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 와 코로나 비루스

류 현옥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여 나는 다시 그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자전거를 세워둔 정원의 헛간으로 가는 유일한 골목길이다 . 연두색으로 변해가는 랍스 들길을 달리기위해서다. 얼었던 땅에서 견디어 나온 유채뿌리에서 새싹이 나와 하루가 무섭게 자라고 있는 기다린 새봄이다.

재부르크의 들판은 여느 해와 다름없이 겨울 초 잎사귀가 짙은 녹색으로 변하면서 눈부신 유채꽃 꽃 장판을 펼 준비로 한창이다. 한 달 후면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어린 날 고향의 시골 에서는 초봄이면 연한 새잎사귀를 뜯어 와서 쌈을 싸먹었던 보드라운 겨울 초라 부른 채소를 이곳에서는 대량으로 심어 꽃씨에서 식용유를 짜낸다.

나는 사월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유채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몸과 마음을 둥둥 띠워 먼 고향산천을 눈앞에 그리며 날아가는 느낌을 즐겼다. 올해는 유독 코로나 비루스행패로 집안에 갇혀 있었던 터라 봄노래를 부르며 나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애타게 봄을 기다려온 터이다

자전거가 서있는 헛간으로 갈려면 옆집의 울타리와 그 집 앞 으로 난 좁은 길을 지나야한다. 몇 발자국 걸어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방음벽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왼쪽으로 끼고돌아 그 옆길을 몇 발짝 더 걸 어면 우리 집 정원 의 뒷문이 나온다.

벌써 십여 년을 그랬다. 때로는 하루에도 여러 번 지나가야하는 좁은 길이다. 길가의 선 두 집은 경계하는 울타리도 없이 나란히 섰는데 나는 그때 마다 남의마당을 지나가는 것 같아 불편했다. 특히나 두 번째 집 앞을 지날 때면 묵은 담배냄새를 피해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문이 열려있고 정리되지 않은 복도가 보이는 집안에서 마치 모퉁이술집 에서처럼 담배 냄새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정원 뒷문으로 들어가 세워둔 자전거를 끌어내어 밀고 다시 그길로 돌아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종종 중년의 여주인이 문 앞에 섰거나 등을 벽에 대고 서서 담배를 피우며 반갑게 인사를 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웃으며 답례를 하고 좋은날이 되라고 말하는 그녀 옆을 빨리 지나갔다. 헛간에서 자전거를 끌어내어 다시 그 길을 돌아 나올 때마다 그 여자가 거기에 서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새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넣어 흡연을 하는 그 여자를 다시 만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온 집을 싸고도는 묵은 담배냄새가 대신하여 후각신경을 자극했다. 다 큰아들이 같이 살고 있었는데 역시 골초다. 시집간 딸이 피부가 브라운 색인 예쁜 딸을 낳아 친정어머니 집에 돌아와서 같이 고 있었는데 역시 애 연가 이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여 미안한 마음까지 갖게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문 앞과 이 좁은 길을 나무울타리를 경계로 사는 우리옆집과는 오래전부터 냉전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애연가가족 이웃에 관심 없이 살 은지 십여 년이다. 도시계획으로 동시에 100세대의 정원집이 지어져 분양된 곳이라 구조가 비슷했기에 이집 뒤에도 정원이 있을 것인데 하필이면 문 앞에 나와 서서 담배를 피우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집집마다 입구에 자동차를 세울 수 있는 자리가 있고 빗물이 빠져나가게 네모 로 길게 파서 만든 시멘트 골이 있다. 모두 거기에 꽃을 심어 키웠고 어떤 집은 굵은 자갈을 채워 놓았다. 우리도 그곳에 자갈을 채워놓았는데 바람에 날려 온 잡초 씨가 자갈 사이에서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다.

몇 번이나 그곳에 난쟁이 꽃 채송화를 심을 가 생각했지만 실천을 못하고 있다. 그 옆에 지붕 덮인 베엠베산 얀의 오토바이가 비집고 서 있어 연약한 채송화 위를 지나갈 바퀴를 보면서 망설였다. 한번 지나가면 깔려죽을 것이고 부부불화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보다 꽃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오토바이를 움직이려다가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기우에서였다. 승용차한대 세울 수 있게 빠듯하게 만든 집 앞의 공간인데 유독 우리 집 앞에는 남편의 오토바이가 서있어 나의자전거를 정원의 헛간에 갖다 세워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잡초를 뽑아주기 위해 쪼그리고 앉을 때마다 담배꽁초가 자갈 사이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때는 두 세 개의 담배꽁초를 자갈과 잡초사이에 있는 것을 꼬챙이로 파내어 쓰레기통에 넣어야했는데 코로나 위기에 들어선 지난 일 년 사이에 꽁초의 양이 많아졌다는 것을 은연중에 확신하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는 양이웃집과 우리 집 사이의 길가에서도 종종 담배꽁초가 늘러있어 주워 모아 집 앞마다 세워져있는 쓰레기통에 넣었는데, 유독 지난 코로나 위기와 더불어 그 양이 늘었다. 꽁초의 출처가 궁금했다. 누군가 우리 집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유리창을 통해 우리의 거동을 살피다가 꽁초를 뱉고 가는지도 모른다고 상상하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설마 우리 집 모퉁이에 살고 있는 애연가족의 소행일 것이라고 생각 하지 못했다.

