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섭의 미국이야기 (11)

링컨이 제16대 대통령에 공식취임하자(1861.3.4) 남부연맹은 사우스 캐롤리나주의 섬터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연방정부군에게 “남부연맹에 속한 땅이니 이 요새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연방군이 이를 거부하자, 포격을 가했고, 그 포격은 결국 남북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첫 포성이 되고 말았다.

전쟁이 시작되자, 노예해방론자들은 링컨에게 이번 전쟁이 ‘노예해방을 위한 전쟁’이라고 선언할 것을 촉구했지만, 자나깨나 연방의 분열을 막고자 노심초사했던 링컨은 ‘노예해방전쟁’이라고 선언하기를 망설였다. 1862년 8월 남부연맹의 총공세로 북부 군은 한때 위기를 맞기도 하는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고, 유럽의 나라들은 내심 미국이 작은 나라로 쪼개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양쪽의 눈치를 살피던 영국과 프랑스는 남부군이 우세하자 남부군 지지를 천명하고 나섰다.

한 달 후인 9월에 있었던 앤디팀 전투에서 북부 군이 승리하자, 링컨은 이때가 노예해방선언을 할 적기라고 판단하고, 1862년 9월 22일 각료회의에서 ‘노예해방전쟁’을 선언했다. 역사는 남북전쟁을 ‘숭고한 인권전쟁, 인도주의를 위한 전쟁, 위대한 인간애의 전쟁’이라고 칭송했다. 북부 연방군이 우세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남부연맹의 지지를 거두어들이고 북부연방의 지지로 입장을 선회했다.

북부의 승리로 확정 지을 만한 1863년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훗날 게티즈버그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곳을 국립묘지 장소로 정하였고, 그런 사연 때문에 지금의 국립묘지가 생겨났다.

그곳에서 행한 링컨의 연설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유명한 연설로 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는 전쟁 중임에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1864년 11월에 대통령선거를 실시했고(비상사태에는 대통령 선거를 하지 않아도 됨), 링컨은 다시 재선되어 1865년 3월,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고, 한 달 뒤, 4월에, 남부연맹 지지자 ‘존 부스’가 쏜 총탄에 쓸어졌다. 세상은 큰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고, 링컨에게서 조지 워싱턴과 예수의 참모습을 한꺼번에 보고 느낀다며 그를 그리워했다. 링컨은 세월이 흘러가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미국을 통일한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칭송과 존경을 받고 있다.

남북전쟁 당시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부연맹의 땅이던 조지아주 타라 농장에 살았던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의 이야기다. 한쪽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하고 질투하면서, 그리워하고 미워하는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인간사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섬광이 번쩍이면서 포탄이 터지고, 남녀 사이에 눈빛이 번쩍이면 사랑이 터지는 세상이야기이다. 스칼렛은 애슐리 윌크스(레슬리 하워드)를 사랑했으나, 애슐리는 어느 날 멜라니(올리비아 데 하빌랜드)와 결혼을 해버리고, 이에 화가 난 스칼렛은 자신의 여동생이 좋아하는 멜라니의 남동생인 찰스와 결혼하지만, 찰스는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영화 중간에 나타나는 잘생긴 바람둥이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의 능청스런 연기 또한 볼만하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1865년 4월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북부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함으로써 4년 간에 걸친 남북전쟁은 끝이 났다. 남북전쟁의 피해는 참담했다. 북부에서만 사망자가 37만 명과 부상자가 27만 명이 발생했고, 남부에서의 사망자 숫자는 26만 명에, 부상자가 10만 명이 생겼다. 1861년 남북전쟁을 시작할 당시 미국의 빚이

9천6백만 달러이었던 것이, 전쟁이 끝난 후엔 28억 4천만 달러로 30배가 늘어났다. 링컨 다음의 대통령이었던 앤드루 존슨의 유화정책으로 연방을 탈퇴한 주들이 속속히 연방으로 되돌아왔고, 눈부신 경제성장과 끝없는 미개척지의 서부 땅도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데에 큰 몫을 했다.

4년간의 치열했던 남북전쟁(1861~65)은 그렇게 끝이 났고, 이제 미국이 무섭게 도약하는 모습이 우리들 앞에 거짓말처럼 펼쳐진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50년 지난 후 미국의 제조업은 3.5배가 증가했고, 국민총생산은 4배가 늘어났으며, 1인당 소득 2.5배로 증가했다. 19세기 말 건국한지 120년뿐이 안 되는 미국은 이미 세계최대강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정헌법 제13조는 노예제도의 영원한 폐지, 제14조는 생명, 재산, 자유와 인권 보장, 제15조는 흑백인 성인 남, 녀 모두에게 투표권을 준다고 했지만, 투표장에 나온 흑인들과 흑인들에게 우호적인 백인들까지 무차별로 무서운 폭행을 자행하는 KKK단(미국의 극우 비밀결사대, Ku Klux Klan, 그리스말로 키클로스)이 등장했다. 이 비밀폭력단체 KKK가 처음으로 생겨난 것은 1866년 테네시주 펄레스키에서였다. KKK단은 연방정부의 강력한 조치로 지하로 숨어들었다가, 1914년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그들은 다시 기독교(개신교)보호, 반 유대인, 반 가톨릭을 외쳤고, 1960년 흑인민권운동이 활발해지자, KKK단은 다시 준동해 폭동을 일삼기 시작했다.

링컨은 전쟁 중이던 1862년에 철도건설의 시행안에 서명했지만, 본격적인 공사는 1865년에야 시작되었다. 그러나 철도공사를 맡아서 일하고자 하는 회사가 나타나지 않자, 정부는 1.6km당(1마일) 수만 달러를 지원해주고, 거기에다 추가로 철도 양쪽으로 각각 10km씩 의 땅을 공짜로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결과 횡단철도공사는 대성공을 하게 되었고, 공사에 필요한 인력으로는 인권비가 저렴한 중국인들이 몰려왔다. 철도공사를 맡으면서 공짜로 받은 땅을 비싸게 팔았고, 공사에서 많은 이득이 남자, 횡단철도 2개가 급속하게 더 만들어졌으며, 철도가 지나가는 지역에는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나 생동감이 넘쳤다. 1865년에 55.000km였던 철도가 1900년대에는 320.000km로 늘어났고, 미국은 급하게 변하면서, 정신 없이 발달하고 있었다.

남북전쟁은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큰 나라로 뭉쳐서 살아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고, 잘못 갈라져 다투다가는 쪽박을 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미국인들은 잘 만들어진 철도망을 통해 서로 왕래하고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애국심이 생겨나고 자라면서 더욱더 튼튼한 미국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링컨 다음으로 들어선 대통령의 유화정책과 광대한 영토, 풍부한 자원에 힘입어 탈퇴했던 주들이 속속들이 다시 연방으로 되돌아왔다. 행복과 부를 추구하는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는 정책으로 뒷받침을 해주었고, 개혁적인 진보세력이었던 청교도들은 프런티어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지식, 힘, 돈을 활용하면서 마음껏 날개를 피고 하늘을 날랐다.

* 참조 : 먼 나라 이웃나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참조

2019년 9월 6일, 113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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