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영 아동을 소개 합니다

한동대 김영길 전 총장이 작년(2019년, 6월30일)향년 8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서울대 금속 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 주립 대에서 금속공학 석사, 렌셀러 폴리 테크닉대학교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루이스 연구소 연구원, 뉴욕 인코(INCO) 중앙연구소를 거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김 전 총장은 대표적인 크리스찬 과학자로, 미국 NASA 발명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국민훈장 동백장, 세종문화상, 올해의 과학자상, 한국 기독교 선교대상 교육자부문, 한국 기독교 학술상까지 수상했습니다.

1998년에는, 미국의 전기문발행센터(ABI)에서 발행하는 인명사전인, “20세기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0인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김 전 총장은 진화론을 전공했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온 누리 교회 초대 장로와 ”한국 창조 과학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주일마다 전국교회와 단체를 찾아 창조론을 강연했습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의 후손임을 설명하면서, 인류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 인류의 유일하신 구원자라고, 거듭, 거듭 강조하였습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자 중의 과학자가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강연을 하자,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말을 믿고, 크리스찬이 되는 놀라운 일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인류가 평화를 누리고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계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 되는 길 뿐이라고,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 한동대학교 개교당시, 초대 총장으로 취임해서, 양심 시험제도를 시행했는데, 이 제도는, 시험 감독 없이, 각자가 하나님의 선한 양심을 지키며 젊은 시절부터 정직한 습관을 들여서,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켜주려는 숨은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100% 영어 수업, 전교생 생활관 입소 등,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제도를 실행에 옮기기도 하였습니다.

김영길 총장은, <배워서 남 주자,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창의적 지식 교육과 함께, 정직, 성실 등 인성 교육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도 했습니다.

19년 동안, 4번 연임한 후에, 2014년 1월 총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유가족에 따르면,

<나는 죽어도 삽니다. 죽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기쁨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한동대학교 졸업생 박한결씨는, 총장님이 예배드릴 때, <I love you, God loves you>를 외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우리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보자>고 외치시던 총장님의 그 뜨거웠던 외침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훌륭한 세계적인 크리스찬 과학자가,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인간은 원숭이의 진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셨음을 외치며, 정직과 성실한 생활의 모본을 보여 주셨던 자랑스러운 한국인, 고, 김영길 총장님의 영전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박하영 아동의 어머니는, 베트남 출신으로, 아동이 태어나고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가출을 하였습니다. 현재, 베트남으로 돌아간 후에, 연락이 두절 된 상태입니다. 할머니는 고령의 연세로 아동을 양육할 수 없고, 아버지는 어린 아동을 키우면서, 근로활동을 할 수 없어, 하영아동은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하영이와 자주 왕래를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박하영 아동은 2020년 3월이면, 중학생이 됩니다. 조용한 성격이면서,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앉아서 하는 활동을 좋아합니다.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점토로 예쁜 모양을 만들기도 합니다. 친구들보다 리코더를 잘 연주할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싶다는 아동은 메이크업아티스트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살아있으면서도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삶에 적응해 보려고 애쓰는 하영이에게 교민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은 크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적은 물질이라고 망설이지 마시고, 교민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하영이의 장래에 큰 격려와 용기가 됨을 믿으시고,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아직 어린 생명이지만, 머지않아 여러분의 정성으로 놀랍게 사회에 기여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호서대학교를 설립한 강석규 박사가 그의 나이 95세 때, 외국어를 배우려고 학원을 찾았습니다. 주위사람들이, <굳이 이제 배워서 언제 써먹으려고 그러십니까?> 그럴 때마다,

<나도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해서 실력도 인정받고, 존경도 받으며 살았다네. 내가 65세 가 되어 은퇴할 때도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지! “이 정도 열심히 살았으면 됐다, 여유 있게 죽음을 준비하자, 라는 생각으로 편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 때로부터 죽지 않고 건강하게 30년을 넘게 살았네. 덤이라고 생각한 시간이 무려 인생의 삼분의 일이나 되었다네. 아무 의미도 없는 덧없는 삶을 30년이나 그냥 살았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애석하기만 하네. 나는 지금도 정신이 맑고 또렷하네. 내가 65 세로 은퇴할 때, 이렇게 95세 까지 건강하게 살 줄 알았으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네. 내가 지금 영어공부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일세. 지금부터 10년 뒤, 105세 생일 때, 하고 싶은 일을 미루다가 후회한 인생으로 슬퍼하지 않기 위해서일세.>

그 후, 강석호 박사는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후회 없는 삶의 모습을 보이다가, 103세의 나이에 평안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까지는 전력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참 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절대 늙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십시오! 당신은 반드시 승리를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20년 후에 당신은 저지른 일보다 저지르지 않은 일에 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항해를 떠나십시오! 미래는 현재 내가 하는 행동에 따라 결정됩니다. 꿈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더 훌륭합니다. 위대함을 꿈꾼다면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바로 지금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2020년 1월 24일, 1155호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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