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기억해야 할 인물 (10)

자연과학 창시한 베이컨 탄생 800주년

근대과학의 선구자 역할을 한 인물이 영국의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이다.

철학자이면서 자연과학자였던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한 후 파리대에서 강의를 했는데 특히 경험을 중시했다. ‘경이의 박사(Doctor Mirabilis)’로 불린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연역적 절차에 따라 추리·논증보다 관찰과 실험을 강조했는데 이 같은 탐구 방식은 이후 자연과학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최초의 자연과학자였던 그가 탄생한 시기에 대해 공식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저서에서는 탄생 시기를 1220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는 로저 베이컨이 탄생한지 800주년이 되는 해가 된다.

실험과학을 중시했던 근대 과학의 선구자 로저 베이컨

베이컨은 1240년대 파리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처음으로 강의했으며, 그의 스승 로버트 그로스테스트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연구했다.

성 아우구스티노 이래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시녀론에 입각하여 새로운 철학으로 기독교 교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신념 하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연금술, 수학, 시각 이론, 천문학, 점성술 등의 학문을 연구했다. 또한 다른 학문들이 줄 수 없는 가르침을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며, 논증 중심적인 스콜라 철학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경험학을 제창하였다.

동시대의 도미니코회 소속의 주교 성 대 알베르토가 그의 지적 라이벌이기도 했다.

이 시기는 과학과 종교, 철학과 신학의 경계가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기존의 교리에 어긋나는 이슬람 철학자들의 주장에도 관심을 보일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던 로저 베이컨은 도미니코회나 프란치스코회 모두에게서 경계받고 있었다. 결국 프란치스코회 총장이자 대표적 스콜라 철학자인 성 보나벤투라가 에티엔느 탕피에 파리 주교에게 교리에 어긋나는 학설을 받아들인 학파들을 고발하였고, 파리 교구가 그것들을 모두 단죄하는 바람에 로저 베이컨도 함께 프란치스코회에서 추방당했다. 그 뒤 무려 14년 동안이나 이탈리아 안코나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80세가 되던 해에 풀려났지만 2달 뒤에 사망하였다.

《장미의 이름》을 읽어보면 직접적으로 출현하지는 않아도 수도 없이 그의 이름이 나오는데, 설정상 주인공 아드소 수사의 스승인 윌리엄 수사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즉, 아드소 수사의 사조부 격이 되는 셈이다.

자동차의 존재를 가장 일찍이 예언한 사람이기도 하다(1250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과학과 근대 철학》에 언급되어있다). 노스트라다무스보다도 약 300년 정도 일찍 그 존재를 예언한 셈이다.

달력을 개선토록 한 베이컨

베이컨의 그의 :대저작“ 4부에서 당시 사용하던 달력인 율리루스 달력이 가진 오차를 지적하고 이를 수정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율리우스력은 로마의 시이저가 이집트 정복을 마친 직후부터 사용해오던 달력을 말한다.

율리우스력에서는 1년의 길이를 365.25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율리우스력의 1년은 실제보다 11분 14초 정도 짧았으므로, 125년이 지나면 하루가 부족한 현상이 있었다. 그 결과 니케아공의회가 열렷던 AD325년에는 춘분일이 3월 21일이었으나, 그때로부터 938년이 지난 1263년에는 춘분일이 약 9일 앞당겨져 3월 13일이었다.

베이컨은 “대저작”에서 이같은 오차를 수정해야 한다고 최초로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의 생전에는 고쳐지지 못하고 300년이 더 지나 그레고리 13세 교황 때인 1582년에야 그해 10월 5일을 10월 15일로 건너 뛰어 사용하도록 수정되었다.

이후부터 춘분일은 다시 3월 21일로 올수 있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된 달력을 그레고리력이라고 한다.

중요한 과학적 업적

로마 가톨릭교회는 1,000년이 넘도록 유럽의 모든 권력, 정치, 종교, 문화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베이컨은 교회가 금지하던 지식에 접근을 시도했던 근대 과학의 선구자였다. 그의 중요연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광학

베이컨은 “대저작”에서 광학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시각의 생리를 눈의 해부학적 구조와 뇌를 연관시켜 생각햇으며, 빛의 반사와 굴절현상, 거울, 렌즈에 대한 과학적 저븐을 했다.

흑색화약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년 전에 발명하여 폭죽놀이와 대포에 사용하던 흑색화약을 유럽에서는 베이컨이 그 성분을 밝혀낼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베이컨은 “대저작” 속에서 흑색화약은 초석, 숯가루, 황을 7:5:5로 호합하여 만든다고 밝혔다.

지구는 둥글다고 처음 추장

그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한바퀴 돌 수 있다”고 처음 주장하였다. 그의 생각이 증면된 것은 300년 후인 마젤란 시대에 이르렀을 때이다.

1267년 베이컨은 1266년에 클레멘스4세 에게 편지를 보내어 과학 교육과정의 개선과 교육기관에 실험실 증설에 대한 편지를 보냈다, 더 나아가 그는 교육과정의 전체적인 개편을 요구했다. 그리고 모든 지식을 포함한 백과사전을 만들것을 제안했다. 교황은 베이컨에게 그는 이미 이에 관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보내라고 하자, 베이컨은 <대저작(大著作 Opus Majus)>,<소저작(小著作 Opus Minor)>,<제3저작 (Opus Tertium)> 을 만들어 교황에게 보낸다. 하지만 교황은 이것을 받기 전인 1268년에 죽는다.

베이컨은 과학의 진보는 실험과 수학을 이용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저서를 몰수당했기 때문에 다른 학자들이 그의 업작을 거의 알지 못하고 말았다. 베이컨이 처음 주장했던 ‘실험과 수학‘의 중요성은 17세기에 이르러 유럽에 과학혁명시대가 왔을 때야 인정받게 되었다.

사진: 옥스퍼드대 자연사박물관에 설치된 로저 베이컨 상.

2020년 3월 20일, 1163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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