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의 ‘비웃음‘과 자본의 ‘함박웃음‘

주경민 (칼스루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는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대구에서 2월달 한 주만에 800명 이상 대거 전염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마치 KOREA가 Corona라도 되기라도 하듯 비웃음거리 대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이내 자신을 조롱하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고, 전 유럽인의 자존심을 형편없이 짓밟아버린지 오래다.

돌이켜보면, 우한과 대구란 지역에서 “코로나19“와 처음 마주했던 중국과 한국의 방역당국은 그나마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태리 북부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코로나19”에 대한 미온적인 방역 대책은 전 유럽은 물론 전 세계로 “코로나19”가 확산되게 했으며 더 나아가 이에 따른 각 정부의 자만심과 자존심의 결과물이 바로 오늘날 독일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에 안긴 “코로나19“ 성적표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럽인이면 누구나 즐겨보던 만화 시리즈 “아스트릭스와 오벨릭스 (Astrix & Obelix)”에서 배운 지혜를 전혀 “코로나19” 방역에 이용하지 못했다. 시리즈에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드루이드교 사제인 파노라믹스가 만드는 ‘마법 물약’을 꾀돌이 전사 아스트릭스가 마시면 괴력이 생기고 어린 시절 물약 통에 빠져 평생 힘이 센 오벨릭스와 함께 특정 마을에 나타난 로마군을 초토화시키는 이야기가 그 주제이다.

지난 7월에 일찌감치 이 모델을 제시한 것이 바로 위의 그래픽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한과 대구는 이 모델을 적용했으나 유럽은 초기 방역에 실패했고 그 이후에도 작년 10월 중순까지 충분한 기회가 있었지만, “하루 2천명 정도 신규 확진자는 현재 의료시스템으로 선방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결국 이런 지혜와 기회를 모두 놓친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에 그 어떤 것도 ‘마법 물약‘이 될 수는 없지만, 굳이 예로 들자면, 한국과 중국이 대처했듯이 즉각적이고도 철저한 방역과 마스크 착용, 진단 테스트를 통한 코로나 테스트는 물론 백신 접종으로 애초에 제압하는 일이 곧 ‘마법 물약’일 것이다.

이 모델을 체코, 오스트리아 그리고 독일 튀링엔 주정부가 대충이나마 실험하다 그쳤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정치와 자본이 결탁해서 “함박웃음”을 택한 결과가 곧 매일 2-3만 명 신규 확진자로 나타났으며 여전히 “코로나19”에 방역 당국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초 한 달만 봉쇄한 후, 성탄절을 즐겁게 보내자던 메르켈 정부의 ‘일장춘몽’은 3월 7일까지 연장도 모자라 여름까지 연장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상 인류가 “코로나19”와 더불어 산지도 어느덧 일 년이 지났으며 “코로나19”에 대한 기본 지식이 늘어난 것 이외는 현대 과학과 의료 시스템은 힘없이 무릎을 꿇었고 언제쯤 끝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 사이에 “코로나19”는 다양한 변이를 거쳐 영국과 남아공 형 “코로나19”는 훨씬 더 막강한 전염성으로 ‘비웃음’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앞에 건강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인문학자로서 마스크, 진단 키트와 백신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살펴보고 각 개인이 어떻게 “코로나 19”를 극복해야 할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마스크의 선택과 착용

한국서 지난해 있었던 마스크 대란처럼, 독일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게 전개되었다. 그간 한국처럼 중국산 수입에 의존해왔던 독일도 작년에 대량으로 마스크를 구매하고 비축했지만 검수 결과 40% 이상이 불량 마스크였던 소위 ‘마스크 스캔들’이 있었다. 그 이후 정부가 장당 4유로에 구입조건으로 독일 자체 생산을 독려했고, 현재 100% 독일산 마스크도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나 상점에서 무슨 마스크든지 착용을 의무화하던 것을 각 주정부가 올 1월 말부터 유럽 기술 수준이 정하는 기준의 OP- 나 FFP2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그런데, 지난해 ‘마스크스캔들’로 흔적 없이 사라진 수 천만 장의 중국산 마스크가 다시 소리 없이 등장했고 각 개인을 “코로나19” 위협 앞에 노출시키고 있다.

