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34)

동서독 문화통합(4)

분단 시기 동서독 문화교류 ③

통일독일의 문화통합 작업은 분단에 따른 동서독 간의 문화적 이질화 현상을 되돌리는 작업임과 동시에 통일국가로서의 새로운 문화공동체적 기반을 조성하는 작업이었는바, 독일의 제도적 통합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년 안 에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심리적 통일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문화협정 체결 시까지

1) 방문 공연과 전시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의 설치 등 긴장 관계 고조로 인해 중단되었던 동서독 간의 문화교류는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의 체결 이후에 사안별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문화협정 체결 등 동서독 당국 간 교류협력의 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교류협력이었기 때문에, 문화교류는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사안별 당사자 간 접촉을 통해 이루어졌다. 주로 동독의 문화예술인들이 서독에서 연주회나 전시회를 개최하는 방식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1975년에는 처음으로 동독 조형미술협회 회장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담은 그림과 판화 120점을 함부르크에서 전시하였으며, 1977년에 처음으로 7명의 동독 미술가가 서독을 방문하였으며, 동베를린 에서 서독 측의 공식적인 전시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이 ‘과학과 기술에 관한 사진전’에는 약 15만 명의 동독 주민이 몰렸으며, 동독 측은 1979년 9월 서독 쾰른에서 이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동독 사진전’을 개최하였다.

1978년 6월 베를린 필하모니의 동독지역 연주여행이 실현되었으며, 1980년 10월 동서독 간에 ‘영화주간’ 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행사는 양 측 3개 도시에서 7편의 영화를 상영하기로 한 행사로, 동독 측이 서독영화 중 귄터 그라스 원작의 ‘양철북’에 대하여 상영할 수 없다고 결정하여 난관을 조성하였으나, 서독 측이 이를 수용하여 행사가 개최될 수 있었다.

동서독 간의 문화교류 사업 중에서 가장 활발했던 분야는 연극과 오케스트라 방문 공연 분야였다. 과거 독일의 연극과 음악은 세계적인 수준이었으며, 독일인들의 수준 또한 매우 높았는데 분단에도 불구하고 동독과 서독에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악단과 극단이 각각 존속하고 있어, 이들의 상호방문 공연은 상대편 지역 주민들에게 호응이 컸다.

대부분의 상호방문 공연은 상업적인 문화공연 중개인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서독 측은 문화단체, 기관 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상호방문 연주나 공연이 추진되기를 희망하였으나, 동독 측은 국가가 독점권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 중개인을 내세워 공연진행과 비용문제를 처리하였다.

2) 문화·예술단체의 교류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자 동서독 단일문화 개념에서 추진되었던 문화계의 동서독 공동 참여 형태의 단체와 협회의 구성과 운영이 어려워졌으며, 동독과 서독에는 각자 독자적인 단체들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테협회(Goethe-Gesellschaft, 구동독 Weimar 소재)’는 전독일 협회의 형태를 잃지 않고 통일 시까지 존속하였는데, 동 협회는 2년마다 한 번씩 Weimar에서 동서독은 물론 세계 각국의 괴테 전문가 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동독 정부도 ‘괴테협회’ 활동의 국제화 에 협조하였다.

‘바흐협회’는 동독의 Leipzig와 서독의 Kassel에 별개로 존재하였지만, 국제적인 협회로서의 성격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동서독 간에 공동협력을 전개하였다.

3) 문학과 서적의 교류

동독은 종전의 독일문학과 구분되는 독특한 사회주의 문학을 표방하였으며, 1973년 11월 작가들의 모임인 ‘독일작가동맹’을 ‘동독작가동맹’으로 개칭하였다. 동서독 문인 단체들 간의 공식적인 교류관계는 없었으며, 국제행사 차원에서 PEN 클럽과 국가별 작가협회들 간의 접촉이 있었을 뿐이었다.

동독은 서독 등 서구 문학작품의 반입을 통제하였는데 1963년 7월 4일 자 동독 문화성 규정에 따라 동독의 개인이나 각 기관은 문화성의 특별 허가 없이는 서구의 문학작품을 반입할 수 없었다. 허가받지 않은 서독 서적들 을 동독의 서점에서 구입할 수도 없었다.

이에 반해, 서독에서는 동독의 서적들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었다. 동독 현존 작가의 작품들이 서독 내에서 판권허가를 통해 널리 출판되었는데, 일부 작가의 작품은 동독에서 출판되지 않고, 서독에서만 출판되는 경우도 있었다. 서독에서는 동독 내의 반체제 작가로서 동독작가동맹에서 축출되거나 서방으로 이주한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읽혀졌다.

동독은 작가들의 저작권 관리 업무를 정부에서 관장하였는데, 특히 동독 이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동독 작가 작품에 대한 판권계약은 동독 저작권관리청의 허가를 받게 하였다. 또한 동 관리청은 저작료 등 판권계약에 따른 모든 문제를 처리토록 했는데, 일부 동독의 유명한 작가는 동독 당국의 허가 없이 서독에서 출간했다가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도 발생하였다.

분단 이전에 존재하였던 출판사가 분단에 따라 동서독지역으로 분리 소재하면서 출판사들 사이에 법적인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분단 이전 출판도시였던 Leipzig에 집중되어 있던 출판사들이 전후 또는 동독의 국유화 조치 이후 서독으로 건너와 새로이 같은 상호로 또는 비슷한 상호로 출판사를 개설함에 따라 이들 간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서독지역에서 개최되는 Frankfurt 도서박람회에 서독의 출판사와 동일한 상호의 동독 출판사의 참여를 배제한 경우도 있었으나, 동서독 간의 서적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서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었다. 독어사전 편찬연구소 및 출판사였던 Duden은 Leipzig와 Mannheim에 각각 연구소 및 출판사를 두고 있었는데, 상호 기관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1210호 31면, 2021년 3월 12일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