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훈 아동을 소개 합니다

나는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제가 열 살이 되던 해, 부동산 업자였던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을 하므로 2층 양옥집에서 방 한 칸짜리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모님 두 분이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만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셨고,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한 달 뒤 아버지를 따라 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때 제 나이 열 살이었습니다.

부모를 다 잃어버린 나는 할머니를 잃고, 학교 선생님으로 혼자 살고 계셨든 할아버지 집으로 와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어느 섬마을학교로 전근을 가시게 되어서 저도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몇 해가 지난 후, 할아버지는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저는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섬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 한 뒤, 다른 애들은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꼭, 명문대에 들어 가야한다는 각오로 미친 듯이 공부에 매 달렸습니다. 얼마 후, 저는 꿈에 그리던 명문대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입학식 날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실 때 입으셨든 낡아빠진 양복을 입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날 밤 나는 할아버지와 아주 오랜만에 한 방에서 포근하게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해 주시는 분은 할아버지라고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나는 사법시험에 도전해서 두 번 만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친구도 생겼습니다. 집안이 아주 부자라는 소문을 들었고, 무엇보다도 나를 끔찍이 생각해 주어서, 외롭게 공부에만 전념하고 살아온 나에게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내가 고아 출신인 것을 알면서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이 자신을 빨리 시집보내려고 한다고 하여서 우리는 상견례 날 자를 잡게 되었고, 시골에서 상경하신 할아버지와 나는 상견례 장소에 도착해서 신부 측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먼저 들어오시더니, 저와 할아버지를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곧장 나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노인네 냄새가 너무 많이 나네. 차라리 부모가 없는 게 낫지! 저런 영감탱이를 내 딸이 평생 수발해야 된다니? 저런 섬마을 촌놈이 뭐가 좋다고 우리 집안에 끌어 들이는 것이니?> <엄마, 내가 미리 다 말했잖아, 할아버지가 그이 다 키운 거야, 학교 교장 선생님까지 하셨대…..> 밖에서 크게 들려오는 예비 장모님의 비난의 목소리에 할아버지 표정이 많이 어두워 졌습니다.

<할아버지 괜찮아? 기분 나쁘면 그냥 나갈까?! 저 집이 돈은 많다고 하는데 교양 면에서는 빵점인 것 같아,> <아니다, 나는 괜찮다. 내가 무시당하는 건 다 괜찮아.>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조금 놀란 듯 하셨지만, 이내 평정을 되 찾고 담담해 지셨습니다. 나는 만일 그녀의 부모가 할아버지 면전에서 무시하거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면, 그때에는 정말, 이 결혼을 엎어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화장실에서 돌아온 그녀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들어왔습니다. <아빠, 인사드려요. 그이를 키워주신 할아버님이세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사돈어른.> 그렇게 할아버지와 장인어른은 첫 대면을 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장인어른이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 것 아닙니까? 그때, 저는 순간적으로 무척 긴장했습니다. <아, 맞다! 기억났습니다. 선생님, 김동만 선생님 맞으시죠?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석환이에요. 저보고 양동이라고 하셨잖아요! 자세히 보니까 선생님의 옛날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장인어른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벅찬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그 때 저에게 삼십만 원을 주셨잖아요….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장인어른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오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뚫어지게 장인어른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석환이, 이제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입학금이 없어서….. 네가 석환이라니 믿어지지 않는구나! 이렇게 잘 커 주어서 고맙구나. 기억해 주어서 고마워.> 할아버지와 장인어른은 식사하는 동안 내내 울었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이야기가 그칠 줄 몰랐습니다.

드디어 결혼식 날이 밝았습니다. 식장은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이 하객들로 꽉 채워졌습니다. 신랑신부가 예물 교환을 마친 후, 사회자가 <여러분, 오늘의 신랑을 키워주신 김용남 할아버지를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하더니, 할아버지에게로 모든 시선이 쏠렸습니다. 주례석 옆 의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앞으로 갑자기 15명이나 되는 장년의 신사들이 나와서, 한사람의 구령에 맞추어, <일동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하더니 모두가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들은 같은 학교 동기 동창입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던 시절, 선생님은 저희들에게 부모님도 해 주실 수 없었든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이곳에 서 있는 저희 15명 모두가 선생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아니면, 중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기원 하면서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식장 안은 모두가 감동으로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눈물을 닦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제자들의 모습에 흐뭇하셨는지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고 계셨습니다. 결혼 식 후, 장인어른은 방이 4개나 되는 큰 아파트를 사 주셨고, 저희 부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나는 부모님이 모두 계시지 않아도 이렇게 훌륭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잘 양육되어 성공 된 인생의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 발췌)

오늘 소개드리는 오지훈 아동은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시설 아동입니다. 아동은 재혼 가정에서 생활하면서 계부에 의한 신체 및 정서학대 방임으로 인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의뢰되어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아동은 2021년 현재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초기 입소 시에 어눌한 말투와 단답형의 대화, 음식 섭취에 대한 지나친 욕구로 인해 걱정이 많았으나, 현재는 잘 적응하여 규칙적으로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학대로 인한 정서적 불안감으로 인해 경계선지능아동 대상이 되어 치료 중에 있으며 앞으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교민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는 지훈 아동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1237호 34면, 2021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