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22)
국가안전부(Stasi) 문서 공개와 과거청산 (1)

교포신문사는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이를 위해 지면을 통해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6월 첫 주부터 연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 주

국가안전부(Stasi) 문서 공개와 과거청산 (1)

통일 후 독일의 과거청산은 국가안전부(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일명 슈타지(Stasi)로 불리는 동독 비밀 정보기관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국가안전부는 1950년 국내외의 적으로부터 동독을 방위하고 사통 당의 정치노선으로부터 이탈하는 모든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 되었다. 창설 당시 정식 요원은 1천 명에 불과했지만, 끊임없이 확장을 거듭해 1989년에는 9만 5천 명의 정보 요원과 약 18만에 달하는 비공식 정보원(Inoffizielle Mitarbeiter, IM)을 보유한 거대한 국가기구로 성장했다.

국가안전부는 사통당의 “방패와 창”으로 동독 사회 전반을 샅샅이 감시함은 물론 체제에 순응하지 않거나 저항하는 동독인을 탄압함으로써 사통당 독재 체제 유지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국가안전부는 동독 독재체제의 청산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었다. 통일 후 국가안전부가 남긴 문서가 공개되어 사통당 정권과 국가안전부가 자행한 억압의 실상이 낱낱이 공개됨에 따라 과거청산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 기관의 문서는 30년이 지난 후에 공개되며, 더욱이 비밀 정보기관의 문서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동독 국가안전부 문서는 어떻게 통일 후 곧바로 공개될 수 있었을까?

우선 동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서 공개의 유리한 전제 여건을 형성했다. 또한 나치 파국 이후 나치 과거청산이 본격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점에 대 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사통당 독재의 유산은 지체 없이 청산하려는 독일 사회의 의지가 강했다.

문서 확보와 국가안전부 해체

기본적으로 국가안전부 문서가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동독 시민들의 힘에 의한 것으로, 민주화 혁명의 성과이다. 1989년 가을에 시작된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1989년 10월 18일 동독 최고 지도자인 호네커가 당 총서기 직을 비롯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고, 11월 7일에는 동독 정부가 총사퇴했다. 이어서 한스 모드로우(Hans Modrow)가 이끄는 정부가 출범해 억압적인 동독 체제의 개혁을 약속했고, 국가안전부를 대폭 축소하여 비밀 정보기관 고유의 주 업무인 방첩에 전념하는 국가안전국(Amt für Nationale Sicherheit)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가안전부 국장이 된 볼프강 슈반니츠(Wolfgang Schwannitz)는 기존 조직을 그대로 유지시키며 개혁 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국가안전부 범죄의 치부를 드러내는 증거 자료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1989년 말 부터 1990년 초에 이르기까지 사통당 최고위층과 핵심 간부급에 관한 문서 들은 대다수가 파기되었다.

약속된 국가안전부 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불만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문서 파기 소식까지 접하게 된 동독 시민들은 1989년 12월 4일 에어푸르트를 필두로 1990년 1월에 이르기까지 동독 각 지역의 국가안전부 건물을 점거했다. 이러한 신속한 대응 덕분에 문서를 비롯한 국가안전부의 다양한 자료들이 완전히 파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동독 시민들은 국가안전부/국가안전국의 해체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따라 1989년 12월 8일 모드로우 정부는 40년 간 사통당의 충실한 오른팔이었던 국가안전부의 폐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해산 작업은 로타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ère) 정권에 의해 진행되었다.

1990년 5월 16일 지역별 대표 186명으로 구성된 국가안전부 해체 위원회가 내무부 산하에 설립되어 해체에 필요한 실무 작업을 진행했고, 1990년 9월 25일에 국가안전부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동독 시민의 용기 있는 개입 덕분에 확보할 수 있었던 자료는 거리로 환산할 경우 총 111km에 달하는 문서와 색인카드, 47km에 달하는 마이크로필름 문서, 170만 장이 넘는 사진 자료, 3만개에 가까운 영상 및 음향 자료 등이다. 파기된 문서의 양을 약 25km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하니 국가안전부가 남긴 자료는 실로 엄청난 규모에 달한다.

문서 공개에 대한 찬반논쟁

그러나 국가안전부의 범죄를 밝혀줄 증거 자료들을 사수했다는 기쁨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회는 곧 문서 공개를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로 여론이 갈라져 열띤 논쟁에 휩싸였다. 사회 일각에서는 국가안전부의 불법 행위는 물론 비공식 정보원의 신상, 그리고 이들이 행한 감시 및 염탐 기록을 담고 있는 문서의 공개로 야기될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우려해 공개를 반대했다.

무엇보다 문서가 공개될 경우 피해자들이 누가 자신을 감시하고 염탐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겪은 고통의 주요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마찰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드 메지에르는 심지어 문서가 공개되면 살인까지 야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에 문서 공개 찬성자들은 정권 범죄의 피해자들이 그들의 삶에 국가안전부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알 권리가 있고, 국가안전부가 자행한 모든 불의와 억압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위해서라도 문서는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과거 사통당 정권의 억압적 지배 체제에 반기를 든 체제 비판 세력이 이러한 입장을 대변했다. 예컨대 체제 비판적 성향의 개신교회 목사이자 훗날 국가안전부 문서 관리청의 수장, 그리고 독일 연방대통령에 오른 요아힘 가욱(Joachim Gauck)은 과거의 치부를 드러내고 이와 비판적으로 마주하는 것이 동독이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열띤 공방전 속에서도 문서 공개를 통한 과거청산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더 우세했다. 일례로 1990년 4월 슈피겔지(Der Spiegel)가 동독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86%가 사통당 정권 범죄의 피해자들이 문서를 열람할 권리를 가져야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러한 여론에 부응해 동독 인민의회는 1990년 8월 24일 국가안전부를 정치적, 역사적, 사법적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할 것을 골자로 하는 ‘구 국가안전부 / 국가안전국 개인 관련 자료의 보존과 이용법(Gesetz über die Sicherung und Nutzung der personenbezogenen Daten des ehemaligen Ministeriums für Staatsicherheit / Amtes für Nationale Sicherheit)’을 가결하고 문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1200호 31면, 20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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