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의 중인환시 (59)
미녀와 악녀 (2)

정원교

중국에서는 하나라가 실재했던 나라라고 주장하지만 역사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전설로 보는 것이 대세다.

첫 번째 악녀로 알려진 말희(妺喜)는 이 전설의 나라인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桀)왕의 왕비였는데 유시(有施)족을 정벌하고 빼앗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치마폭이 얼마나 넓었는지는 몰라도 그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걸왕은 그녀가 요구하던 경궁(傾宮)이라는 것도 지어 주며 연일 연회로 즐겼다. 경궁이란 궁전을 망하게 한다는 뜻인 데도 그런 이름으로 궁을 짓게 하고 즐겼다고 하니 어느 정도로 빠져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겠다.

한편, 말희는 파낸 연못에는 술을 채우게 하고 나뭇가지에는 고기를 달아 놓아 술에 취한 젊은 남녀들의 행패를 보며 즐겼다. 비단 찢어지는 소리가 음악같이 들린다는 말희의 한 마디에 걸왕은 전국의 비단을 모아 하루종일 찟어가며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니 국민들의 원성이 오죽했으랴.

말희의 방탕한 생활에 빠져든 걸왕을 보다 못한 탕이 군사를 일으켜 나라를 세우니 곧 상나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워진 나라도 또 다시 여성의 치마폭에 휘둘려 똑같은 전철을 밟으며 망하게 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상나라의 마지막 주(紂)왕은 두 번째의 악녀로 알려 진 달기(妲己)라는 여성에 빠져 그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들어 줄 정도가 되었다.

말희처럼 주지육림으로 밤낮을 지샜는가 하면 구리에 기름을 바르고 불로 달군 뒤, 불속에 떨어져 아우성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즐겨했을 정도라고 하니 달기는 소문대로 인간이 아닌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라는 말이 맞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난을 일으키고 무왕이 군사를 도우니 천년만년을 그렇게 살아갈 줄 알았던 달기는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하고 주왕은 자결하고 말았다.

중국의 세 번째 악녀로 알려진 이가 포사(褒姒)다.

4명의 악녀중에서 포사가 유일하게 전설같은 탄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용의 침을 보관하던 상자를 열자 침이 흘러나와 도마뱀으로 변한 뒤 어린 궁녀와 관계를 맺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무리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라도 이건 좀 지나친 것 같다.

포사가 살던 마을에 죄를 짓고 감옥생활을 하던 부친을 살려내기 위해 그 가족들이 예쁜 포사를 왕에게 뇌물로 바치기로 한 것은 유왕이 그녀의 미모에 빠져 아버지를 풀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왕은 좋아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팔려 온 포사의 생활은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연못주위를 걷다가 비단치마가 나무가지에 걸려 찟어지는 소리에 놀라며 웃자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유왕은 전국의 비단을 거둬 들여 포사가 보는 앞에서 찢게 하니 한나절을 잇는 웃음소리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 지기 마련으로 처음엔 잘 웃던 포사도 점점 시쿤둥한 모습을 보이자 유왕은 다시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무선통신을 생각할 수 없는 때의 일이니 당시 국토방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불을 피워 연기로 상황을 알리거나 아프리카처럼 평지에 산림이 우거진 데서는 북을 쳐서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그런 시절에 병사들의 실수로 산봉우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던 모양이다. 변경을 지키던 군사들이 장안에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았는가 싶어 달려 왔다가 실수로 오른 산불이었음을 알고 되돌아간 사건이 있었다.

이때 우왕좌왕하던 군사들의 모양을 본 포사가 깔깔대며 크게 웃자 어떻게 하면 포사에게 즐거움을 주어 웃게 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때에 유왕은 바로 이거로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며칠이 지난 후, 유왕은 봉화대를 지키는 군사에게 불을 피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를 모르던 건너편 봉화대 군사들이 갑작스럽게 피어 오른 연기를 보고 적군이 쳐들어 온 것으로 판단하고 군사를 모아 장안으로 급히 들어와 보았으나 아무런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군사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본 포사는 즐거워했고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유왕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양치는 소년과 늑대>라는 동화를 잘 알고 있다.

양을 몰고 풀먹이를 나간 소년이 풀을 뜻고 있는 양들만 보고 있자니 심심하던 차에 <사람살려, 늑대가 나타났다> 소리 지르며 달아나자 마을 사람들이 낫을 들고 늑대를 쫓으려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

두 번째 거짓말에도 마을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자 더욱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였다. 이번에는 정말로 늑대가 나타난 것이다.

소년은 겁을 먹고 늑대가 나타 났다며 살려 달라고 소리쳐 보지만 또 장난치는 것으로 생각한 마을 주민들은 달려오지 않았고 소년은 끝내 늑대에게 잡혀 먹었다는 동화다.

계속되는 거짓봉화에 속기만 하던 군사들이 정작 적군이 쳐들어와 봉화불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또 장난하는 것으로 믿은 군사들이 출동하지 않으니 주나라는 포사의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2019년 10월 25일, 1144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