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과 민들레 (1)

류현옥

2004 년 11월 11일 은 내 인생에서 먹구름으로 어둠이 뒤덮은 날이다. 독일인들은 이런 경우 “서있는 발아래의 카펫을 잡아 당겼다”고 표현한다. 갑자기 서있는 바닥의 카펫을 땅기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나는 털고 일어나 설자리를 다시 찾아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남독에서는 몇 달 동안 준비한 카니발 행사가 시작되어 메스콤을 통해 계속 전주곡을 방송하고 있었다. 나는 오전에 예약한 산부인과에 가야했기에 늦지 않게 일찍 일어나 수영장을 갔다. 기분 좋게 피로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도넛트 (판쿠헌)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빌마스토프 거리 의 모퉁이 빵집에서 쨈으로 속을 채운 벨린너 라는 이름을 가진 판쿠헌이 끓는 기름위에서 튀겨지고 있는 과정에서 퍼져나가는 향기였다. 차례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도넛을 사들고 나오는 사람들로 번잡했다. “아하! 11월 11일은 카니발로 판케잌을 먹는 날이지!” 나는 감탄사를 혼자 뇌이며 마지막 사람 뒤에 붙어 섰다 . 망년회 때나 먹는 판쿠헌인데 그날은 유독 식욕을 돋웠다. 커피한잔만 마시고 수영을 한 시간 한 후라 그랬을 것이다. 내 차례가 되어 계란 술이 든 것과 자두 쨈이 든 도넛을 두 개사서 집으로 돌아와 커피한잔을 마시며 두 개를 혼자다 먹어치웠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예약시간에 늦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부인과로 갔다. 내가 보험카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주치의가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나 역시 인사를 했는데 그녀가 다시 되돌아와 소변을 받아서 검사실에 갖다 주란다.

여의사가 시키는 대로 소변을 검사실에 갖다 주고 대기실에 앉았다. 허겁지겁 먹은 판쿠헌의 당분이 온몸에 퍼지는지 피로가 덮쳤다. 눈을 감고 의자에서 졸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의사 방으로 갔다. 산부인과 상으로는 이상이 없는데 소변에 당이 4+로 판정되었으니 혈당검사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당뇨병 증상을 “눈앞에 안개가 끼인 것 같다”는 표현하는데 담당의사는 내 눈빛에서 당뇨병증상을 읽은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국을 발견하고 들어가 유로 혈당 검사를 했다. 정상치의 네 배의 혈당이 확정되었다 . 약국주인이 나의 얼굴을 보더니 “택시를 불러 줄까” 물었다. 이렇게 받은 당뇨병 진단은 한마디로 쇼크였다.

내과병동에서 시작한 독일 직장 생활에서 30여년을 간호해온 당뇨병 환자들에게 음식(과식)으로 얻은 병의 과정과 치료법을 설명하면서 나와는 관계없는 병이라고 생각해온 병이 하루아침에 내 병으로 되었다. 당뇨병은 급성으로 생기는 병이 아니기에 나는 내가 당뇨병환자라는 것을 모르고 오만하게 살아왔다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인가 병원정원 길에서 인도여자와 결혼하여 사는 내과의사분이 이야기 도중 나에게 체중을 줄이고 음식조심을 하지 않으면 당뇨병에 걸릴 요소가 보인다는 것을 지적했을 때도 당뇨병은 나와 거리가 먼 병이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연속인데 먹는 것까지 조절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아드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미 나는 당뇨병 환자였다.

나처럼 먹는 것 좋아하고 배가 불러도 맛있는 음식을 보고 참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뇨병은 치명적이다. 구태여 초콜릿이나 단 케이크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떡도 참고 먹지 말아야 한다. 금방 밥솥에서 주걱으로 퍼낸 흰쌀밥 위에 잘 익은 김치를 얹어서먹고 뜨거운 된장국을 후후 불면서 먹는 생의 희열을 곧바로 치켜오를 당뇨 숫치를 생각해서 참아야한다. 한 번씩 해 먹으면 맛있다고 생각했던 보리밥이 당뇨병 진단 후부터는 싫어졌다. 약은 입에 쓰다는 말처럼 이제부터는 흰쌀밥은 피하고 잡곡밥을 먹어야한다는 데 대한 거부감이었다.

