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28)
사회문화적 청산 (1)

과거청산은 일차적으로 과거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목표를 두지만 궁극 적으로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 즉 과거에 발생한 과오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밝혀 또 다시 유사한 상황이 오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면역력과 비판의식을 함양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과거청산 과정에서 규명된 진상은 교육과 계몽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더욱이 사법적 청산이 많은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과거사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며,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안적 과거청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학술적 청산

통일 후 독일에서도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통당 독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시키고, 민주주의 의식을 함양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 예로는 우선 동독사와 사통당 독재에 대한 연 구를 통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학술적 청산을 들 수 있다.

분단 시기 서독에서 동독에 대한 연구는 심층적으로 진행되지 못했고, 정치적 상황에 따 라 부침을 겪었다. 예컨대 냉전이 첨예하게 전개된 1950/60년대까지 동독에 대한 연구는 냉전 논리를 반영해 동독을 붉은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전체주의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긴장완화 및 동서독 문호개방이 라는 상황 속에서 서독 정부가 이른바 ‘현상 유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동 독 체제의 억압적 성격이나 동독 체제비판 세력 등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1989년 동독에서 민주화 혁명이 전개되었을 때 시위의 구심점 역할 을 한 체제비판 세력을 보고 서독 학계와 언론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통일 후 이러한 연구 공백을 메우고 동독의 역사와 동독 체제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신연방주와 베를린에 새로운 연구 기관들이 생겨났다. 대표 적 예로는 포츠담 현대사 연구소(Zentrum für Zeithistorische Forschung in Potsam), 뮌헨 현대사 연구소 베를린 분소(Institut für Zeitgeschichte München-Berlin), 드레스덴의 한나-아렌트 연구소(Hannah-Ahrendt- Institut Dresden), 국가안전부 문서관리 연방 관청 내 교육과 연구부(Abteilung Bildung und Forschung des BStU)를 들 수 있다.

국가안전부 문서 연방 관리청의 교육 센터 (BStU-Bildungszentrum Berlin)

이러한 연구 기관 들과 신연방주 대학 내 연구소를 통해 수많은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 라 통일 전 미비했던 동독의 권력 구조와 지배 체제, 국가안전부, 반체제 세력, 동독인의 동독 이탈 및 민주화 혁명, 동독 붕괴의 배경 등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어 많은 연구 성과를 배출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물들은 사통당 독재를 재조명하는 주제와 지식을 지속적으로 발굴함으로써 과거청산에 기여하고 있다. 예컨대 이들은 사통당 정권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박물관 전시나 추모지 건립에 필요한 배경 지식과 자료를 제공하고, 과거청산 관련 기관의 활동 방향 및 판단 기준을 정할 때 참 고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통일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동독 반체 제 세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시민적 용기의 중요성과 더불어 동독인들이 모두 사통당 정권의 억압적 체제에 순응한 것이 아님을 밝혀 주었다. 비록 사 회적 영향력이 크지는 못했지만 동독 전시기에 걸쳐 존재한 다양한 체제비판 세력에 대한 연구 성과는 1990년대 슈타지 스캔들로 인해 일면화된 동독인에 대한 인식을 상대화시키는데도 기여하였다.

공공 기관 및 민간단체의 교육·계몽 활동

통일 후 베를린과 신연방주에는 사통당 독재청산과 관련된 역사 교육 및 계몽을 표방하는 공공 기관이 설립되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 예로는 우선 국가안전부 문서 연방 및 주 관리청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문서 열람을 위한 행정적 작업 외에도 국가안전부가 남긴 문서, 사진, 필름 등 각종 자료를 이용해 국가안전부의 불법 행위를 알리는 강연회, 전시 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또한 국가안전부 문서 연방 관리청은 베를린 시내 중심부에 교육 센터 (BStU-Bildungszentrum Berlin)를 두어 국가안전부의 구조와 주요 임무, 그리고 국가안전부가 정치, 문화, 스포츠,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동독 주민을 감시하고 통제했는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상설 전시회를 열어 계몽 활동을 피고 있다.

교육 센터가 베를린 관광 중심지 중 하나인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박물관 인근에 위치하다보니 베를린 주민 뿐 아니라 외부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도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교육 센터는 국가안전부와 동독 역사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부족한 서독지역 주민에게도 유용한 교육 및 홍보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사통당 독재청산 재단(Bundesstiftung zur Aufarbeitung der SED-Diktatur)을 들 수 있다. 이 재단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 연방 의회 조사위원회의 활동 결과로 설립되었다. 1998년 사통당 독재청산 재단 설립법을 토대로 발족한 이 재단의 임무는 첫째, 사통당 정권범죄에 대한 증거 확보 및 피해자 파악, 둘째, “반전체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 형성, 셋째, 민주주의와 내적 통일의 공고화이다. 러한 목표 하에 독재청산 재단은 다양한 세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독재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민주주의 의식의 함양을 위해서는 과거청산이 사회적으로 담론화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성공하려면 특히 일반 시민들 의 자발적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통일 후 독일에서는 많은 민간단체들이 결 성되어 이러한 작업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동독 시절 사통당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했던 체제 비판 세력의 일원과 사통당 정권의 피해자들 은 통일 후에도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통당 정권의 불법 행위를 알리 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일례로 베를린의 로버트 하베만 협회(Robert Havemann Gesellschaft)를 들 수 있다. 1990년 11월에 결성된 이 협회는 동독 체제 비판 세력의 저항 활 동을 연구하고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동독의 유명한 반체제 인사였던 로버트 하베만에 대한 자료 외에도 1980년대 체제 비판적 정치 집단과 1989년 가을 동독의 민주화 혁명 과정에서 결성된 동독 정당 및 정치 단체에 관 한 다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동독 체제 비판 세력에 속했던 동 독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을 넘겨받아 문서 외에도 편지, 청원서, 사진, 전단, 현수막, 포스터, 필름 및 음향 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구비하고 있다.

협회는 이러한 귀중한 자료를 대중에게도 공개해 과거청산 관련 프로젝트나 학술 연구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다양한 출판물 을 발간하고 있다. 또한 전시회를 통해 대중과도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교포신문사는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이를 위해 지면을 통해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 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6월 첫 주부터 연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 편집자 주

1204호 31면, 2021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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