그날은 여성의 날이었다. 긴 겨울이 물러가고 햇살이 열기를 더해가는 봄날이었다. 나는 집 앞을 쓸고 자갈 속에 찡겨있는 꽁초들을 꼬챙이로 끌어내어 쓰레기통에 넣는 일을 하면서 다시 담배꽁초의 출처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탐정영화에서 본 범인의 유전성 처분을 검사하기위해 꽁초를 핀세트로 집어 플라스틱 봉지 속에 집어넣는 장면을 생각했다. 이웃집 부인이 성년이 되어가는 두 딸과 차에서 내렷다. 큰딸이 포장된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어머니와 여성의 날 커피 시간을 갖기로 한 모양이다. 내가 일어서며 즐거운 여성의 날이 되라고 인사를 하며 허리를 펴는데 부인이 말했다

“자갈사이에서 담배 공초를 주워 모으는 중입니까 ?”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우리 집 앞에도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어 알지요 ”

부인은 이미 여러 번 온 가족이 담배를 피우는 울타리 너머의 애연가 이웃집 사람과 언쟁을 했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이 거리거리에서는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는 가족인데 귀가하면서 물고 온 담배꽁초를 우리 두 집 앞에 와서 버리고 모퉁이를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녀 남편이 벌써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소용없는 일이란다 . 다 큰아들과 아이를 낳아 돌아와 사는 딸 역시 담배공초를 남의 집 앞에 버리고 발로 문지르고 간다고 했다. 코앞에 서있는 쓰레기통에 넣고 가려면 꽁초의 불이 완전히 없어질 때가지 기다려야하기에 남의 집 문 앞에 서서 버리고 간다고 했다.

그녀는 남이 입에 물었던 담배꽁초를 모아서 버릴 때면 구역질이 나서 언제부턴가 남편이 그 일을 한다고 했다. 어느 날인가 남편이 담배를 입에 물고 지나가는 젊은 남자에게 한마디 한 것이 이웃 간의 불화로 발단하여 지금은 인사도 하지 않고 피한다고 했다.

집 앞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자기들것인지 증거를 대라고 대꾸했다고한다. 그녀는 두 딸이 민망한 얼굴로 팔을 잡는 것도 무시하고 기막힐 일이라며 열을 올렸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애연가가족의 흡연 양이 늘은 것에도 관계가 있지만, 자주 큰소리로 싸우는데 그럴 때마다 담배를 물고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사 온 지 몇 년이 되는 데 그동안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이해할 수가 없는 점이라고 은근하게 비난을 섞어 말했다. 나는 지난 몇 해를 대문 앞에 모이는 담배공치를 쓸어버리기는 했지만 근래 들어 꽁초의 양이 많아져 거슬리기 시작했다고 변명했다. 집 앞에 누군가서서 담배를 피우며 우리 집 내의 거동을 살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고 하자 두 딸이 크게 웃었다.

“가서 한번이야기 하세요. 우리만 말할게 아니에요 !”

나는 맞는 말이라며 남편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얀의 의견은 달랐다.

성인의 나이에 들어 길에 가면서 가래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은 이미 구제 불능으로 이웃사람이 와서 꾸중한다하여 고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증오하며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반항을 꽁초로 도전하는 것이란다. 사춘기의 성장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미숙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봐야 승산 없는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한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사회적 문제 층의 사람들이란다.

니코틴의 독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파괴하며 사는 사람들인데 남이 와서 길거리의 담배공초 책임을 전가하면 차가운 웃음으로 대할 것이 뻔한 일이라고 했다.

안개가 방음벽 위까지 내려앉아 좋은 날씨를 조짐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세상을 휘잡고 있는 지도 일 년 반에 가까워 가고 있다. 방역대책으로 크리스마스를 예전에 없는 온갖 새 규칙을 지키며 지낸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다. 풍습을 지키는 고로한 독일인들도 명절에 대한 기쁨을 잃어가고 있다. 다시 부활절 가족의 만남에 지켜야 할 방역대책으로 규정을 내려 졌다. 코로나 독재라고 비난을 하면서도 비루스에 대한 공포로 소심해진 국민들은 순종하며 부활절을 맞이하고 있다.

