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속의 한국 문화재 (5)
함부르크 Museum am Rothenbaum(구 민족학박물관)과 한국문화재 ②

Museum am Rothenbaum 소장 한국문화재

1945년 이전의 유물수집

Museum am Rothenbaum은 현재 유물번호 상으로 2,711개에 달하는 한국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여러 점의 유물을 묶어서 하나의 번호만을 부여하기도 하기 때문에, 실제 소장품의 수는 2,711점이 넘는다.

그러나 박물관 내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부서의 전체 컬렉션이 40,000여 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반도 컬렉션은 비교적 작은 컬렉션이라 할 수 있다.

소장품 절반 가량의 출처는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트 마이어(Heinrich Meyer) 상사와 관련이 있다. 마이어 상사는 1883년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에서 성업했던 회사이다. 누구보다도 마이어 본인이 유물을 구입하였고 마이어 상사의 조선 지부를 책임졌던 로데(Hugo Rohde)선장과 자이츠 가족도 유물을 입수하였다. 로베르트 자이츠(Robert Seitz)는 마이어 상사 조선 지부의 초창기 직원이었고, 1885년에 박물관의 최초 한국소장품인 어린이 신발 한 켤레를 박물관에 기증했다. 마이어는 1895년 4월 동전 10점, 청자접시 3점, 백자접시 1점을 기증했다.

1906년 박물관 초대 관장이었던 게오르그 틸레니우스(Georg Thilenius) 가 마이어에게 조선에서 체계적인 유물 수집을 요청하였다. 이 때, 지침서로 타이프용지 5장 분량의 구체적이고 부분적으로 해설이 포함된 목록을 작성하였다.

틸레니우스는 목록 작성 시에 중국 소장품과 마이어에게 빌려서 본 마이어 개인 소장품 도록을 참조했다고 밝혔다. 그 후 마이어는 1907년, 1908년, 1909년에 많은 유물을 보내왔고, 박물관은 이를 구입하는데 부분적으로 고데프로이(Godeffroy) 재단의 재정적 후원에 도움을 받았다.

마이어 상사에서 유물 구입에 관한 계획과 실행 전반을 책임졌던 사람은 코넬스(Cornehls) 였다. 실제로 유물수집 작업은 위탁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와 관련하여 진수(한성독일어학교 교사)라는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한다. 유물구입 과정을 손 글씨로 기록해 놓은 메모지 2장을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메모지는 화살집 속에 채워져 있던 것으로, 이 메모지가 진수라는 사람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마이어의 수집품에는 회화, 전적, 청자, 칠기류 외에도 박물관이 요청한 바대로 대부분의 일상 생활용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규모는 직물류부터 무기와 자물쇠 및 말린 약재 그리고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된 끈과 줄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농기구와 못, 흉배, 인쇄활자, 떡살, 장난감, 공구 등도 볼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서적류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마이어 수집품에 빠져있는 서적분야는 지질학자이자 광물학자였던 칼 고트셰(Carl Gottsche) 교수 수집품의 강점이라 하겠다. 1888년부터 총 151점에 이르는 유물이 몇 차례에 걸쳐 박물관으로 들어왔다. 고트셰 수집품의 절반가량이 지도와 불교 서적이며, 지도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고트셰의 첫 번째 유물들이 들어오면서 박물관의 전체 한국소장품 수량의 절반가량이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갖춰지게 되었다. 1945년까지 소장품은 1,500여 점에 이르게 되었다.

1945년 이후의 한국 유물수집

2차 세계대전 이후 박물관의 유물 수집 활동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한국 유물수집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두번째 시기는 1970년대로, 박물관 부서장이었던 게르노트 푸루너(Gernot Prunner)에 의해서이다. 푸루너는 폭넓은 교양을 갖춘 연구자로 한국에 특별한 호감을 지닌 사람이기도 했다. 1976년, 유물 수집과 연구를 목적으로 대전 주변에 있는 계룡 지역 현지조사를 갔는데, 장철수 교수의 도움을 얻어 265점의 유물을 수집했다. 푸루너 수집품은 종교 분야와 관련이 있고 특히 무속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푸루너는 무속에 관한 관심을 당시 함부르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던 한국인 조흥윤과 나눴다. 조흥윤은 이미 무속인 이지산에 관한 현장조사를 통해 이 무속인 소유의 유물들을 구입해 놓은 상태였다. 푸루너는 이 유물들 중 몇 점의 회화를 구입하기 위해 박물관 후원회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조흥윤은 큰 규모의 유물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푸루너는 조흥윤을 박물관 직원으로 채용하여 한국유물의 많은 부분을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서적과 유물의 명칭을 박물관 유물카드에 기입하고 내용과 사용 용도를 설명해 놓기도 했다.

1980년, 푸루너는 조흥윤의 도움으로 한국 회화 분야의 복원처리팀을 초청했다. 김용복의 지휘 아래 복원처리팀은 반 년동안 박물관 동아시아부 회화작품들을 정리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은 족자로 표구했다. 이때 허련의 묵모란도를 발견하여 8첩 병풍 형식으로 표구한 사실은 가장 괄목할 만한 결과물이었다.

다음 호에서는 Museum am Rothenbaum의 한국문화재 컬렉션에 공로가 있는 인물들을 살펴본다.

그동안 한류를 통해 한국 문학, K-Ppo, K-Beauty, K-Drama 등 다양한 한국 문화가 독일에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2018년 기준 독일 내 한국 문화재는 총 1만876점. 일본,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우리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하다. 더욱이 독일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 규모가 유럽 국가 중 최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예술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기만 한 현실이다.

실제로 독일 박물관은 엄청난 양의 한국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문화재는 동아시아 미술품으로 광범위하게 분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및 중국 문화재에 밀려 학술적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국 문화재를 2000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베를린인류학박물관, 함부르크 Museum am Rothenbaum이 단 한 점의 한국 문화재도 전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듯 오랜 기간 한국 문화재는 그 가치가 발견되지 않은 보물 상태로 머물러 있다.

2020년 7월 17일, 1179호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