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기억해야 할 인물 (12 마지막 회)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탄생 100주년

스크린 속 어느 시골의 쓸쓸한 해변가. 파도가 두어 번 밀려갔다 들어오자 한 사내가 모래밭에 주저앉아 크게 울부짖는다. “난 외톨이야, 내겐 아무도 없어!”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던 카메라가 서서히 뒤로 물러서고, 이윽고 낯익은 영화의 주제가가 주위를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암전.

잠파노(앤소니 퀸 분)가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 분)를 추억하며 침묵할 때 세상은 그와 함께 숨죽였고, 그가 탄식하자 곧 그와 함께 절규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La Strada)>(1954)은 세계의 영화관객들에게 펠리니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젊은 영화거장이 탄생했음을, 그리고 네오리얼리즘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만 천하에 알렸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네오리얼리즘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페데리코 펠리니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는 분명 네오리얼리즘의 계보 속에서 작업을 시작했으면서도 선배들의 작품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전후 이탈리아 감독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감독이 되었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탈리아의 소읍 리미니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의 펠리니는 그림을 잘 그리는 청년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다음, 이곳 저곳 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캐리커처와 일러스트를 그려주던 펠리니는 우연한 계기로 당시 유명했던 코미디배우 알도 파프리치(Aldo Fabrizi)를 만나면서 그의 조수 겸 개그대본 작가가 되었다. 한편으로 글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론 계속 프로덕션 스케치를 해주던 펠리니가 정식으로 영화에 눈뜨게 된 것은 로베르토 로셀리니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펠리니는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 Roma, Citt Aperta>(1945) <파이잔 Pais> 등의 영화에 조감독이자 공동 각본가로 참여하면서 영화 만들기의 기본을 익혀나간다. 영화라는 작업이 도제적 전통에 계승되는 당시로서는 펠리니 역시 로셀리니의 주요 작품에서 단순한 조감독이나 각본가의 위치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최초의 작품들- <다양한 불빛 Luci del Variet (1950, Lattuda와 공동연출) <백인 우두머리 Lo Sceicco Bianco>(1952) 등은 분명 네오리얼리즘 전통 속에 포함되는 것이지만 선배들과는 사뭇 다른 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생과 예술에 대한 성찰을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주변의 동료들로부터 그는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펠리니와 네오리얼리즘

당시 이탈리아의 문화조류는 네오리얼리즘에 경도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부합되지 않는 작품과 작가들은 정치적, 미학적인 측면에서 부적절 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펠리니가 이와 같은 환경에서 영화를 시작했고 그의 초기작들이 네오리얼리즘 경향으로 분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처음부터 개인의 욕망과 내면적 갈등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어왔다. 주위의 비난에도 아랑 곳 없이 펠리니는 그가 서른네살이 되던 1954년, <길>을 완성시킨다.

<길>은 가장 정치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순수한 영화문법 – 네오리얼리즘의 자장 안에서 탄생하고 수련 받았으며 작업을 했지만, 그 문법적 틀을 고수하지 않았던 펠리니의 모습과 기묘하게 겹쳐진다. <길>의 등장인물들은 전후 이탈리아의 절박한 민중과 그들의 피폐한 삶을 대변하고 있으나, 이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개인의 본질적인 고독과 연민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네오리얼리즘이 추구하고자 했던 바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펠리니는 <길>을 통해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그리고 뉴욕 영화비평가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작가적 존재감을 외부에 알리게 된다. 세계는 이탈리아 영화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음을 직감했고, 50년 이후 서서히 쇠락하고 있던 네오리얼리즘의 기치는 결국 그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달콤한 인생> 그리고 <82분의 1>

<길> 이후, <속임수 Il bidone>(1955) 와 <카리비아의 밤 Le Natti di Caribia>(1956)을 통해 자신의 관심사가 현실이라는 외피에서 개인의 관념과 무의식의 세계로 완전히 이행했음을 알린 펠리니는, 뒤이어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달콤한 인생 La Dolce Vita>(1960) 과 <8과 1/2>(1963) 을 발표한다.

1960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바 있는 <달콤한 인생>은 퇴폐적이고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귀족들과 말초적인 기사만 써대는 황색언론, 그리고 그러한 타락상을 동경하는 대중들을 풍자하며 고발하는 로마의 풍경이자 대서사시였다. 거대한 예수상을 줄에 매달아 로마 하늘위로 날아가는 헬기와 그것을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으로 시작하는 <달콤한 인생>에서, 펠리니는 신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의 구원은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질문하고 나선다.

<8과 2분의 1>은 펠리니가 그간 작업한 작품들의 수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펠리니 자신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이자 그의 예술관과 고민들에 대한 일종의 변명과도 같은 영화이다. 창작력이 고갈되어 더 이상의 영화작업이 불가능해진 영화감독 ‘귀도’의 고민은, 시시각각 현실과 비현실의 벽을 넘나들며 환상의 형태로 전이된다. 상징과 사실들이 난무하는 듯 하면서도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8과 2분의 1>은 아카데미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린다.

이후 펠리니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회귀의 이야기들에서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혼돈을 끄집어내고, 이를 현실과 비현실의 간극 사이, 그 경계에 투영시키는 독특한 표현양식을 발전시켜갔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지나친 ‘개인화’의 과정은 늘 크고작은 논쟁을 야기시켰고, 평론가들은 70년대 이후 펠리니의 작품들을 일컬어 ‘자기패러디에 불과하다’ 는 악평을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룩한 일련의 성과물들과 ‘펠리니애스크’로 정의된 독특한 스타일은 페데리코 펠리니를 영화역사상 가장 중요한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있어 일말의 망설임이 없게 한다. 펠리니 특유의 창조력과 개인적 역사는 이미 하나의 전설이 되었으며, 인간이 느끼는 극적인 고독을 강조함으로써 영화라는 매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영화사적 의의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2020년 4월 3일, 1165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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