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35)

동서독 문화통합(5)

분단 시기 동서독 문화교류 ④

통일독일의 문화통합 작업은 분단에 따른 동서독 간의 문화적 이질화 현상을 되돌리는 작업임과 동시에 통일국가로서의 새로운 문화공동체적 기반을 조성하는 작업이었는바, 독일의 제도적 통합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년 안 에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심리적 통일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독일통일 과정에서 문화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통일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제공하는 동인(動因)이었으며, 통일을 촉진하는 촉매제로서도 기능을 하였다. 통일 이후에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심리적 통일을 강화하는 주요한 기회이자 수단으로서도 문화통합이 기능을 하였다.

문화협정 체결 시부터 통일 시까지의 교류

1) 개요

동서독은 1986년 5월 6일 문화협정 체결 시 ‘문화’의 개념을 좁게 해석하지 않고, 연극·문화·음악·미술 분야를 포함한 교육, 학문, 출판, 도서관, 역 사적인 문서, 대중 매체, 스포츠, 청소년 분야까지 확대하여 교류·협력의 대상으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협정에 따른 양독간 구체적인 사업계획서의 작성 시, 교류·협력 내용 확정에 있어서도 예술, 학술, 교육 분야의 비율을 각각 2:2:1로 하였다.

문화협정 제2조에 따르면 양측은 학술대회나 심포지엄 참석을 통한 전문가들의 경험교환, 연구 및 학문 목적의 체류, 학생교류, 전문서적 및 학술정보자료 교류 분야에서의 학술교류를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1987년 동·서독은 과학-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한 바 있는데, 그 협정에 따른 교류협력 내용은 문화협정에 따른 학술 분야 교류협력 내용과 일부 중복이 되면서도 그 협력 분야는 달랐다. 과학·기술 협력 협정에 따른 학술 교류는 자연과학 및 기술 분야에 중점을 두었고, 문화협정은 인문·사회과학 에 중점을 두었다.

과학·기술 협력 협정의 협력 대상 기관은 대형 연구기관이나 문화협정에 의한 기관은 대학교가 중심이 되었는데, 문화협정의 교류·협력사업은 학술적인 성과보다는 동·서독 주민들 간의 접촉을 증대시킬 수 있느냐에 중점이 두어졌는데, 과학·기술 협력 협정에 의한 교류·협력 사업은 연구기술성(BMFT)이, 문화협정에 의한 교류·협력 사업은 내독관계성(BMB)이 각각 주관하였다.

2) 문화협정에 따른 분야별 교류협력의 추진

문화협정 제12조에 따라 1986-1987년도 22개의 학술 분야 프로젝트가 합의되었는데, 상호 부담이 적은 전시회 및 방문 공연 등에 중점이 두어졌다. 1988-1989년도 두 번째 사업계획에서는 동·서독 양측이 학자와 학술 당국의 지대한 관심에 힘입어 광범위하게 학술 분야 교류 프로그램이 포함되게 되었다.

역사학 연구는 독일 중세사에서부터 현대사까지 연구, 평화문제 연구, 사회·경제사 연구, 문화·학술사 연구가 포함되었으며, 어문학 연구는 19세기 독일어 연구로부터 사전 편찬,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 연구 등이 이루어졌다.

동독 측의 요구로 문화협정 사업계획서에도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협력사업이 포함되게 되어 고체역학 분야에서의 연구협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문화협정을 통해 가장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던 분야는 동·서독 대학간의 자매결연 사업이었는데, 1986-1987년도 첫 사업계획서에 자아르브뤼켄대학과 라이프치히 소재 칼-막스대학 간에 첫 자매결연이 이루어지고, 강의및 의학, 의학기술, 화학, 물리학, 문헌학 분야에서의 연구협력이 이루어졌다.

동독은 대학 간 자매결연을 통해 자연과학 분야에서의 선진 학문과 첨단 과학기술을 흡수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이 분야의 협력사업이 많이 이루어졌다.

1988년 4월에는 뮌헨대학과 칼-막스대학 간의 자매결연이 성사되어, 물리학, 화학, 수의학, 의학, 심리학, 생화학, 어문학, 독문학, 역사학, 신학 분야에서의 연구협력이 이루어졌다

Achen공대와 Dresden공대 간에 자매결연이 맺어져 물리학, 화학, 교통공학, 수리공학, 전자공학 분야에서 협력이 이루어졌으며, Stuttgart대학과 칼-막스대학 공대 간에도 자매결연이 맺어져 기계공학, 금속공학,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분야에서 협력이 이루어졌다.

학술 분야 교류 초기에 국제적인 학술교류에 익숙해져 있던 서독 학자들 은 동독의 수준을 낮게 평가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문화협정에 의한 교류를 통해 서독에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분야 중에서 동독에서 연구되고 있는 영역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서독측 학자들은 동독 측이 연구한 독문학과 역사학 분야에서의 성과물에 큰 관심을 가졌으며, 동독 학자들과의 직접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상호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발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자연과학 분야 교류와 관련해서는 전략 기술 이전과 관련되지 않는 한 동독과의 교류는 서독 정부의 독일정책 추진의 테두리 내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갔다.

서독 학자들은 양독 정부의 사업계획서에 의한 교류·협력 사업이 재정보조라는 장점은 있으나 그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문제점 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개별연구자 간의 직접 접촉에는 경제적인 비용이 발생하고 동독 정부도 이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별 연구자 간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사업계획에 따른 행사 개최 시 각 지역에서 발생한 비용은 해당 지역에서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예를 들어 동독 무용단이 서독에서 공연 을 하는 경우, 서독지역에서 호텔체재비, 일비, 식비, 사례비 등을 지불하였으며, 도착지까지 항공료 등 교통비는 동독 측이 부담하였다.

방문 공연 시 발생하는 공연 수입은 서독에서 개최하였을 때는 서독 측이, 동독에서 개최하였을 때는 동독 측이 각각 취득하였으며, 동독 예술인들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받는 일비는 서독 방문에의 큰 유인으로 작용하였다.

1211호 31면, 2021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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