담당의사는 우선 당뇨병 세미나에 참석하여 나의 병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을 하란다. 나를 생각해서 해준 이 조언역시 자존심을 형편없이 상하게 했다. 그동안 30여년을 당뇨병 환자를 간호한 나를 철저히 무시하는 지시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당뇨병은 네가 간호하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너도 당뇨병 환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너 자신을 챙겨야할 단계니 정확하게 알아야 할 때다 . 지금까지는 몰라도 된 점들을 이제부터는 철저히 알고 네 일 상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다.

말 그대로 당뇨병은 당이 소변에 섞여 나오는 병이다. 이 당은 소변으로 나오기 전에 혈당으로 핏속에 섞여있다. 음식물을 통해 흡수된 핏속의 당을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취장의 랑가한스 세포에서 생산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에너지의 생산의 메카니즘이다.

인슈린은 음식물을 섭취하는 순간 연락을 받은 취장의 랑가한스 세포가 작동을 하여 인슐린을 생산하여 핏속으로 내보내게 되어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슐린이 생산 되지 않으니 당은 핏속에 석여 온몸을 돈다. 꿀물처럼 뻑뻑한 당 숫치가 높은 피가 미세혈관을 통과하지 못하니 눈, 피부, 심장, 신경, 뇌 등의 기관에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되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어 각종 합병증이 온다. 아주 고약한 복합적인 신진대사장애질환이다.

나의 주치의는 내과병동에서 나와 15년을 함께 일한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다.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의기소침하여 기가 죽어 있는 나에게 “너는 헤라클레스가 아니다. 이국 땅에서 어려운 독일말로 큰 내과병동에서 밤낮으로 교대근무를 하고 두 아이를 키워야했으니 언제 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당뇨병 원인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위로해보느라 해보는 것 같은 이 말은 당분간은 조금도 나아질 것이 없는 내 일생생활에서 계속 될 스트레스를 해결해 줄 말이 아니었다. 만신창이 된 나의 신경을 건드릴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화 공공칠 (007) 시리즈 로 “죽을 시간이 없다”라는 제목이 있듯이 나에게는 아파 드러누울 시간이 없었던 때다. 체중이 계속 늘어간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스트레스 해소를 먹는 것으로 해소할 때다 .

스트레스와 당뇨병과의 관계는 인간이 숲속에서 사냥과 나무에 달린 것을 띠서 먹고 살던 때에 이루어진 진화의 역사로 이어진다. 먹을 것을 찾아 나선 사람 앞에 갑자기 큰 곰이 나타나면 공포로 손에 땀이 난다. 도망을 가야하기에 긴장하고 뛸 준비로 몸속의 아드레날린이 급증한다. 우리 신체는 아드레날린이 올라가면 즉시 인슐린이 중지되게 되어 있다. 뛰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핏속의 당뇨를 모으는 것이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일어나는 생리학적 방어 작용이다.

이 신진대사의 신체 대사를 유전 받은 현대인들은 우선 먹는 것에 비하여 운동을 적게 한다. 둘째는 스트레스해소의 가능성이 줄어졌다. 예를 들면 약속시간에 가야할 사람이 탄차가 밀리기 시작하여 달리지 못할 경우 꼼짝없이 차안에 앉아서 기다려야한다. 차에서 내려 뛰어 갈수도 없고 되돌아 갈수도 없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다.

나는 과식과 스트레스로 인슐린 생산의 책임기관인 랑거한스 세포가 소진되어 쓰러져가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의 사정을 아는 주치의는 당뇨전문 휴양병원으로 갈 수 있는 복잡한 신청을 해주며 너무 늦기 전에 나의생활방식을 바꾸어야한다는 경고를 했다. 휴양기간으로 정해진 4주가 지나 조금씩 나 자신을 되찾고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자 기적같이 당뇨 숫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당뇨약 복용이 중지 되었다.

그동안 누구를 위해 살았던가? 불가 한 달 만에 오직 내 몸을 위해 짜진 프로그램에 따라 건강식 식이요법과 운동의 결과로 재생을 한 것 같았다.

