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27)
국가안전부(Stasi) 문서 공개와 과거청산 (4)

국가안전부(Stasi) 문서 공개와 과거청산 (4)

동독 인민의회는 1990년 8월 24일 국가안전부를 정치적, 역사적, 사법적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할 것을 골자로 하는 ‘구 국가안전부/국가안전국 개인 관련 자료의 보존과 이용법(Gesetz über die Sicherung und Nutzung der personenbezogenen Daten des ehemaligen Ministeriums für Staatsicherheit/Amtes für Nationale Sicherheit)’을 가결하고 문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통일 조약에 명시된 대로 독일 연방 의회는 1991년 12월 ‘구독일인민 공화국 국가안전부 문서 처리법(Gesetz über die Unterlagen des Staatssicherheitsdienstes der ehemaligen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을 제정했다.

동독만의 문제에서 전 독일적 문제로 통일 후 국가안전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활발한 과거청산 작업이 시행되어 왔지만 서독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이를 동독지역만의 문제로 보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국가안전부는 동독인만을 상대로 감시와 정치공작을 시행하지 않았다. 국가안전부는 서독에 스파이를 침투시켰고, 서독인을 포섭해 공작원으로 이용했으며, 서독 주요 인사들의 전화를 도청하기도 했다. 요컨대 서독도 국가안전부의 활동 범위에 속했고, 이로 인해 서독 역시 국가안전부의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2000년 봄에 발생한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의 정치 스캔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독일 사회는 콜 총리가 정치자금을 은밀하게 모금하고 관리했다는 스캔들로 떠들썩했고, 연방 의회의 진상 조사위원회와 검찰은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진상 규명이 명쾌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민사당(PDS)은 슈타지 문서의 공개를 요구했다. 과거 국가안전부가 콜 수상의 집무실과 개인 전화를 도청했기 때문에 약 7천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가 존재하니 이것을 수사 자료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기화로 슈타지 문서 공개 논쟁은 동독에서 서독으로 확대되었다.

당시 의회 조사위원회는 사건 규명을 위한 참고 자료로 콜에 관한 도청 녹취록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콜은 국가안전부 문서 처리법 5조, 즉 문서 속의 정보로 인해 당사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경우 문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비르틀러 관청에 자신에 대한 문서를 공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비르틀러 관청은 일반 개인이 아니라 당대에 주요한 영향력을 가진 공인의 경우 반드시 보호해야 할 정보를 누출하지 않는 한 그 에 관한 문서를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한 문서 처리법 32조를 근거로 이에 맞섰다.

사실 가욱과 비르틀러 관청은 이전까지 이 규정을 토대로 구 동독 사회, 정치 분야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문서를 언론이나 학계에 공개해 왔다. 결국 콜은 2011년 11월 베를린 행정 법원에 자신에 관한 기록이 학계 및 언론에 개방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콜의 이러한 행동은 비르틀러 관청과의 법적 소송 뿐 아니라 열띤 사회적 논쟁을 야기했다. 콜과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콜 역시 국가안전부 감시의 희생자임을 강조하며 개인의 인격권 보호를 주장했다. 이에 맞서 비르 틀러 관청과 독일 학계는 독일 수상을 세 차례나 역임한 콜이 결코 일개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관한 문서를 사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 정치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지도적 인물의 문서를 공개하지 않으면 역사 연구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욱이 사생활에 관한 내용은 어차피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문서가 공개되어도 콜의 인격 권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년간의 공방전 끝에 연방 행정 재판소는 2004년 6월 23일 개인의 인격권을 우선시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고, 그에 따라 콜 관련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국가안전부 문서의 파급력이 결코 동독에 국한될 수 없음을 보여준 또 다른 예는 로젠홀츠 자료(Rosenholz-Dateien)이다.

미국 CIA는 민주화 혁명으로 인한 동독의 정치적 대변혁의 혼란을 틈타 슈타지에 협력한 해외첩보원 5만 명의 신원이 담긴 문서를 비밀리에 입수했다. 이를 되찾기 위해 독일 정부는 ‘로젠홀츠’로 명명된 작전 하에 미국과 오랜 협상을 벌였다. 결국 미국은 2003년 문서를 복사한 CD 318개를 독일에 넘겨주었다.

이는 서독에 거주하면서 국가안전부 스파이로 활동했던 사람들에 관한 자료로, 약 3천 명의 명단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약 50%는 서방 국가에서 활동한 국가안전부 정찰 총국(Hauptverwaltung Aufklärung)의 비공식 정보원으로 밝혀졌고, 360명 이상이 유죄 선고를 받았으며, 63명이 징역을 선고 받았다.

반면 구동독 주민은 1995년 연방 헌법 재판소 판결에 따라 대서방 첩보 활동에 대해 예외적인 경우에만 처벌을 받았는데 해당자는 23명에 불과했다. 2003 년에 공개된 로젠홀츠 자료는 국가안전부가 서방에서 어떠한 목적을 추구했 고, 어떠한 인물과 방법을 동원했으며, 그 성공 여부는 어떠했는지 등 지금까 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문제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국가안전부 문서를 통해 과거청산이 동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이 드러나자 튜링겐주 총리 디터 알트하우스(Dieter Althaus)는 서독의 모든 정치인과 관료를 대상으로 슈타지 협력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지금까지 이 문제는 동독인에 국한해 조사되고 공개되었는데, 사회정의 차원에서 볼 때 서독 정치인과 관료도 검증하여 양 지역에서 동일하게 과거청산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신연방주 정치인들이 대부분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는 의견을 표명한 반면 구연방주에서는 니더작센주를 제 외한 모든 주가 관망에서 거부에 이르는 입장을 취했다. 서독은 통일 이후 10년 넘게 슈타지 문제로부터 자유로웠지만, 로젠홀츠 문서로 인해 서독 역시 동독의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과 더불어 국가안전부 문제가 갖는 전 독일적 차원이 드러나게 되었다


교포신문사는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이를 위해 지면을 통해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6월 첫 주부터 연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 주

1203호 23면, 2021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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