판매가를 기준으로 마스크를 선택하는 소비자의 입장으로서는 주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버젓이 얼굴을 내미는 상술 앞에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가능하면 양질의 마스크를 선택해 착용하는 방법 이외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있는 KF94 마스크 위에 독일이 의무로 정한 OP마스크를 겹으로 착용하는 방법이 듣보잡 ‘FFP2마스크’로부터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자본과 정치가 보이는 “함박웃음”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항원, 항체와 PCR 진단키트 임상 적용

현재 여행자들에게 기본적으로 “PCR테스트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진단키트를 선두적으로 개발해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으며 각국 임상에 적용되었다. 그 사이에 중국을 위시한 각국에서 다양한 진단 테스트를 출시했고 한국산 진단 키트도 각국에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다양하게 임상에 투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결과의 대표적인 민낯이 지난해 10월 2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내용은 “프랑스에서 출장을 위해 입국한 단체 입국자 31명 중 14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과 생활치료시설에 격리됐다”는 기사이다. 이들 31명 모두는 예외 없이 프랑스에서 발급한 소위 “PCR 테스트 음성 확인서” 소지자들이었다.

왜 이렇게 50% 가까이 잘못된 진단 결과가 일어난 것일까?!

이것은 바로 “코로나 19”의 자체 특성 때문이다. “코로나19”의 무증상 보균자, 체내 항체나 항원 생성 내지 반응 시기, 진단 키트의 정확성과 오진단의 가능성 등에 대해 여러 무지가 만든 결과이다.

독일을 예로 들면 한국산 키트가 독일산으로 포장만 바꾼 채로 임상에 적용되는 실정이지만, 이 분야도 “코로나 19”의 ‘비웃음’과 자본의 ‘함박웃음’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슈피겔이나 독일 일간지들이 이미 보도한 사실이지만 “PCR 테스트의 결과 자체가 25% 이상의 오류를 낳는다”는 미국 홉킨스대학 연구 보고서가 그것이다. 25%가 아닌 50% 가까이 오류가 인천국제공항에서 실제 현실에서 나타난 것이다.

소위 임신, 당뇨 그리고 코로나 진단키트 성능 판단의 기준으로 민감도 (Sensitivität), 특이도(Spezifität), 진단 시간과 비용 등이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특성상 중요한 것은 민감도와 특이도를 임상에서 어떻게 중요시하는가에 따라 ‘코로나19’의 확산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소위 양성으로 진단된 수와 그중에서 음성으로 확인된 숫자를 뺀 수치의 백분율인 민감도만을 중요시하여 PCR- 항원과 항체 진단키트를 판단하고 있으며 각 정부 입찰 구매에서도 이 기준을 최고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음성으로 판정되어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는 보균자에 대해 무관심이자 무방비인 상태이다.

“코로나19”의 특성상 양성 진단 확인의 수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는 항원이든 PCR테스트 진단을 통해 양성인 사람은 일단 격리되거나 입원해 계속 다른 테스트나 치료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음성이 정말 양성이 아닌 음성인지에 대한 결과치인 진단 테스트의 “특이도 (Spezifität)”를 독일 당국이 전혀 중요치 않게 여기는 결과가 바로 현재 매일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는 엄청난 신규 확진자 수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겠는?!

물론 관련 학자나 의료진이 이 사실을 결코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도 행여 자본의 “함박웃음” 뒤에 감추인 특정 키트의 임상 적용이 낳는 결과이며 이 결과를 그냥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 의심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독일 정부가 내린 “봉쇄조치”가 3월 7일까지가 아니라 1월 초까지로도 족했을 것이다.

현 독일 의료시스템, 과학의 수준으로 4달 이상을 봉쇄의 연장만으로 일관하는 사실은 이성적, 학문적으로 설명이 거의 불가한 일이다.

코로나 백신 진실과 백신용 주사기

전 세계적으로 성탄절 전후로 접종을 시작한 “코로나19” 백신은 소위 “3상실험”을 거치지 않고 긴급 허가받은 백신이며, 실제 접종을 통해 “3상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구에서 개발한 화이자 제품 등이 스스로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해, 러시아산 ‘스푸트니크 V’ 이나 중국산 ‘시노백’을 부정적으로만 비난해 왔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이들 백신의 장점을 갑자기 언급하는 것을 보면, 결국 백신 업계의 밥그릇 나눠먹기가 끝나고 ‘도토리 키재기’식 논리를 나열하는 듯하다.

