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속의 한국 문화재 (6)
함부르크 Museum am Rothenbaum(구 민족학박물관)과 한국문화재 ③

Museum am Rothenbaum 소장 한국문화재 기증자 및 수집가 소개 1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Museum am Rothenbaum 한국 컬렉션을 가능하게한 한국문화재 수집가와 기증자를 소개한다.


Heinrich Constantin Eduard Meyer(1841–1926) 상인, 독일주재조선총영사

함부르크민속박물관의 한국유물 소장에 가장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이는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 마이어였다. 마이어는 우리나라 외교관이 독일에 파견되기 이전, 조선 정부로부터 임명된 독일주재조선국총영사로서 맥이(麥爾) 혹은 매야(梅耶) 등으로 불렸다. 마이어는 1870년대부터 중국에서 무역업을 시작하여 천진에 마이어 무역회사(H. C. Eduard Meyer & Co.)를 세웠다.

당시 조선 정부는 독일로부터 실리적 지원을 얻기 위해 정치인이 아닌 기업인을 독일주재 조선총영사로 임명하기로 결정하면서 하인리히 마이어가 그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조선국총영사로 임명되자 마이어는 조선의 제물포(인천)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해 1887년 내한하였다.

조선 지부의 이름은 세창양행世昌洋行으로 하였으며 제물포에서 실무를 담당할 지부장으로는 칼 안드레아스 볼터(Carl Andreas Wolter 1858~1916)를 임명하였다.

. 마이어의 회사는 최초의 한국에 설립된 독일계 기업이었고 1905년까지 한국 유일한 독일회사이자 조선에 지부를 둔 4개의 서구무역회사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이어 상사는 묄렌도르프의 중개로 조선정부의 수입 이행권을 위임받았다. 조선이 수입한 물품에는 조폐기기, 서울, 부산 간 전신선 설치 장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의 을사조약으로 함부르크 주재 조선 영사관은 1905년 12월15일에 문을 닫았다.

마이어가 조선국총영사로 함부르크에서 실제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적어도 미술방면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기획하였다. 1889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한국 물품을 전시하였으며, 1894년에는 함부르크의 공예박물관에서 한국 유물전시회를 개최하였다.

현재 Museum am Rothenbaum에는 세 차례에 걸쳐 기증된 949개 이상의 마이어 컬렉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1차 기증은 함부르크공예박물관에서 한국유물 전시회가 열렸던 직후인 1895년 4월에 이루어졌다. 동전 10개, 청자 3점, 백자 한 점이 기증되었다. 이후 정확한 수량은 파악할 수 없으나 1907년 마이어는 자신의 소장품 가운데 상당량을 박물관에 다시 한 번 기증하였다.

1908년과 1909년에는 남은 소장품 전부를 함부르크민속박물관에 매매하였다. 마이어는 이후 고종 황제에게서 선물로 받은 담배상자가 기증품에 섞여 들어간 것을 발견하고 이를 되받아 가기도 하였다.

마이어 기증품 가운데 대표적 회화작품으로는 허련(許鍊 1809~1892)의 묵모란 8곡 병풍을 들 수 있다. 1909년 박물관에 기증된 이 작품은 1981년 함부르크민속박물관이 초청한 김용복에 의해 새롭게 병풍으로 표구되었다. 제시와 더불어 먹의 풍부한 사의성이 드러난 묵모란도는 허련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도자기로는 19세기 경 작품으로 보이는 <흑유자기>가 소장되어 있다. 흑유자기는 국내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예로 두터운 유약의 표면에 클로버 잎과 세 개의 단풍잎 문양이 자연스럽게 시문 되었다.

마이어 기증품 가운데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무속용구들이다. 현재 알려진 것으로는 무당이 사용하던, 삼신할매가 그려진 부채와 굿에 사용된 장구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탈춤에 사용되던 우리의 해학이 가득담긴 ‘옴중탈’ 역시 마이어 소장품 가운데 하나다.

Carl Christian Gottsche (1855~1909)

묄렌도르프의 청빙으로 조선의 지하자원을 조사하기 위해 1883년 입국한 독일의 광물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칼 크리스티안 고트셰는 수차례의 조사를 거치면서 다량의 조선지도를 구입하였다.

현재 Museum am Rothenbaum에 소장된 대동여지도는 그가 조선에서 수집한 대표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는 모두 23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각장은 높이가 30cm 정도이다. 낱장들에는 그 지역의 행정구역을 분류하는 표시와 봉화대, 창고 등이 표시되었으며, 이들을 전후좌우가 맞도록 배치하면 조선의 전체 지도가 만들어진다.

1884년 4월부터 12월까지 당시 조선의 8도를 두 차례 기행하였다. 이 때 고트셰는 지질학적 토양상태뿐 아니라 동, 식물계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하였다. 1885년 독일로 귀국한 고트셰는 1887년까지 베를린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조선에서의 연구결과를 평가, 활용하는 작업을 이어 나갔고, 조선의 지질학적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고트셰가 수집한 한국유물 중 박물 표본은 생전에 이미 현 함부르크 대학 광물학박물관으로 보내졌다. 서적과 지도는 고트셰 사후 3년 후인 1909년에 미망인 베르타 고트셰가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 매매하였다. 그 중에는 묄렌도르프로부터 선사 받은 23권으로 된 대동여지도 초기 인쇄본이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도 박물관에는 고트셰가 제작한 한국광물분포도와 걸 수 있도록 만든 한국지도가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에 고트셰는 자신의 여행경로를 기입해 두었고 자신의 수많은 강연회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2020년 7월 24일, 1180호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