벌써 두해 째 부활절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코로나위기로 직장을 잃게 된 사람들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라 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처해있는 생활 상황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통상적인 말은 소용이 없다. 서로 도울 수도 고민을 나눌 수도 없다.

사람들은 오색계란을 집 앞 상록수가지에 매달지도 않는다. 부활절 풍습이지만 억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마음속에 자리한 비루스에 대한공포를 덜어주지 않는 형식적인 일이라고 한다. 무기력해진 심신에 채찍질을 가하는 의미 없는 일이 라고 한다.

이제는 얼굴이 익혀진 동네 사람들이라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면서 지나가면 마음 편하다. 애견은 데리고 산책을 가는 남자,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가는 여자 모두 아는 사람들이다.

유독 이 애연가족과는 우연하게 마주치지 않기 위해 피해야한다.

문을 나서면 바로 나의 작은 꽃밭이 나온다. 언제나와 같이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2월부터 피기 시작한 흰 눈종 꽃 은 무성하게 초록 잎사귀로 흔적을 남기고 보랏빛 난쟁이 이리스가 피었다. 어떻게 집 뒤의 정원에서 건너와 자리를 잡은 보랏빛과 흰색을 섞어서 뒤늦게 핀 크로코스가 눈길을 끈다.

부활절에 기하여 만개하기위해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는 수선화의 가는 허리가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손바닥만큼 작은 꽃동산 이지만 나에게는 파라디스다. 자세히 살펴보니 빨간 함박꽃 싹이 나와 있다.

내가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흙을 만져보는데 옆집 후버부인이 열쇠를 손에 들고 나왔다. 우체통에 열쇠를 꽂아놓고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상록수 가지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모니터링에 잡혔어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내가 모니터링에 잡혔다는 말을 이해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자 조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제가전번에 말하지 않았어요. 보안 카메라 설치를 했다고!”

“아 그랬지요! 그기에 뭐가 찍혔어요!?”

“이웃집청년이 지나가며 담배꽁초를 우리 집 앞에 던지는 장면이 잡혔어요.”

그녀 역시 대문 앞에 모이는 담배꽁초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화가나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애연가 집으로 가서 호통을 치려했지만 증거 가없어서 못했는데 이제는 잡혔다는 것이다.

오늘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사회적 생활수준을 말하는 것인데 그 집 사람들을 보면 단 한사람도 바로 된 사람이 없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가족이란다. 그러면서 그녀는 누가 듣지 않나 주위를 둘러보며 살폈다.

내가 그 증거물로 어떻게 할 할 생각이냐고 묻자 그녀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 집 앞에 서서 묵은 담배냄새 맞으며 분통터지는 수준이하의 대답을 들을 이유가 없잖아요 !

편지를 쓸 생각입니다 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조항을 기입하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할지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만반의 준비를 할참입니다. 특히 거리두기, 손 씻기, 환기로 코로나 전염을 방지하고 있는 데 입에 물고 빨다 남은 꽁치를 남의 집 앞에 버리는 것은 위생규율을 어기는 일이니 지적해서 신고해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그 떡이며 옳은 말씀한다는 찬성의 뜻을 표현했다.

그녀는 덧붙어서 온 집안 식구가 담배를 피우는 사회적수준이 낮은 사람들로 우리 동네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정원동네에서 담배를 피우는 유일한 가족으로 알고 있는 데, 담배꽁초를 남의 집 앞과 길거리에 버리지 않는다면 간섭할 수 없는 일이지만 벌써 십여 년을 참고 살며 여러 번 다른 이웃들이 충고를 했지만 듣지 않으니 근절해야할 문제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쓴 편지에 서명이라도 하라고 한다면 어쩌나 싶어 은근하게 이렇게 말했다.

“얀이는 이웃을 교육시키겠다고 나서면 화강암 싸레기를 깨무는 것과 같다고 했거든요.”

