, 콩이야 팥이야 따지고만 산다면 내 인생이 너무 어리석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몰아세웠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주장과 고집을 접고, 알리는 수준에서 짧게 언급(반대)한 뒤, 바로 두 손 번쩍 들고 백기투항하자. 고분고분 말 잘 듣고, 동작 빠르게 방싯방싯 웃으면서 착한 아이처럼 행동하자. 집사람을 여왕처럼 모실 것이며, 매일매일 그녀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바라보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일상은 황혼신혼생활처럼 아기자기 해졌고, 같이 외출하는 날은 무조건 황혼신혼여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더니 실제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만만세 황만섭이 만세다! 이 정도면 나도 “노벨 남편상”감이 충분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만약 “노벨 남편상이 제정만 된다면 제1회 ‘노벨 남편상’은 틀림없이 내 몫이 될 것이다” 혹 내 글을 읽고 엄처시하에서 고생하시는 남편들 중 몇 분이라도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1204호 22면, 2021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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