휴양병원의사는 나의당뇨병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번의 상담을 통해 내 생활을 세세히 물었다. 유전적 근거도 없고 뚱뚱 하기는 하지만 체중이 초과중량도 아니고 10 km떨어진 근무처를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나의 생활에서 주원인이 될 만 한 점을 찾아 낼 수가 없다고 했다 . 간호사로 일하다보면 아침식사나 점심을 충분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무질서한 식사 습관이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많이 움직이며 칼로리를 많이 필요로 하기에 무질서 하게 먹었을 것이란다.

먹은 음식과 소화된 영양소가 영양공급으로 이어지는 신진대사는 잠을 자는 밤 시간에 일어난다며 나의수면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그때까지 거의 사십 여년을 불면증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때때로 수면제를 먹어가며 낮에 쌓은 피로를 풀며 살아 왔다.

휴양소의사의 배려로 나의 수면상태를 감시 장치를 하는 기구를 머리에 쓰고 하룻밤을 지냈다. 결과는 현저한 수면장애로 나타났다. 베를린으로 돌아가면 대학병원의 수면의학과(Schlafmedizine)에 가서 재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이 기회로 나는 “수면의 중요성과 신체 건강유지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다시 한 번 배우게 되었다.

장기간의 수면부족은 면력능력과 관계되어 암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노년기에 들어가서 기억력 상실과 노인성 백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흔히 사람들은 “죽으면 한정 없이 자게 될 텐데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자겠다고 할 이유가 있나?”, “수면의 연속은 죽음이다!” 라는 말을 한다. 어차피 죽을 몸들로 얼마든지 잘 텐데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자야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말은 맞지 않다.

잘못된 교육으로 누워서 자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며 밤잠안자고 시험공부도 하고 소설도 읽었다. 그때 까지 인간이 하루도 쉬지 않고 잠을 자야하는 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

나는 당뇨병자들이 겪는 심장병과 신장병, 시력이 나빠지고 뇌졸중으로 사고능력이 줄어들면서 폐인이 되어가는 예를 많이 보았다. 이 병들이 모두 수면부족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휴식을 충분하게 취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병이다.

가장 중요한 생의 숙제라고 생각한 두 아이의 성장과정이 어느 정도 끝나 어른이 되어 가는데, 내가 폐인으로 그들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불안이 나를 덮쳤다.

나는 요양기간을 두 번 연장할 수 있었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정상으로 돌아온 당뇨 숫치를 유지하며 살기위해서는 운동과 음식조절 외에 수면섭취를 충분히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명심하기로 했다. 베를린으로 돌아온 나는 대학병원 에서 반 연간 불면증치료를 받았다.

퇴원을 하는 날 휴양병원 담당의사는 내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근무처의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하면 3개월 후에는 당뇨 숫치가 다시 오를 것이라며 지금부터 하루도 등한시 하지 말고 휴양병원에서 연습한데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 했다. 스트레스는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심리치료사를 찾아서 대화씩 치료를 하란다.

나는 다시 나를 찾았다는 자신감에 넘쳐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당뇨 약은 더 먹지 않아도 휴양 중에 배운 생활습관을 지키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근무를 시작하고 온갖 생활 스트레스가 다시 나를 몰아쳤다. 만신창이 되어 퇴근한 날은 채소를 넣어 끓이겠다고 준비한 닭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하여 수제비를 끓였다. 이것이 시작인지 모른 체 자제력 없는 옛 생활습관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투쟁력을 잃어갔다. 어느 시점에 가서는 이 순간이 중요하고 당장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 스스로 에게 목소리를 높여 먹는 것까지 제지하라고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의지를 잃어갔다. 벗어던져야한다는 생활습관으로 되돌아가 포식을 하며 다시 비 절제적인 생활 속으로 되돌아갔다. 애써 줄인 체중과 함께 당뇨 숫치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알면서도 오래된 식습관이 되돌아온 것을 알면서도 시간에 쫒기며 일을 했다. (다음호에서 이어집니다.)

1244호 14면, 2021년 11월 26일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