“코로나19” 방역의 일환으로 백신을 맞아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한결같이 “3상실험‘을 거치지 않은 불량 백신이며, 그 누구도 부작용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백신을 맞아야 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와 이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른 독감 바이러스처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엄격한 현실이다. 백신을 맞고 위험을 감내하면 대량 감염사태가 줄 것이다. 하지만, 독감 예방주사처럼 매년 맞아야 하며 마스크를 결코 벗어던질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대한 학계 연구 결과와 보고들은 이미 즐비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었어도, 체내에 생성된 항체가 석달쯤 지나면 현저히 감소되던지, 백신을 접종한 사람도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체내 항체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지난 주말에 미국에서 두번 백신 접종을 끝낸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기사도 나왔다. 뭐 그리 새로운 일은 전혀 아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해서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것쯤은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기에 말이다.

지난주에 백신과 관련해 정치와 자본의 “함박웃음”을 다시 접하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우선적으로 접한 기사는 “일본 후생성이 백신용 주사기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1200만명 분 백신을 그냥 내버려야 한다”는 기사이다. 작년 12월 말경 화이자사가 병당 5인용분을 여섯 명에게 접종할 수 있도록 특수 주사기가 필요하다고 통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해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더욱 놀란 사실은 일본이 이런 주사기를 당장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 미국에서 날아온 이메일은 “독일 브라운사 1ml용 주사기 1억개를 급하게 구한다”며 문의해 온 일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브라운사가 매일 3교대로 8백만개 주사기를 생산해 내지만, 2022년 3월 이전에는 이 주사기를 공급할 수가 없다고 한다. 주문 쇄도에 마냥 행복해야 할 브라운사 측에서 백신이 “코로나19” 방역에 구세주나 되는 것처럼 떠드는 만큼이나 필요한 주사기도 각국 정부에서 미리 주문하고 생산하도록 준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 세계에서 백신용 주사기로 난리법석하고 있는 것이다.

백신량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주사기가 확보가 되지 않아 백신 접종이 지지부진하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또다시 “코로나19”의 ‘비웃음’과 자본의 ‘함박웃음‘을 마주해야만 했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사는 지혜

이런 속사정들을 다 알 수 없는 일반인들은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정부를 비난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주사기 하나도 생산 못 하느냐?”는 불평에 여념 없다. 게다가 광신도에 가까운 일부 개신교인들은 당국의 방역정책과 방역법을 비웃으며 이웃사랑의 실천은커녕 “코로나19”의 친선대사 역을 자처하며 대면예배를 감행하며 코로나 확산에 여념이 없다.

아무리 종교의 자유를 앞세운다 해도 이것도 자본의 “함박웃음”의 일환이 아닌가?! 종교의 자유를 앞세우기 전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처음 사랑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국내 정치계는 당리당략만으로 “코로나19” 재난지원과 관련해 전체 지원과 선별 지원을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음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다. 재외국민으로서 이것이 마냥 달갑지 않은 것은 왜일까?!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부모 따라 방문 정도인 고국이지만 성년 되면 어김없이 “국방의무”를 요구한다면, 재외국민에게도 재난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국가의 책무가 아닐까?! 이에 대해 재독 공관이나 관련 당국은 해외 교민을 위해 단 한 번이라도 해결책을 모색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이 문제 또한 코로나의 “비웃음“ 내지 자본의 “함박웃음”에 맡겨둬야 하는 것일까?! 독일교민들도 대한민국 현재와 미래를 이어갈 엄연한 국민임을 상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결론적으로 그 어떤 마스크나 진단 키트 심지어 백신도 “코로나19”로부터 100% 완전히 보호해 줄 것은 없다. 심지어 “코로나 19“ 앞에 우왕좌왕하는 학계, 정치계와 의료계는 물론 이를 집행하는 정부조차도 각 개인을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해 줄 수 없다. 철저한 개인 위생과 방역수칙에 따라 생활하며 “코로나19”로부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일이 곧 가정과 속한 공동 사회와 국가를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으며 코로나의 ‘비웃음‘과 자본의 ‘함박웃음’을 마침내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1207호 14면, 2021년 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