“저는 교육을 시켜 좋은 이웃사람으로 만들어 어울려 살자고 하는 게 아니에요. 사회적 규율을 지키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가라는 거예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빨다 버린 아직 불기가 남은 꽁초를 버리고 지나간 문 앞에 나설 경우 꽁초에 뭍은 침이 증발하면서 나오는 비루스를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비루스로 인한 판데미 위기로 전 독일국민이 공포 속에 사는데 방역에 위반되는 이런 비위생적인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애연가들의 주장을 모르는 게 아니라고 했다. 금연은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는 것이고 국가가 국민의 건강관리를 잘하려면 원인규명을 하고 니코틴의 독소를 설명하고 누구를 위해서 금연을 해야 하는지 계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로 극도의 스트레스 인데 유일하게 남은 즐거움 인 담배까지 피우지 못하게 한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칠 것도 안단다. 모든 개인은 공동생활에서 스스로의 지켜야할 의무를 모르는 아무데나 꽁초를 버리는 것을 고소해서 벌금을 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이들의 방종을 방치했다가 지금에 와서 근절하자니 문제지만 코로나 위기가 가져다준 이점이라고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와서 온 이웃이 서명하여 담배를 즐기며 사는 이웃을 축출하는 일에 가담하는 일은 뭔가 께름칙한 일이었다. 이런 때는 부탁하는 이웃을 거절하여 왕따 당하며 살아 갈 용기가 없어 가짜 연대 의식으로 서명을 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일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해온 것처럼 집 앞을 빗자루 질 할 때 마다 자갈사이에 끼어 들어가 있는 꽁초를 후벼내고 길에 버려진 것까지 주워 모아 버리는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 지도 모를 일이다.

속으로 화가 일기 시작할 때 마다 혼잣말로 분을 풀고 돌아서면 될 것이다.

거기다가 이 서명운동으로 유발하게 될 다음 단계의 일에 대한 것을 예측할 수 없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담배꽁초제거 작업은 내가했지만 이런 일의 참여는 남편과 의논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우선 대화의 진전을 중단시켰다.

자신 없는 무책임한 변명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버부인은 바쁘지 않는 일이며 어차피 부활절이 지난 후에 본격적으로 시도할 일이라며 열쇠가 달려있는 편지통으로 갔다.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가다 돌아서서 즐거운 부활절을 기원한다는 형식적인인사를 했고 나 역시 답례를 했다.

저녁상에 앉아 나의이야기를 다들은 남편은 너희들은 그런 사소한 일로 시간낭비를 하고 작은 일을 큰일로 만들고 이웃 간의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 후버부인은 조심해야해 ! 젤리히 네 집과 경계하는. 울타리 옆에 심어 키운 블렉베리를 먹고 일주일을 아팠다고 하며 울타리저쪽에서 젤리히 부인이 독기 있는 농약을 들어부어서 그렇다고 소문을 내고 다닌다 하니 조심해야해 !”

내가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우리 집 맞은편에 사는 남자한태서 들었다고 얀이 말했다.

“너와는 친한 것 같다며 나만 알고 있으라고 했어 !”

“후버여사 피해망상증 에 걸린 것 아니야 !”

“코로나 비루스에 오염된 담배꽁초를 문 앞에 던지고 지나가는 이웃남자를 설치된 카메라로 포착했으니 연대할 사람이 필요한데 만만한 네가 걸려들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

“나는 너와 의논한 후에 협조하겠다고 했는데 …”

“다시 물으면 내가 반대하니 그럴 수 없다고 해 !”

“그 한마디로 쉽게 물러갈 것 같지 않은데 …”

“나한테는 아직 감시카메라 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으니 나는 모르는 일이야 !”

나는 후버부인을 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딴을 내렸다.

남편은 신경을 써서 현명하게 피해야지 공공연히 피하면 그녀의 타오르기 시작한 피해망상증에 기름을 붓는 일이 될 것이란다.

판데미 위기의 방역 대책으로 사람을 피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방방침으로 사람을 피하는 건강격리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부버부인은 비루스처럼 언젠가 없어질 것이 아니다. 이 애연가 가족이 금연가족으로 된다면 후버여사의 편집증이 같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부활절 일요일 아침 엠블란스 차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 동네길로 달려왔다.

애연가 집으로 들어간 의료진들이 젊은 남자를 눕힌 들것을 들고 나와 차안으로 들어 올렸다. 모두 창문을 통해 내다보던 이웃사람들은 비루스가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을 단단히 닫았다. 그리고 손을 씻었다. 당분간 몇 시간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상수다. 앰블란스 차가 코로나 비루스를 공기 속에 뿌리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들것에 누워 실려 간 젊은 남자가 코로나확진을 받게 되면 온 집안 식구가 다 같이 검사를 받아야 할 것이고 온 동네에 감염주의경보가 내릴 것이다. 부활절이 지나고 화요일이면 동네거리에 떠돌던 비루스도 사라지고 정확한 정보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부활절 월요일 나는 자전거를 가지려 그 집 앞을 지나갔다 문이 굳게 닫혀있고 묵은 담배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1215호 14면, 2021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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