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11)
베를린장벽의 붕괴로부터 독일통일까지 ③

베를린 장벽 붕괴 전까지 동독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국민들의 개혁요구에 시달리던 반면 동독은 사회주의권에선 소련에 이어 2위의 경제 강국으로 발전한 선진 복지국가로 통했다. 소련이 버티고 있는 한 동독이 무너질 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동서독은 예기치 못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 라는 사건을 통해,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독일 통일을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이루어 냈다.

비스마르크가 말했던 “신의 외투자락이 흔들릴 때, 그 옷자락을 정치가는 재빨리 잡아야 한다”는 경구를 독일 정치인들은 놓치지 않고 통일로 이를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부터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까지 긴박했던 1년간의 중요한 역사적 과정을 되짚어 본다.


동서독, 통일조약(1990년 8월 31일)

양국 협상 대표인 볼프강 쇼이블레(Wolfgang Schäuble) 서독 내무부장관과 귄터 크라우제(Günther Krause)총리실 정무차관은 1990년 8월 31일 ‘독일 국가 통일 완수에 관한 조약(Vertrag zwischen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und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über die Herstellung der Einheit Deutschlands)’에 서명하며 동서독 통일작업을 마무리하였다.

이 조약은 1990년 9월 20일에 동독과 서독 의회에서 각각 찬성 299표, 반대 80표, 기권 1표 그리고 찬성 442표, 반대 47표, 기권 3표로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의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동독의 각 주는 신연방주들의 개별 가입에 따라 서독으로 통합되었고, 이외에도 동독의 자산 및 부채를 통일독일이 승계한다는 것과, 베를린은 통일과 더불어 법률을 통해 하나의 주가 된 동시에 통일독일의 수도로 확정되었다.

통일조약의 부록 부칙? 1장에는 연방공화국(서독)의 법규가 극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입 지역에서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동독의 민법이나 가족법과 같은 법률들은 즉시 효력을 상실하였다. 개별적인 규정들은 주 차원에서 존속하였다.

2+4 조약 (1990912)

‘독일과 관련한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Treaty on the Final Settlement with Respect to Germany-2+4조약)’은 1990년 9월 12일 모스크바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4개국과 동·서 독일 사이에서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 겐셔 외무장관, 드 메지에르 동독 외무장관 대행, 베이커 미 국무장관, 허드 영국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과 뒤마 프랑스 외무장관이 서명했다.

‘2+4조약’은 전문(前文)과 10개조로 되어 있다. 제1조는 통일된 독일의 국경선에 관한 내용이고, 제2조에서 6조까지는 독일의 안보정책에 관한 내용들이다. 2+4조약의 핵심 내용은 독일의 주권을 규정한 제7조이다. 이 외에 조약 비준(제8조), 조약효력 범위(제9조)와 조약 원본(제10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4 조약의 결과로 독일은 조약에 서명한 4개국으로부터 베를린과 함께 국가의 주권을 완전히 되찾았다. 이로 인해 통일 독일이 자신들의 동맹을 결정할 권한을 갖게 되었으며, 2+4 회담 당시 소련과 마찰을 빚던 독일의 나토 잔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이 1994년 동독 지역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동독 지역의 방어는 이전과 같이 소련군이 하였으며, 소련군의 주둔과 철수에 관한 비용을 서독 정부에서 지원하였다.

독일군의 규모는 370,000명으로 제한되었다.

또한 독일은 핵, 생물, 화학무기에 대한 사용과 생산이 금지되었고, 핵확산금지조약이 전체 독일에 대해 적용되었다. 동독 지역과 베를린에는 외국군, 핵무기 및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무기가 금지되었다.

미래 독일의 영토 분쟁을 제거하기 위해 독일의 국경을 확실히 하였다. 독일의 영토는 동독, 서독의 영토 및 베를린으로 결정되었으며, 1990년 11월 14일 폴란드와 기존의 오데르-나이세선을 국경으로 인정하는 국경 조약을 맺음으로써 영토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독일통일(1990년 10월 3일)

1990년 10월 3일 독일분단 종식을 선언과 함께, 독일 통일이 선포되었다.

독일 전역에서는 통일을 자축하는 축제가 펼쳐졌다. 이튿날인 10월 4일에는 베를린 제국의사당에서 최초의 전독일의회가 개최되었다. 전독일의회에는 구동독 인민의회 의원 144명도 참석하였다.

동독지역은 1990년 7월 22일 인민의회가 채택한 법률에 따라 14개 구(Bezirk)가 폐지되었으며 5개 주(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브란덴부르크 주, 작센 주, 작센안할트 주, 튀링겐 주)가 신설되었다. 이 법률은 1990년 10월 3일 독일의 재통일과 함께 시행되었으며 1990년 10월 14일을 기해 주 정부가 신설되었다.

12월 2일에는 통일독일 의회와 정부 구성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콜 총리가 속한 기민련(CDU)/기사련(CSU)이 43.8%를 얻어, 33.5%를 득표한 라폰텐(Lafontaine)의 사민당(SPD)을 제치고 통일 독일의 집권당이 되었고, 콜 총리는 이로서 최초의 통일독일의 총리가 되었다.

한편 동서독 통일조약에 명시된 베를린으로의 수도이전은 많은 난항을 겪었다. 기존의

임시수도였던 본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1991년 6월 20일, 연방의회에서 12시간이 넘는 마라톤 토론 끝에 337:320의 근소한 차이로 베를린으로 수도 이전이 결정되었다.

통일 독일은 이 동의안에 따라 이후 4년 이내에 하원과 대통령 총리실 그리고 정부를 베를린으로 이전하게 되었는데, 실제로는 1999년에야 정부기관의 이전이 완료되었다. 독일연방의회(Bundestag)도 베를린으로 이전하여, 1999년 4월 19일 첫 회의를 가지며 베를린 수도 시대를 열었다.

1183호 31면, 2020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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