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26)
국가안전부(Stasi) 문서 공개와 과거청산 (3)

국가안전부(Stasi) 문서 공개와 과거청산 (3)

동독 인민의회는 1990년 8월 24일 국가안전부를 정치적, 역사적, 사법적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할 것을 골자로 하는 ‘구 국가안전부/국가안전국 개인 관련 자료의 보존과 이용법(Gesetz über die Sicherung und Nutzung der personenbezogenen Daten des ehemaligen Ministeriums für Staatsicherheit/Amtes für Nationale Sicherheit)’을 가결하고 문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통일 조약에 명시된 대로 독일 연방 의회는 1991년 12월 ‘구독일인민 공화국 국가안전부 문서 처리법(Gesetz über die Unterlagen des Staatssicherheitsdienstes der ehemaligen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을 제정했다.

개인적 차원의 청산

국가안전부 문서는 1992년 1월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문서 공개가 시작되자 약 60만 건의 열람 신청이 쇄도하며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국가안전부가 남긴 방대한 문서는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 과거사 규명에 이용되고 있다. 동독 정권 범죄의 피해자들은 문서 열람을 통해 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감시하고 탄압했는지, 동독 시절에 자신이 왜 이유도 모른 채 사회적 불이익이나 따돌림을 겪어야 했는지 등의 과거사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문서 속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국가안전부의 불법 행위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안전부 문서는 의문사, 실종과 같이 미해결된 사건을 규명할 수 있는 단서도 제공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안전부 문서는 사통당 정권의 피해자들에 대한 물질적 보상과 명예 회복이라는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국가안전부 문서를 토대로 과거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사법 피해 사례를 밝혀 해당 판결을 무효화하고 해당자들 을 범법자 신분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었다.

나아가 국가안전부 문서는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컨대 피해자들이 국가안전부가 자행한 고문이나 비인간적 수감 환경 등으로 인해 입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때 이를 중요한 증빙자료로 이용되었다. 또한 동독에 집과 토지 등 재산을 남겨두고 온 이탈주민의 재산권 주장과 보상 청구도 국가안전 부 문서의 도움으로 보다 용이해졌다.

일례로 동독 정권은 1970년대 이후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고 서독으로의 이주 승인을 요구한 동독인들에게 종종 이주를 허락했는데, 이 경우 최대한 빨리 동독을 떠나야 했다.

때문에 이들은 집과 토지는 물론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남겨 두고 왔다. 동독 정권은 이러한 이탈 주민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처분해 공공 자금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보고가 담긴 국가안전부 문서는 동독이탈 주민의 재산 손실을 사정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안전부 문서는 피해자들의 연금 산정에도 참고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들은 억울하게 징역을 살았기 때문에 취업 활동 기간이 일반인 보다 짧아 연금 수령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기간을 근무 연한에 포함시킴으로써 연금 산정 시 다소 혜택을 받게 했는데, 국가안전부 문서는 이러한 과정에서 증빙 자료 역할을 하였다.

사회적 차원의 청산

국가안전부 문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도 과거청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는 우선 사회 주요 분야에서 국가안전부와 연루된 동독인을 가려내는데 필요한 증거 자료로 이용되었다.

신연방주가 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적 시민 사회로 새 출발하기 위해서는 동독 정권의 지시 하에 국가안전부가 자행한 범죄에 적극 가담했거나 협조한 동독인들을 사회 각 분야, 특히 공직 분야에서 걸러내는 작업이 필수과제였다.

정보원으로 밝혀지면서 독일 사회 이에 따라 통일 후 신연방주의 행정, 정치제도가 새롭게 정비되는 과정에서 경찰, 교사, 사법 공무원, 시청 직원 등 공직 종사자들의 재임용 및 신규 임용 시 이들의 과거 전력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공직은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분야의 종사자, 예컨대, 의회 의원, 공증 인, 변호사, 종교계 인사, 주요 기업 이사회 임원 및 경영인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안전부 문서는 심사 대상자가 국가안전부의 협력자였는지를 밝혀주는 증거 자료의 역할을 했다.

그런가 하면 국가안전부 문서는 과거 사통당 정권이 자행한 정치적 범죄와 책임의 소재를 밝히는 사법청산에도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동독 시절에 국가안전부가 관여하지 않은 영역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국가안전부 문서는 정권 범죄에 대한 수사 및 재판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또한 국가안전부 문서는 과거청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구와 교육에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40년 간 유지된 동독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독일인에게 독재의 정치적 메커니즘과 억압적 정치현실을 알리는 것이 필수 과제이다.

이를 위해 국가안전부 문서 처리법은 매스컴 종사자와 연구자에게도 문서 열람을 허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통일 후 독일 언론인들은 신문과 잡지를 통해 국가안전부의 실체와 사통당 독재의 양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방송사들은 TV 및 라디오 교양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학계 연구자들은 국가안전부 문서를 분석해 동독 독재 체제의 구조와 억압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연구 성과를 배출했다.

이상을 통해 볼 때 통일 후 공개된 국가안전부 문서는 개인적, 사회적 측면에서 사통당 독재청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포신문사는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이를 위해 지면을 통해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6월 첫 주부터 연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 주

1202호 31면, 2021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