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18) 마지막 회

황만섭

케네디의 시신을 싣고 워싱톤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한 후,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임무를 시작했다. 존슨은 ‘위대한 사회건설’을 내걸었고 부의 분배정책을 성공시켜 미국역사상 가장 과감한 국부분배를 시도한 대통령으로 칭찬받았지만, 베트남 전쟁에 휘말린 것은 그의 최대과오로 남았다.

존슨은 천문학적인 베트남전쟁경비를 세금이 아닌 빚(차입)으로 막았고, 그 결과는 달러가치의 폭락과 물가상승, 실업자 증가로 이어져 재정적자가 미국의 목을 졸랐다. 산유국들은 원유가격을 몇 배나 올려 1973년과 1978년 두 번씩이나 미국을 오일쇼크에 빠지게 했으며, 저성장, 불경기, 고물가까지 겹쳐 미국을 괴롭혔다.

닉슨은 화려한 외교활동으로 재선에 성공(1972)했지만, 취임 초기부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시달렸다. 민주당 선거대책본부가 있던 호텔에 도청장치를 한 사건으로, 닉슨 자신은 도청사건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잡아떼고 발뺌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사임을 해야만 했었고, 부통령이던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1975년 호지민이 승리하고 월남이 항복하면서 미국과 한국도 같이 패전국이 되었고, 1976년 대통령이 된 카터는 정통민주당인물이 아닌, 외부에서 영입된 후보였다. 그는 민주당 사람들을 인사에서 배제하고 자신과 친한 외부전문가들을 기용해 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으며 당의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란에서 팔레비 왕조가 쫓겨나 미국으로 도망가자, 그의 반환을 요구하며 분노한 군중들이 테헤란의 미대사관을 점령하고 40여 명을 인질로 1년 넘게 카터 행정부를 괴롭혔다.

1980년 배우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재정축소와 세금감면을 내세우는 ‘레이건 노믹스’를 주장했고, ‘소련은 세계의 모든 악의 집결지’라고 비난했다. 1983년 9월 대한항공이 실수로 소련영공에 들어갔고, 악의 집결 지답게 소련전투기가 KAL을 격추시켜 269명이 사망했다.

레이건은 소련의 야만행적을 규탄했고 국방예산을 크게 늘렸다. 레이건은 아일랜드계로 일리노이주의 가난한 집안출신으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후 할리우드에서 53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였다. 그는 쉽고 직설적인 표현을 즐겨 썼는데, 예를 들면 기자의 질문에 “불경기란 이웃이 실직하는 것이고, 공항이란 자기 자신이 실직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설명이 그 예다.

그는 적대관계였던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팔았던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씻지 목할 오점을 남겼고, 레이건의 시대였던 1980년대에는 중동의 여러 나라들이 미국대사관을 테러의 표적물로 삼았던 사건이 잦았다. 각종 규제를 풀어 뉴딜정책의 원칙을 무시하고 기업합병을 권장해 정글의 법칙이 난무했고, 결국 1987년 10월의 주가대폭락으로 이어져 미국경제가 휘청거렸다. 그때(1985) 러시아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아이슬란드의 레이카비크에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장거리 탄도탄과 핵무기를 없애버리자는 회담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비록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그 회담은 세계가 환호할만한 대사건이었다.

레이건 밑에서 부통령으로 있었던 조지 부시가 다음 대통령이 되었다. 닉슨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유엔 미국대사, 중국연락사무관 등을 역임했고, 포드 대통령시절에는 CLA국장을 지낸 조지 부시는 상원과 하원이 공화당보다 민주당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를 잘 풀어나가는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냉전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사정은 무너진 동구권 나라들을 도와줄 힘이 없었고, 그 사이 사담 후세인은 아랍세계의 석유를 장악하려는 주도권을 꿈꾸고 있었다. 1990년 8월, 10만 이라크 군은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중동의 석유를 포기할 수 없었던 미국은 1991년 1월, 28개국의 다국적군과 함께 이라크전쟁에 참여해 최첨단무기를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고, 한달 만에 후세인은 두 손 뻔쩍 들고 항복하고 말았다.

조지 부시는 91%까지 치솟는 엄청난 지지율에도 엄청난 경제난으로 재선에 실패했고, 빌 클린턴이 4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클린턴은 군대를 기피했고, 학창시절 마리화나를 피운 경험이 있으며, 여자들과의 스캔들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던 사람이다. 클린턴의 집권 8년간 미국경제가 다시 살아났고 1992년 유고슬라비아가 분열되면서 잔인한 내전이 일어나자, 미군을 파병하여 유엔과 더불어 세계의 경찰역할을 잘 해냈다.

2000년 선거에 ‘엘 고어’가 득표에서는 ‘조지 W 부시’보다 많았지만, 선거인단 숫자에 밀려 간접선거에서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부시는 극단적이고 강경한 보수정책과 패권주의를 노골화 했고 미국우월주의 외교는 이슬람 권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켰고, 일방적인 이스라엘 편들기를 거듭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펜타곤이 자살공격테러를 당하자, 배후인물로 ‘빈 라덴’을 잡겠다며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 전쟁은 세계최고의 부자나라와 세계최고의 가난한 나라와의 전쟁이었다. 다음 총구는 이라크를 향했지만, 이라크에 숨겨져 있다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찾지 못했다.

1961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출생한 오바마가 44대 미국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아프리카 케냐출신의 흑인으로 케냐에서 양을 치면서 판자촌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성격이 쾌활하고 천재였던 그를 알아본 미국인이 미국유학을 권했고, 미국유학 중 백인여자친구와 결혼해 오바마를 낳았다. 오바마가 2살 때, 케냐에 살던 할아버지의 강압으로 오바마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하고, 아버지 혼자서 케냐로 돌아갔다. 후에 어머니의 재혼으로 6세~ 10세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살기도 했던 오바마는 콜롬비아대학을 거쳐, 하버드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재였다.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독일 서남부도시 칼슈타트 출생의 프리드리히 트럼프라는 사람이 16세(1885, 트럼프의 할아버지) 때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트럼프부모들은 1936년에 결혼해 1946년에 트럼프를 낳았다. 트럼프 자신은 세계 여러 곳에 호텔과 고급 콘도미니엄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그의 재산은 39억 달러(약5조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 참조 : 먼 나라 이웃나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참조

2019년 11월 1일, 114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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