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속의 한국 문화재 (8)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GRASSI Museum für Völkerkunde zu Leipzig) 한국문화재 ➀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에는 3000 여 점의 한국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GRASSI Museum für Völkerkunde zu Leipzig)은 독일 작센 주 라이프치히 시내에 있다. 라이프치히는 천년의 전통이 있는 동부 독일의 대도시이며, 교육·문화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근대시기의 산업 발전으로 도시(라이프치히)가 부유해지면서 문화적으로도 윤택해졌고, 이러한 산업과 문화기반이 현재의 라이프치히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은 경제·문화적으로 윤택했던 19세기 후반 라이프치히의 자본가들이 세계의 민속문화를 수집하기 위해 1869년에 만든 박물관이다. 이들은 세계 각지에 나가있는 독일 외교관이나 상인을 통하여 외국의 민속·문화자료를 수집했고, 이 자료들이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품의 토대를 이루었다. 또한, 이러한 수집과정 속에서 현재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문화재도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보관 중인 우리나라 문화재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3000점에 달한다. 대부분 19세기쯤 우리나라를 드나들었던 외교관, 상인 등이 수집한 근대기 유물이다.

또한 동독시절 북한에서 기증받은 민속유물도 있다. 박물관은 한국문화재를 소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규모 상설전시로 지속적인 소개를 하고 있다.

파악된 유물은 근대기 한국인들의 일상용품이 많다. 특히 다양한 갑주와 무구(武具), 조선시대 나졸들이 입었던 나장복(羅將服)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복식, 목공예품, 회화, 악기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문화재는 고종의 정치, 외교고문을 지냈던 묄렌도르프(1847∼1901)가 1883∼1884년에 기증한 유물(290여점)과 함부르크의 상인 쟁어로부터 1902년에 구입한 유물(1250여건)이 대부분이다. 기증, 구입 연도가 분명해 편년자료로 활용이 가능한 유물들이며 수집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흔적이 남아 있거나 시장에서 판매되던 상태 그대로다.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에 처음으로 들어온 아시아유물은 중국과 일본의 유물이다. 한국유물 수집은 묄렌도르프의 기증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박물관의 초대관장은 옵스트인데, 그가 묄렌도르프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유물 수집을 부탁했다고 한다. 묄렌도르프의 한국유물 수집 목적은 한국생활 시 한국의 생활상을 유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점과 수집 유물들이 독일과 유사하여, 한국인들도 독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9세기 말 유럽에는 아시아유물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들은 쟁어, 사스만 같이 외국 유물들을 전문적으로 구매하고 판매하는 상인들이었다.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은 근대산업 발전과 함께 부를 축적한 신흥 시민들이 주도되어 만든 박물관이다. 이러한 이유로 라이프치히그라시박물관은 유물 수집 대상에 대한 선입견이 적었다.

쟁어는 처음에 소장유물이 분산구매 되도록 시도하였으나, 다른 박물관들은 그의 소장품을 구입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문화재를 확대하길 바라던 신흥시민의 노력으로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은 쟁어의 유물을 일괄수집하게 되었다.

쟁어 이후 한국유물 수장은 1958년에 북한으로부터 대량으로 들어온 것이 전부이고, 그 이후는 간헐적으로 수집되었다.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의 민속 유물의 전체적인 숫자로만 판단을 한다면 다른 나라 관련 소장품보다 한국소장품은 지역별 컬렉션 중에서 작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약 2,100개에 달하는 유물 번호로 치면 독일 내에 있는 한국 유물들 중 가장 큰 컬렉션에 속한다.

묄렌도르프가 1883∼1884년 박물관과 교환한 서신들을 보면, 모두 15개 항목으로 나눠진 목록표가 등장한다. 항목에는 무기류나 필기구는 물론이고 주거용품 화장용품 주방기구 심지어 아이들 장난감도 올라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임소연 학예연구사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시장 좌판을 싹 쓸어가거나 아예 공방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유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유물 가운데는 현재 국내에선 찾을 길 없는 독특한 유물도 하나 있다. 19세기 서민이 발화도구로 썼던 인광노(引光奴)다. 기다랗고 얇게 자른 나무 끝에 백색 유황을 바른 성냥의 일종이다. 이익(1681∼1763)이 집필한 성호사설에는 “밤에 급하게 등불을 켤 때 즉시 불꽃이 일어나게 했다”며 인광노를 설명한 대목도 나온다. 일제강점기 공장제 성냥이 들어오며 자취를 감췄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1950년대 북한 유물도 1000점가량 된다. 과거 동독이었을 때 북한 정부가 교류 차원에서 보내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공산품이라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당시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는 사료들이다.

1182호 30면, 2020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