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야기, 세상이야기 (5) – 마지막 회

황만섭

우연하게도 독일과 이태리는 1871년 같은 해에 통일을 했고, 일본은 1854년 처음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 늦게 자국 내의 어려운 일들을 정리한 이들 세 나라는 식민지를 갖고자 세계지도를 살펴보았지만 가질만한 땅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남의 땅을 뺏어오고자 야욕을 품게 되었고 각 나라마다 삐딱한 자들이 나타나 전체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국민을 선동하는 악동들이 움직였다.

독일은 히틀러(1889-1945)가 설치고, 이태리는 무솔리니(1883-1945)가 난동을 피웠으며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고 욱일기를 흔들며 제국주의를 음모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히틀러는 1차대전에 상사계급장을 달고 전쟁에 참여한 사람으로 세계가 경제공항으로 휘청거리고 독일도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그는 단상에 올라 대중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선동을 시작했다. 대중연설가였던 그의 연설은 대중들을 사로잡았고 연설에 혼을 빼앗긴 대중들은 정신을 잃고 열광하는 미치광이가 되어갔다.

그가 권력을 잡자 자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가두거나 외국으로 쫓아내는 공포정치를 시작했고, 1934년에 스스로 총통이 되어 군국주의의 절대자로 변신한 그는 신문과 방송을 탄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박탈했으며, 말보다 주먹을 앞세웠고, 법보다는 총칼을 휘둘렀다.

게르만족(아리아족)은 우수한 민족이며, 라틴족(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들은 쓰레기 족속들이고 황인종들은 저질 족속이며 흑인종들은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지능이 매우 낮은 생물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유대인이라며 거리낌 없이 유대인 800백만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히틀러가 세운 이 정권이 이른바 독일의 제3제국이라 부른다.

현재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는 바람 잘날 없을 정도로 시끄럽다. 원래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게 정상이다. 민주주의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조용하면 전체주의나 군국주의라고 하면 맞다. 러시아, 중국, 북한을 보라. 쥐죽은듯이 조용하지 않는가. 지금 그들은 독재자들이 무서워 떨고 있는 중이다.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각자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고 토론도 할 수 있으며 그런 후 다수가결로 결정하는 절차가 따른다. 그런데 그런 표결 두고 다수당의 횡포라고 헛소리하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그건 민주주의를 모르는 멍청이들이 하는 소리다. 통합이란 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사람들의 얼굴이 다르듯이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무서운 통합은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군국주의에서만 가능하다.

“독재정권마다 돌아가면서 빌붙어서 단물만 빨아먹으면서 온갖 죄악을 저질렀던 무리들이 독재자들이 쫓겨난 후에는 적어도 죽은 시늉이라도 할줄 알았다”고 이영희 선생은 회고했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더 뻔뻔하게 큰소리 치며 날뛰면서 소란을 피우는 기가막힌 세상을 보았다고 회고했다. 똥뀐놈이 성내는 꼴이다. 그건 후안무치의 극치였다며 쓴웃음을 웃던 이영희 선생은 소원대로 광주 5.18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1933년 44% 지지를 받았으나 그의 선동에 홀린 독일인들은 3년도 채 되지 않아 99%까지 지지를 보냈다. 독일국민들은 미치광이가 되어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외쳤다. 히틀러는 게슈터포(비밀경찰)를 앞세워 반대자들을 탄압했고 정권을 잡은 지 6년도 안 되어 세계최강의 군대를 만들었다. 그는 이탈리아, 일본과 동맹을 맺고 세계 제2차대전을 시작했다.

“옛날에 단치히가 독일 도시였으니 다시 되돌려달라”며 시비를 걸었고 폴란드는 무슨 소리냐면 펄쩍 뛰었다. 그러자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공격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1차 대전이 끝난지 21년만에 세계 제2차대전이 터진 것이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는 독일을 고양이 앞의 쥐 정도로 취급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프랑스는 처음으로 비스마르크에게 참패(수모)를 당했고(1870) 그 뒤로 계속해서 1차대전에 독일로부터 큰 피해를 입은 프랑스는 독일이 다시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니 공포에 떨었다.

히틀러를 막기 위해 프랑스는 온힘을 기울려 길고 튼튼한 ‘마지노 요새’를 국경에 만들어 놓고 히틀러를 기다렸으나, 히틀러는 마지노 요새을 피해 중립국인 벨기에 땅을 지나 가볍게 프랑스를 점령해버렸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속담을 증명해주었다. 유럽의 복판에 낀 자신들이 사방에서 공격해 올 경우 불리할거라는 생각에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후에 시작한 치밀한 전쟁이었다.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의 모든 나라를 순식간에 점령해버린 독일은 2년 후,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무시하고 소련을 공격했다. 공격 3개월 후(1943년 4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 20만 명이 소련군에 포로로 잡혔으며 이 전투에 투입한 500만 명 중 고작 6천 명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도망치는 참패를 당했다.

늦게 2차대전에 참여한 미국은 1944년 6월 영국, 프랑스 연합군들과 함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해 파리로 진격했다. 히틀러는 1945년 5월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2차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승리로 끝나자, 이 네 나라가 나누어가지면 독일은 네 동강이 날 판이다. 이에 미국은 공산화를 염려해 영국과 프랑스를 설득해 서독(도이치 연방 공화국)을 만들었고, 소련점령군은 동독(도이치 민주 공화화국)을 차지했다.

미국은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의 우위를 보여줄 필요가 있어 마셜 플랜을 준비했고, 그 원조에 힘입어 독일은 다시 부자 나라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먼 나라 이웃나라, 교양

1220호 22면, 2021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