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25)
국가안전부(Stasi) 문서 공개와 과거청산 (2)

국가안전부(Stasi) 문서 공개와 과거청산 (2)

동독 인민의회는 1990년 8월 24일 국가안전부를 정치적, 역사적, 사법적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할 것을 골자로 하는 ‘구 국가안전부/국가안전국 개인 관련 자료의 보존과 이용법(Gesetz über die Sicherung und Nutzung der personenbezogenen Daten des ehemaligen Ministeriums für Staatsicherheit/Amtes für Nationale Sicherheit)’을 가결하고 문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1990년 여름 동서독 정부는 통일 조약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 법을 통일 조약에 포함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안전부 문서를 독일 연방 문서고에 넘기기로 합의했다. 이는 향후 30년 간 문서 열람이 불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결정은 양 정부가 통일 후 직면하게 될 혼란을 최소화하고, 동서독의 사회 통합을 순조롭게 달성하기 위해 국가안전부 문서를 공개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지극히 정치적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구독일인민 공화국 국가안전부 문서 처리법 제정

민주화 혁명의 구심점 역할을 한 동독 민권운동가들은 즉각 이에 반발 했다. 이들은 문서를 공개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사통당 정권이 자행한 범죄를 은폐하고 주요 책임자를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동독 정권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자료인 국가안전부 문서를 공개하지 않으면 희생자들이 보상 및 명예 회복을 청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자 이들은 1990년 9월 4일 동베를린의 국가안전부 총본부 건물을 점거하고 문서 공개를 요구 하는 시위와 단식 농성을 전개했다. 동독 인민의회도 통일 조약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양 독일 정부는 이러한 압력에 굴복해 1990년 9월 18일에 재협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 통일 후 동독 인민의회가 제정한 법을 바탕으로 국가안전부 문서 관리법을 제정해 문서를 공개하고, 이에 필요한 모 든 업무를 관장하는 전담 기관을 설립한다는 내용이 통일 조약에 추가되었다.

결국 국가안전부 문서를 파기로부터 지켜낸 것도, 통일 후 문서 공개를 통한 과거청산의 토대를 마련한 것도 모두 동독 민주화 혁명의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통일 후 숱하게 대두된 ‘승자의 심판론’, 즉 서독이 패망한 동독을 심판하기 위해 국가안전부 문서 공개를 강요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통일 조약에 명시된 대로 독일 연방 의회는 1991년 12월 ‘구독일인민 공화국 국가안전부 문서 처리법(Gesetz über die Unterlagen des Staatssicherheitsdienstes der ehemaligen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을 제정했다.

국가안전부가 남긴 방대한 문서와 기타 자료 공개 에 대한 세부 규정을 담고 있는 이 법은, 우선 모든 사람이 자신에 관한 문 서가 존재하는 한 이를 열람할 수 있다는 공개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둘째, 문서 공개에 따라 국가안전부가 불법적으로 수집한 개인정보가 누출되어 당 사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개인 정보 및 인권 보호를 의무화했다.

따라서 개인 관련 문서는 당사자만이 열람할 수 있고, 그 안에 언급된 제3자에 대한 정보 역시 철저히 보호된다. 셋째, 문서 처리법은 문서 공개를 통해 국가안전 부의 실체를 역사적, 사법적, 정치적 측면에서 철저히 조명할 수 있도록 지원 한다는 목표를 세움으로써 사회주의 독재청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 했다.

구동독 국가안전부 문서관리 연방관청 출범

문서 처리법의 제정과 더불어 1992년에는 행정 업무를 담당할 ‘구동독 국가안전부 문서 관리 연방관청(Der Bundesbeauftragte für die Unterlagen des Staatssicherheitsdienstes der ehemaligen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BStU)’이 발족했다. 이 관청은 현재까지 국가안전부가 남긴 문서 및 기타 자료에 대한 처리 권한을 지닌 유일한 기관으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것을 막고 외부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받았다. 베를린에 본부가 있고, 신연방주 14 곳에 지부를 두고 있다. 즉 베를린 본부가 총체적으로 문서 처리 작업을 관 할하되 지역별로 지부 관청을 두어 해당 지역민이 보다 신속하고 편리하게 문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관청의 임무는 첫째, 방대한 규모의 문서를 열람이 가능한 상태로 분류 및 정리하고, 파기된 문서를 복원하는 것이다. 둘째, 문서 열람 신청자들에게 문서 열람에 필요한 제반 절차를 안내하고, 정권 범죄의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기관의 역할도 수행한다. 셋째, 관청 산하에 교육·연구부를 두어 국가안전부와 동독사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꾸준히 출판하고, 각종 전시회 혹은 강연회를 열어 국가안전부의 범죄 행위를 알리고, 이를 토대로 독일인들의 민주의식을 함양하는 정치, 역사교육도 시행하고 있다.


교포신문사는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이를 위해 지면을 통해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6월 첫 주부터 연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 주

1201호 31면, 2021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